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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도서] 클로버

나혜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하고 싶은 게 있긴 해요. 뭐지? 선택. 내가 뭔가를 고르는 거요. (76)

먹는 것이 먼저고, 도덕은 그 다음이다. 꿈은 그 보다도 더 다음이고. (118)

불운 앞에서 인간은 묻지. 왜 나인가? 그렇게 묻고 탐구하면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답을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말하지 않을게. (중략) 왜 인간은 불운에게만 묻는가? 행운에겐 왜 나인가? 묻지 않으면서. 불운도, 행운도 그저 룰렛을 돌리면 나오는 가능성일 뿐이야. 만의 하나. (134~135)

 

가난이라는 이름의 그것을 조금이라도 겪은 사람이면 한 번쯤은 생각했을 그것. 왜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는 것일까? 다른 친구들은 행복해 보이고, 돈에 쪼들리는 것 같지 않은데 나는 왜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나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하는 의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하나뿐인. 그래서 희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시간.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빨리 이 시간이 가버려 어서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절. ‘가난이라는 시간을 내 아이에게만은 주고 싶지 않았던 그때. 가난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낡은 운동화로 느리게 걸으며 폐지를 줍는, 평범하고 싶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수학여행도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중학생 현정인. 자신의 인생은 쓰레기장 뒤편의 응달과 같다. 정인은 점심시간이면 학교 뒤 폐지 수거함, 아지트로 향한다. 그날은 이곳에서 검은 고양이와 마주친다. 오 근데 이 고양이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이 고양이는 악마 헬렐 벤 샤하르’. 헬렐은 지금 휴가 중이고 일주일 동안 정인의 옆에 있겠다고 한다. 악마의 특기가 무엇인가? 바로 유혹. 힘든 정인의 마음을 유혹해 자신이 정인의 마음을 갖겠다는 것. 정인은 가난하지만, 요행을 바라지 않고 마음이 순수한 소년이다. 하지만 헬렐은 계속해서 정인에게 행운의 클로버를 주겠다고 유혹한다. ‘만약에’.. 다양한 만약에를 제시하며 정인을 혼란하게 만든다. 어린 정인은 백만 원을 모으는 게 꿈이었는데... 헬렐이 정인의 인생에 개입하면서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고 정인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정인에게 다가온 할머니의 사고까지.. 정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가난이라는 이름은 사람을 참. 아프게 한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갈 수 있는. 그래서 비굴하고 속상하고 짜증난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어린 날의 가난이라는 것은. 그래서 헬렐이 정인에게 다양한 형태의 만약에를 제시하며 유혹하겠지. 조금이라도 순수하지 못하고, 조금이라고 나쁜 마음을 가진 정인이었다면 그 다양한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을까?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가난하다면 그게 무엇이든 유혹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아닌 것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나름 정의롭게 돌아가는 것이겠지. 근데 왜 그게 이렇게 마음이 아픈 소년이어야 하는 건지.

 

조숙한 소년으로 자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숙한 소년으로 성장한 정인은 자기 또래의 평범한 소년처럼 자라고 싶었을 것이다. 복지관 같은 곳에 가서 라면과 햇반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닌, 할머니의 폐지 수레를 밀어야 하는 소년이 아닌.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고,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그런 소년이고 싶었을 텐데. 소년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소년은 소년이 된다. 그래서 아프다. 차라리 헬렐의 유혹에 당당하게 예스를 외치고 넘어갔다면 덜 슬펐을까? 하나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할 수 없는 현실이 아프다. 먹는 것이, 제일 앞에 놓여야 하는. 그래서 도덕이나 꿈은 생각하지 못하는 삶. 그나마 나는 같은 가난이라고 해도 부모님이 계셨고, 방패막이 되어 주셨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태어나 한 번 사는 인생. 누군가는 금수저로, 누군가는 흙수저로 태어난다. 불행에만 왜 나여야 하는 걸까?’가 아닌 행운에도 왜 나여야 하는 걸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글에 만감이 교차했다. 나에게는 몇 번의 불행과 행운이 교차했던 것일까? 불행만 생각나도 행운은 왔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믿고 읽는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 작품. 읽지 않은 게 있다면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나와 울 아이들의 인생까지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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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매니짱

    금수저, 흙수저로 나뉜다는 자체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지만...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희망을 놓아버리는 순간~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기에....

    2023.01.05 20:2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맞아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건지.
      그래도 저는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갈 맛은 나지요.

      2023.01.06 15:36
  • 스타블로거 ne518


    가난해도 부모가 있는 것과 없는 건 차이가 많겠습니다 할머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힘들다 해도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희선

    2023.01.08 02:48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이런 소설. 솔직히 너무 아파요. 우리 애들 주변에는 이런 친구들이 없지만 생각보다 또 많기도 한가봐요. ㅜㅜ

      2023.01.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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