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두께의 책을 만나게 되면 늘...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이 책의 내용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어떤 내용들이 숨어 있기에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스노우맨’, ‘레오파드’, ‘악녀를 위한 밤’. 책은 두껍지만 앉은자리에서 숨넘어가도록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과연 그렇게 읽을 수 있을지 기대가 컸다. 무엇보다 뉴질랜드 작가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본,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북유럽 국가의 책. 이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많은 나라들의 책 중 뉴질랜드 작가의 책을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들 나라에서의 범죄 소설은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호기심을 자극하게 될지 읽기 전부터 기대 만발이다.
38도의 고온에 육박하는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지. 범죄 심리학 교수 쿠퍼는 출근길에 모르는 사람에게 납치된다. 그는 깨어나자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비슷한 시각. 음주 운전으로 4개월을 복역하고 나온 테이트는 막 출소하여 집에 돌아왔다. 그를 반긴 사람은 음주 운전으로 자신이 죽을 뻔하게 만든 소녀의 아버지. 소녀의 아버지는 테이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소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 아직 죽지 않은 것 같으니 아이를 찾아 달라 부탁하게 된다. 소녀 납치 사건을 파헤치던 테이트는 그 사건이, 단순 납치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사건으로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더 많은 죽음과 더 많은 사건과 만나게 되는데....
이만한 두께의 범죄 소설은 단순히 한 사건만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갈 수 없다. 지금 발생한 사건 이외의 다른 사건들이 줄줄이 사탕인양 연결되지 않으면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없으니까..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좀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들이 사건과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이 사건들이 앞으로의 내용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의문을 가졌었지만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속도감이 장난 아니다.
범죄심리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쿠퍼 교수의 이중성에 놀라게 되고, 쿠퍼 교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수집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에이드리언은 어쩜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평범하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쿠퍼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경악할 만하지만, 어린 시절 정신 병원을 들락거린 에이드리언과 그 남자의 어린 시절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엄마에게서 버림받고, 동급생들의 따돌림과 무시가 훗날 이 사회를 경악하게 할 범죄자를 키웠다는 것. 그 분노와 창피함을 어디에도 풀 수 없었던,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비명의 방’에 감금되어 죽지 않을 만큼 맞아도 호소할 수 없었던 그들의 아픔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의 잔혹함만 크게 부각시켜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자라야 했던 사회적 구조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당장 그들에 의한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고 무시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회에 불만이 많고, 사회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 억눌린 사람들이 난동을 부린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인종을, 나라를 막론하고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어느 나라의 범죄소설이든 점점 더 잔혹하고 무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일까? 뉴질랜드를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청정지역이라고 말하는 나라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이렇게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이 가진 잔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보통 따돌림이라는 건 항의를 하면 할수록 더 커지고 선생님들은 손도 쓸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에이드리언의 반 친구들은 그가 좋은 학생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걸 뭉개버렸다. (137)
가장 예민할 청소년기에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무시했다면 어쩜..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괴물을 키워버렸는지 모른다. 따돌림을 당한 친구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다면, 그 작은 괴물은 서서히 작아져 가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마음속에 괴물들이 점점 커져가는 지도 모른다. 혹.. 우리도 무심코 친구의 마음에 괴물을 키우게 만든 것은 아닐까?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