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가끔 그런 책을 만난다. 너무도 친절하게 어느 시점에서 울어야 할지 대 놓고 알려주는 감정 폭발형 책. 처음엔 그런 책을 좋아했다. 울어야 할 타이밍 정확하게 맞추고 당연히 울어줘야 하는 센스, 그 시점에서 울지 못하면 왠지 내가 감정이 무디거나 독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이상한 난감함. 하지만 책을 많이 읽다보니 그런 책보다는 덤덤하게 읽고 있는데 어느새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그런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대 놓고 울라 말하지 않지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내가 그 사람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대입하다보면 눈물 나는 그런 책이 좋아진다. 만약 내가 이 아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만약 내가 이 아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까? 그 아이들과 한 몸이 되어 같이 울 수 있는 그런 책.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칠 년 전 문밖동네 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오명랑 작가. 하지만 문학상을 받고 반짝 했을 뿐 지금은 어떤 글도 쓰지 못한다. 가족들 보기 민망해진 주인공은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열고 아파트에 전단지를 붙인다. 이후 3명의 아이들이 제자로 들어오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 명랑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건널목씨가 등장한다. 건널목이 없어 위험한 찻길 위에 횡단보도 모양이 그려진 카펫을 깔면 아이들이 그곳을 무사히 건너간다. 건널목씨가 선한 사람임을 알게 되자 아리랑 아파트에서 그를 경비실에 묵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경비실에 도희란 아이가 찾아온다. 가정불화로 갈 곳 없는 도희는 경비실의 건널목씨와 친구(?)가 되고, 건널목씨가 매주 수요일이면 찾아가는 곳엘 함께 가게 된다. 그곳에는 태석이와 태희가 부모도 없이 어두운 지하방이 함께 있다. 이후 그들은 외로운 세상을 함께 위로하고 위안 받는다. 얼마 후 도희는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를 가고, 태석이와 태희에게도 집나간 엄마가 돌아온다. 이후 건널목씨는 소리 없이 사라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많이 울었다. 많이많이 아팠다. 매일 매일 싸우는 부모 밑에서 외로운 도희도 아팠고, 돈을 벌겠다고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남매들도 아팠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 왜 말 없이 웃어주면 속도 없는 줄 아는 걸까? 왜 그런 사람 앞에서는 우쭐한 척을 못해서 안달일까? (43)
아무리 지어서 써도 불현듯 나오는 문장까지는 지어서 못 써요. 몸에 박힌 말이 툭 나와 버리니까 (75)
나는 어려서부터 저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콩닥콩닥 다투기도 하지만 언제나 같은 편인 가족.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그런 가족이 부럽다 (80)
태석이는 엄마를 기다렸어. 처음에는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언제부턴가는 나서서 싸워 줄 엄마를 기다린 거야. 어린이 따지러 오면 어른이 나가 주는 집.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지 무조건 자식 편인 부모가 있는 집(132)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평범함에 감사한 줄 몰랐던 사람이었다. 가진 것 없고, 식구가 많은 우리 집이 참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 잠자기 전까지 언니, 오빠, 동생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우리 집이 그렇게 싫었는데, 이젠 그것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미있게 기억하고 있다. 또한 누구보다 평범하고, 누구보다 잔잔한 빛깔을 띤 인생이야 말로 큰 파도 없이 느끼는 행복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이 평범하고, 그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아이를 잃어 슬퍼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부모가 얼굴만 맞대면 싸우는 통에 가슴이 멍드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집을 나간 부모 때문에 자신들만 남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그런 사람들을 배려하고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 혹시 건널목씨를 만나게 되면 반갑게 웃어주면 어떨까? 당신이 건널목씨 예요? 이렇게 묻지 말고, 당신의 긍정 에너지에, 당신의 배려에 감사한다고 그 마음 똑같이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것은 어떨까? 나, 우리 모두 분명 건널목씨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건널목씨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 세상은 분명 웃을 일도 행복해 할 일도 많아 질 것이다.
추운 겨울이다. 이렇게 따스한 책을 만나게 된 하루... 나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