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쇠약해지시고 약해지시는 부모님과 시어머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란 사람.. 지금은 건강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고, 어떤 모습으로 주름들이 생겨나게 될까?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해서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다짐들이 실제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닐까?
나이를 곱게 먹고 싶었다. 누구보다 우아하게 나이를 먹고 싶었다. 우리 시어머님처럼 당당하고 꼿꼿하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자존심을 지키며 나이를 먹고 싶었다. 인자한 미소를 지을 줄 알고, 인생 안에서 현명한 선택을 내릴 줄 아는, 웃어른으로의 책임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싶었다. 쓸데없는 고집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그런 노인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의 인자한 할머니가 될지...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없어졌다고나 할까? 당당하고 기품 있던 어르신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도 봤고, 순식간에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경우도 봤다.
아마... 자식의 입장에서 제일 걱정되는 병명은.... 치매가 아닐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도 치매로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셨다고 한다.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치매 시어머니를 모신 울 엄마를 보면서 치매라는 병 앞에 효자, 효부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 책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린아이로 돌아가 버린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이런 것일까?
여든 살의 어머니, 여든 다섯의 어머니, 여든 아홉 살의 어머니.
나이가 들어가면 세월이 어머니가 평생 걸어온 긴 선을 차례차례 가까운 곳에서부터 지워버린다 (38)
자식들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노년기에 첫발을 내디딘 시기, 자신들은 이미 직면했거나 직면하려는 이 시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결국 자식도 부모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되풀이 되는 결론이었다. (57)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점점 어린아이로 돌아간다고들 하는데 어머니는 바로 그렇게 보였다. 어머니는 일흔 여덟 살 무렵부터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조심씩 지우며 거꾸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75)
이 책은 치매를 겪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아들의 시선으로 담백하지만 혼돈과 상처가 담담하게 그려진다. 과거의 시간 안에서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어머니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어떤 것으로 고정시켜 놓고 떠나게 되었을까? 건강할 줄만 알았던 어머니의 몸과 정신이 ‘고장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는 자식의 입장이란 주인공과 같은 마음일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병간호를 하던 남편이 부인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했던 일도 있고, 시설에 맡겨 놓은 채 연락을 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때는 누군가의 부모로 충분히 사랑받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는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것으로 형제들끼리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의 어머니는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실제 현실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치매 어른 모시기 아닐까? 건강이나 나이 듦 앞에 호언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꼬장꼬장했던 어르신이 쓰러져 거동하지 못하는 모습도 많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나이 듦과 주름들... 아직은 정정하시지만 우리 부모님도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듦을 표출할지, 어떻게 변하게 되실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어떻게 변하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도 새털처럼 가볍게 변하는 것은 아닐지... 내 자식들에게는 효도를 이야기하지만 나 역시도 제대로 효도하고 있는 딸일까? 감성과 이성 앞에서 드러내 놓고 싸우지 못해 마음 안에서는 늘 복잡하다.
나라는 사람의 양면성, 진짜 본성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기왕이면 여전히 따스한 사람이고 싶지만 모르겠다. 아니 자신이 없을 수도 있겠다. 자신 있게 나는 효도하는 딸입니다...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나 역시도 그렇고 그런 평범하면서도 나약한... 그런 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