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우타노 쇼고 ‘세상의 끝 혹은 시작’에서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세상은 험악해지고, 인간성을 상실한 아이들이 넘쳐 난다고 하는데 어쩜... 아이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결국.... 그들의 부모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완벽한 가정이다. 중산층의 아름다운 부인과 똑똑한 아들.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신뢰한다. 하나뿐인 아들은 머리가 좋고, 아버지와 대화도 곧잘 하는, 평범하지만 스스로 기품 있는 가정이라 느낀다. 그런 화목한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하나뿐인 아들과 그 아들의 사촌이 노숙자를 구타해 죽인 것. 죽이는 과정이 동영상으로 촬영 돼, 인터넷으로 급속히 퍼지기 시작한다. 남자는 형의 가족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의논하기 시작한다. 차기 총리 후보인 형은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 말하지만 남자는 그럴 수 없다. 남자와 아내 그리고 형수까지 똘똘 뭉쳐 사건을 감추려 하는데...
우리 아이만큼은 기죽일 수 없다 생각하는 부모가 많은 모양이다. 그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면 오히려 더 날뛰는 부모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이기적인 마음은 어쩜 그 부모한테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백인 아이들. 인종 간의 갈등을 격화시키기 위해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그런 부류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고등 교육을 받은 부모를 가진 아이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 우리 조카나 아들 같은 아이들이었다. (155) 가끔 우리는 생각한다. 어떤 범죄를 지켜보면서 그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살펴본다. 혹 그 아이들이 문제가 많은 가정이라면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우리 집은 중산층의, 그래도 배운 부모니까... 하지만 그게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생각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 배웠다고 말하는, 중산층 이상이라 말하는 부모는 말한다. 우리 이쯤에서 이 일을 그냥 덮어 두는 거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동안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니까 (170) 아이들에게 정직할 수 있는 시간마저 박탈하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의 그늘 밑으로 숨어 버린다. 부모의 돈이든 부모의 권력이든 부모의 방패막을 이용해 잠시 숨어 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회에 복귀한다.
차기 총리 후보인 형의 인생을 보면서 남자는 순수하게 좋아하지 못한다. 심지어 형의 아들과 자신의 아들의 역학관계를 보고 자랑스러워한다. 주동자는 자신의 아들이다. 즉 뭘 할지, 어떻게 할지를 결정 내리는 사람은 아들이고, 형의 아이는 용감하게 지시에 따른다. 자신의 아들은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일 없이 늘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과 친구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다. 자신의 인생은 그렇지 않지만 자신의 아들은 형의 아이보다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남자를 뿌듯하게 한다. 이런 아들이 자신의 아이라는 것에 감동하기까지 하는 남자는 아들의 사고 앞에 올바른 생각 자체를 잊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성,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부수지 못하고 그 성을 지키려 형의 입양한 아이까지 잔인하게 죽이는 파렴치함을 서슴지 않는 모습에서 인간의 추악함을 본다.
아름다운 아내, 부드러운 아빠, 그리고 똑똑한 아들. 그 삼위일체로 구성된 가정이 깨져서는 안 된다. 그 삼위일체가 깨지지 않도록 아빠인 나는 가정이라는 비행기를 무사히 지상에 착륙시켜야 할 것이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 아이가 이 사회에서 어떤 꼬리표를 달지 않을 미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게 이기적이란 거요? 대체 당신이 사용하는 이기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지 알고 싶군.” “먼저 당신이 사용하는 미래라는 말의 의미부터 묻고 싶군요. 자식을 피고석에 앉히려는 아버지가 사용하는 미래라는 단어는 대체 무슨 뜻인가요? 아버지 때문에 자식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사실에 대해서요.” (282) 아이의 잘못을 무시한 채 어떻게든 평범한 중산층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버지.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총리 후보를 사퇴하려는 형을 저지하려는 동생과 아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쌓은 성은 영원히 견고할까 생각해 본다.
비단 네덜란드만 그럴까? 배웠다 생각하는 자존심 강한 우리네 부모들도 그런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아들이 맞았다는 이유로 모 그룹 회장은 사람을 대동하고 그곳으로 쳐(?)들어간 사람도 있었으니까... 자신의 아이가 귀하다면 다른 이의 아이도 귀중하다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를까? 자신들이 지금 당장 돈이 있어서 귀한 것 아닐까? 돈으로 만들어진 귀함.. 그들은 말한다. 성폭행범과 연쇄 살인마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사회가 이상하다고... 그들을 특별 사면 같은 것으로 풀어주면 안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노숙자를 죽인 아들을 감추고 침묵하는 부모 역시... 똑같은 잔인한 사람들 아닐까? 지적인 아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남편. 그 아내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입양한 사촌 형을 살해하려고 생각하는 아들의 의견을 침묵으로 동조한다. 모성이란 이렇게 대단하다고, 모성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상으로 돌아온 이들 가족을 보는 내 마음은 화가 나는 것을 넘어 울화가 치민다. 비단 이(네덜란드) 나라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나라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을 뿐, 이 사회에서 다른 일이 비일 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에 씁쓸할 수밖에 없다. 돈으로 만들어진 왕국. 그들은 그 왕국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결말을 맺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결말이라면... 내 마음은 아플 것 같다.
네덜란드 작가를 처음 만났다. 사건으로 가는 길이 좀...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라면, 나라는 부모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이를 위한다는 것. 탄탄대로를 만들어 주는 것만이 부모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깨지고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일어설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