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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도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마음에 드는 여성을 납치해 함께 사는 로맨스를 꿈꾸는 남자. 납치까지 할 필요가 있나? 저것도 범죄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기함하지는 않는다. 현실 어디에선가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고, 우리는 그것의 증거를 뉴스나 매체에서 지나가다가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인이 선택한 남자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여자'라는 단어는 가히 충격적이다. 어떻게 여자가 남자를 납치하는가? 일말의 도덕성이라도 남아 있다면, 여성성이 흔히 그러하듯 모성과도 같은 부드러운 감성이 남아 있다면 저런 파렴치한 행각은 벌일 수 없으리라.

 

  이것이 우리가 여성과 남성에 대해 적용하는 이중 잣대이다. 남성은 이미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범죄를 은근히 혹은 대놓고 저질러왔으나 세상은 그것이 그들의 폭력적인 본성이기에 '어쩔 수 없다'로 일관하는 반면, 반대의 경우에는 이렇게 끔찍할 수가 없다는 식의 말이 오간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주인공 강민주의 시선을 통해 그러한 세상의 양면성을 신랄하게 비웃는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여자에게 금지된 남성들의 분야를, 범죄를 소망하는 것이다. 여기서까지  사회와 윤리 도덕적 약속 등을 논하지는 말자. 남기의 사고방식처럼 감정적이고 바보 같을 뿐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강민주가 납치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강민주는 머리가 비상하고 논리적인 사고력이 뛰어나며, 말이며 행동이 전부 대담하다. 매력적인 남성 범죄자는 소설 속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해도 매력적인 여성 범죄자는 여태껏 본 적이 드물다. 그런데 강민주는 매력적인 여성 범죄자로 손색이 없다. 특히 그의 입을 빌려 나오는 여러 문장은 사회의 일반적인 편견과 오만의 허점을 차갑게 비틀어 보인다.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을 통해 '일반적으로 남자가 이성적이며 여자는 감성적이다'라는 표어를 정면으로 받아친다. 초판 발행이 1992년임을 생각하면 정말 세상을 앞서 간 작품이다.

 

  어떤 면에서는, 여자들이 전기를 다루는 힘을 얻게 된, 정반대의 권력 구도 세상을 그려낸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보다도 더 직접적인 해방감과 통쾌함이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더욱 마지막 결말이 아쉬웠다. 현실을 생각하면 가장 합리적이고 합당한 마무리겠지만, 강민주의 존재가 뭇 여성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아쉬운 감정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강민주의 논리적이고 냉철한 사고와 그의 삶에 대한 태도에 깊이 동감했기 때문에, 그가 백승하라는 남자를 가까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했을 때, 그리고 그를 인간으로서 점차 알아가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일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강민주의 패착은 남자에 의해 종속되고 억압되어온 여성들의 집합과 여성을 약자로서 짓밟고 상처 입힌 남성들의 집합을 저울에 놓고 시작했음에도, 어느 순간 남성의 쪽에 백승하라는 인물을 놓은 부분에 있다. 여성의 쪽에 유구한 여성혐오 역사의 증거를 몸에 아로새긴 인물이 있었다면, 그와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케케묵은 차별의 향기, 사슬을 나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권력에 의한 사회 현상을 개개인의 것으로 보는 것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개인을 조망하는 것은 약자에게는 크나큰 도움이며 존엄성을 회복할 간절한 구멍이지만, 강자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흔한 기회이자 권력을 유지할 편리한 장치일 뿐이다.

 

  다만 초반부의 강민주의 행적은 너무나도 통쾌했고, 그의 태도가 시원시원한 점은 이야기의 재미를 극도로 끌어올린다. 결말이 궁금하여 손에서 놓지 못한 책 자체는 드문데,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금방 읽히기도 하고 흡입력도 좋다. 나는 강민주가 소망했던 금지의 계단을 마저 걸어가 보고 싶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롭게 만드는, 낡은 생각을 혐오하는 그의 길을 마저 완성하고 싶다. 그의 행적은 범죄라는 자극적인 선택을 통해 그려졌지만, 그의 생각은 그 무엇보다도 힘이 넘쳤고 여전히,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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