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소설이 나온다. 거기에는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의 모습도 함께 있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여성의 삶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차별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그것도 남편이나 남동생 혹은 오빠보다 높은 학력을 갖고 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나, 딸이나 아내, 며느리란 이유로 나의 부모 혹은 남편의 부모 그리고 아이까지 살뜰하게 부양하고 살펴야 하는 일도 많다. 맞벌이를 하면서 집안일은 왜 여자들의 몫이고, 왜 회식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야 하며, 승진에 밀려야 하는지. 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하는지, 남편이 키울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모성애가 태어날 때부터 장착된 것이 아니라면, 키우면서 생기는 거라면, 부성애도 생기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박서련 작가의 단편집을 만났다. 모두 7개의 단편에는 엄마의 혹은 딸이나 며느리 그리고 아내의 삶이 그려져 있다. 지나쳐 온 삶도 있고, 지금 현재 진행 중인 삶도 있고, 언젠가 마주하게 될 삶도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고, 그 무게와 책임감에 답답하기도 하다. 나도 늙지 않을 수 없고, 결국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을 만나게 되겠지만, 괜찮은 노인으로 나이들고 싶다. 이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아이가 왕따를 당하자 그걸 해결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아이가 게임을 못 하자 게임 과외를 받고는 아들보다 더 게임을 잘하는 엄마가 되는 이야기는 웃음이 나온다. 아이돌 그룹 멤버가 딸인 엄마의 이야기와 엄마 혹은 시어머니의 돌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남편에게서 벗어나려 하는 여자의 이야기, 창작물 권리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을 살아가는 돈 없고 힘없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는 씁쓸하면서도 웃프다.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는 밀착 마크 같은 돌봄은 사라졌다. 그 대신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이 내 삶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돈 걱정(?) 없이 (물론 돈 걱정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의 정년과 아직 졸업하지 않은 아이의 대학 졸업과 아직 입학하지 않은 작은 녀석의 재수까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할 수 있어 감사하다. 사사로운 다른 고민 없이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고민만 할 수 있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언제고 나 또한, 시어머니나 친정 부모님을 수발 해야 할지 모른다. 그때는 우리네 형제자매와 시댁 쪽의 형제자매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담담할 수 있지만, 누구도 예외는 없을 것 같다.
한순간도 세상은, 우리네 인생은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건 살아있기에, 살고 있기에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 특별히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어 뭐든 이루고야 말겠다는 생각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그냥이 쌓이고 모여서 우리의 삶의 축을 만드는 것 같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조금씩 켜켜이 쌓여가는 삶이라는 지혜와 혜안들.
가족이 감사하다가도 엄청난 짐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창살 없는 감옥 같고, 담벼락 없는 울타리가 가득한 가족. 누군가는 가족 안에서 사랑을 배웠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 가족이라 말한다. 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내 아이들은 이 가족이 어떤 의미일까? 세상 제일 어렵고 까다로운 집단 중 하나인 가족.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했던 엄마들, 아내들 그리고 딸과 며느리들. 우리네 삶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오늘이기를. 가족이 족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쉼터가 되면 좋겠다. 결국 가족이 바로 서야 아파도 돌아갈 곳이 있는 거니까. 가족. 그 어렵고 까다롭고 감사한 이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