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페넬로피아드

[도서] 페넬로피아드

마거릿 애트우드 저/김진준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와 <증언들>을 먼저 읽고 나서 접한 책이기 때문에, 그의 <페넬로피아드>는 어떤 기발함으로 신화를 뒤집었을지 너무나 기대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살짝 실망했다. 이야기 자체의 분량이 짧은 탓도 있지만, 내게는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에서 등장한 약초 학자로서의 페넬로페가 <페넬로피아드>에서 묘사된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자가 '누군가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시원하게 벗어던졌다면, 후자는 여전히 아내란 타이틀 속에 갇혀 발버둥 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키르케>가 닫힌 결말에 갇혀있음에도 그 내부의 이야깃거리를 자유롭게 뻗어 반항스러운 해석을 그려냈다면, <페넬로피아드>는 어딘가 위축된, 소심한 몸짓을 그려낸다. 페넬로페의 첫 등장에서 그는 심지가 곧고 영리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러한 특징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숨겨지거나, 가부장제 사회가 허용한 경계 내의 방식으로 표출된다.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남자들보다 헬레나에 대한 원망이 크다는 것 또한 현상의 이면을 보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부분은 역사를 새로 쓰는 작가들에게 큰 딜레마이다. 현대에 와서야 겨우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문제들을 옛 시대의 인물이 날카롭게 지적하게 되면, 그것은 신화의 틀을 벗어난 아류 판타지로 취급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옛이야기를 그대로 구전되게 두느냐 하면,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페넬로피아드>, 즉 '페넬로페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을 읽고 기대했던 시원한 반전이나 비밀은 등장하지 않지만, 으레 알고 있던 주인공의 위치가 뒤바뀌어 서술된다는 점만큼은 매우 마음에 든다. 가부장제 신화에서는 영웅들의 볼품없는 업적이나 방탕한 놀이를 엄청나게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곤 했는데, 그런 껍질뿐인 소문을 낱낱이 까발리는 것은 원본의 한계나 시대적 한계 - 책이 출간된 연도가 무려 2005년이다 - 를 감안했을 때 충분히 유쾌하다. 누군가가 입을 열었을 때 허물어질 영웅의 이미지란 얼마나 부질없고 허무한가. 또 우리 사회는 그런 종잇조각 같은 이미지에 얼마나 많은 무력감을 학습시켰고 사람들을 좌절시켰는가.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