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릴 적 동화책을 많이 읽어줬다. 그러다가 귀찮으면 동화책에는 없는 뒷이야기를 꾸며서 얘기해 주곤 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를 키우면서 꿈을 꾸는 게 있다. 우리 아이만을 위한 맞춤 이야기. 능력이 없어서 못했지만 능력만 있다면 해주고 싶었던 일. 작가는 참 좋겠다. 이렇게 자신의 딸을 위해 좋은 이야기를 선물해 줄 수 있으니까...
이곳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스트랜드의 울프블러드 왕국이다. 이 나라에는 용감하고 용맹한 제1왕자 올란이 있고, 허약하고 마음 약한 겁쟁이 제2왕자 듀란이 있다. 어느 날 이 평화로운 나라에 전쟁의 기운이 감돈다. 콜드스틸 크롬웰의 침략을 받은 나이엔을 구하기 위해 왕과 왕비 그리고 제1왕자 올란이 출정을 하게 된다. 혼자 남은 듀란의 나라에 골드스틸의 병사들이 쳐들어오고 듀란은 위대한 힘을 얻고 싶은 자만이 열어 보라는 메시지의 상자를 발견한다. 고민 끝이 상자를 연 듀란은 그 상자에서 반딧불 같은 존재 고타마를 만나게 된다. 고타마는 듀란에게 어떤 존재이고, 듀란에게 어떤 멘토가 될까?
나는 판타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진 책이라서 그런지 지루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머릿속으로 많은 상상을 할 필요도 없고, 읽는 그대로 느끼고 생각하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딸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던 것인지 그 의미를 찾으며 읽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주제는 간단명료하다. 나약하고 겁쟁이이고, 심지어 말까지 더듬는 제2왕자 듀란이 주변의 힘든 상황과 그 상황을 멘토와 함께 용기를 가지고 이겨나가는, 그래서 시간이 지나 멋지게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14살의 듀란과 사춘기 초입을 맞은 현재의 14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 말들이 이 책에는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꿈과 희망을 찾아 모험을 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오랜 시간 생각하거나, 명상할 수도 없다. 지나친 경쟁과 공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이 아이들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작가는 아마도 딸 뿐 아니라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 스스로 힘을 조절하고 스스로 이겨 내려면 무슨 조건을 통과해야 해?
뭐든 이루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이건 아무리 마법이라도 피할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볼 수 있어. 그러나 사라들은 노력을 잘 하지 않아. 그 대신 ‘지금은 힘들어서 노력하지 않지만, 언제든 노력하면 될 수 있어.’ 같은 변명으로 치장하고 노력하길 피하지. (중략)
두 번째는 시간이야.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지 주어진 거야. (중략) 뭔가를 배우고 일하는 것만이 옳은 것도 아니고, 쉬거나 논다고 해서 꼭 시간을 낭비한다고는 볼 수 없어.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기준이 있어야 해. 네가 노력할 목표를 위해 힘을 쏟다가 달게 휴식을 취하는 것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지. 너는 아직 어려서 마치 무한정 시간이 남은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무한히 주어지지 않아.
마지막은 현명함이야.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제대로 된 방법, 제대로 된 길을 찾아 행하지 않으면 헛수고에 불과하단다. (중략) 책이나 이야기나 경험이나 그 모든 건 네가 진정으로 깨닫고 이해했을 때 네 것이 되는 거지 단순히 책을 가졌다거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얻어지는 게 아냐 (2권 185~189)
부모가 되었다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해 주고 싶고, 교훈이 되는 책도 선물해주고 싶다. 하지만 사춘기의 아이들은 부모와 삐딱선을 타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외면하고 서로를 향해 칼을 갈기도 한다. 말만 하면 싸우는 경우도 있고, 시한폭탄을 안은 것처럼 살얼음을 걷는 경우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가 훈계랍시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아이들은 과연 정중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듣고 있을까?
이런 책은 부모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가능하면 잔소리 같은(?) 훈계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 슬쩍 읽어보라 권하기도 하고,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읽게 하지만 본인이 느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글도, 글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다만 좋은 말, 좋은 글을 많이 넣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사건보다는 교훈되는 글이 너무 많다. 사건의 에피소드로 재미를 이어가기보다 14살 아이이게 해주고 싶은 말을 너무 많이 넣었다.
좋은 말을 과식했다고나 할까? 그 부분은 좀 아쉽다. 하지만 자신에게 꿈이 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아이들이라면 많은 깨달음이 함께하는 책이기도 하다. 아이의 상태를 봐서 억지로 읽게 하지 않고 준비(?)가 되었을 때 슬며시 권하면 참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