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인간의 생이 그렇게 짧지 않다는 데 있지. 환호와 응원이 모두 끝나버린 뒤에도 버텨내야 할 생이 남아 있거든, 훨씬 더 비루하고 끔찍한 모양새로 말일세. (124)
돈이 돈을 쫓는 것처럼 가난은 가난을 쫓습니다. 불행을 맹렬히 뒤쫓는 건 불행뿐이죠. (248)
단편 소설은 어려워 가능하면 읽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읽을 수밖에 없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알고 싶으니까. 안보윤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읽은 책이지만 단편이라 망설였던 건 사실이다. 단편 소설은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라는 사실 하나로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읽기를 잘했노라고.
모두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포스트 잇’. 윤리교사가 가정폭력으로 생을 마감한 여학생을 모욕했다는 누명을 쓰고 인터넷에 회자 된다. 하지만 과연 그 말이 맞을까? 단편 소설은 윤리교사 또한 여학생의 죽음을 외면한 사실이 밝혀진다. 나와는 상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무시했던 일. 그리고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이 도와줬을 거라 믿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사실. 윤리교사는 억울했을지 모르지만, 진실을 알면 억울하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지. 나는 타인에게,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이 무슨 인생을 살던, 어떤 모습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누군가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나는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슬펐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거리의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게 외면하는 사람이라니..
‘순환의 법칙’이라는 단편 또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도운은 다단계 사기로 여자친구 미주를 끌어들이고 미주는 그런 도운의 돈을 훔쳐 달아난다. 그런 어느 날 미주는 호텔 무료숙박권에 당첨된다. 미주가 묵게 된 방은 자꾸만 바뀌고 호텔 라디오에서는 끔찍한 사연을 시도 때도 없이 들려준다. 순환하는 방은 벗어날 수 없는 불행한 세계를 비유하는 것 같아 답답하고 아프기만 하다.
불행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달아 오는 것일까? 사는 게 쉬우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하고, 참아야 하는 것도 많다. 왜 이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힘들고 아픈 삶을 사는지. 20대 초반의 내 아이들도 인생이 힘들겠지? 그게 인생이라고, 그렇게 모두 가장의 무게를 견디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눈치 보지 않는 삶.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사는 것에 무심한 편이지만, 내 아이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다.
안보윤의 단편 소설. 어렵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하게 하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우리네 인생들. 모두 파이팅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