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일까? 연속으로 읽게 된 책이 노년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나는 젊다(?)고 자부할 수도, 늙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조금은 어중간한 나이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언젠가는 다가올 나의 60대를 생각하게 된다. 남편, 죽음, 유산 상속, 그리고 공허함 까지..
도시코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59세의 중년 여성이다. 고요하고 평범했던 그녀의 삶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미국에서 들어온 아들과 유산 쟁탈전(?)을 벌이고, 도시코 모르게 10년 동안 불륜을 저지른 남편 때문에 더욱 정신적 충격을 얻게 된다. 이후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들과의 정신적 갭, 다가오는 중년 남성의 유혹과 일탈,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제 정비 하게 되는데...
부부란.. 그런 것일까? 공기 같은 존재. 같이 있지만 소중한 줄 모르고, 잃어서야 한 쪽 가슴에 구멍이 뚫리게 되는 것.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을. 늘 같은 자리에서 많이 웃어주고, 많이 얘기해 주고, 늘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 그래서 감사한 줄 몰랐는데 많이 감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 모르게 10년이란 시간을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
오랜 세월을 같이한 부인은 공기 같은 존재여서 굳이 달려져야 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 먹어서 조강지처를 내쳐야 한다는 부담감은 남편에게 큰 짐이 되었을 수도 있고, 조강지처라는 돌아갈 안식처를 무리하게 내쳐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힌트도 없이 남편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절절한 사랑은 아니었어도, 35년을 함께 한 남편이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든든한 울타리는 되어 주었던 남편의 부재. 그리고 남편을 닮은 아들과의 유산 싸움. 잔잔하지만 그 나이의 중년여성이라면 충분히 공감하지 않았을까? 사는 동안 풍요롭게 호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던 전업주부였던 도시코의 혼란스러움.
비슷비슷하게 늙어갈 거라 생각했던 고교 동창생과도 마음 속 이야기를 전부 토해 낼 수 없다. 나도 그렇지만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를 100%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했던 도시코도 혼자가 되면서 날 선 사람으로 변해 간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마냥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없으니까...
젊었을 때는 나이를 먹으면 순하고 투박해질 줄 알았는데 예순 살을 눈앞에 둔 자신의 마음은 젊었을 적보다 더 섬세하다. 때로는 폭력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충동도 생겼다. 감정의 양이 젊었을 적보다 늘어난 기분이었다. (422)
이 책은 도시코의 감정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의 당혹스러움과 혼란함을 지나 서서히 자립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려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게 될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예정했던 대로, 내가 계획했던 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에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 책에서 이런 말도 나온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실체는 이미 없었어요.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저 뿐이었죠.”(444) 59살이라는 나이. 그 나이엔 자식들이 있어도 서서히 독립해가는 시기다. 그렇다면 가족의 범주는 부부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늘 떠들썩했던 아이들의 재롱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사라지고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부부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부부가 함께 이겨야 할 인생의 중반기 이후를, 남편은 다른 여자를 통해 해결하려 했고, 도시코는 그랬기에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열등감의 실체는 실은 나 자신의 성격 같은 게 아니라 어쩌면 나와 남편의 원만하지 못한 사이에 있었던 것 아닐까 싶어. 다시 말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좀처럼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없는 답답한 부부 관계였다는 뜻이야.(539)
결혼 생활을 한지 이제 횟수로 13년이 되었다. 나에게 늘 공기 같은 남편.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자식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에 반만이라도 남편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도시코처럼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부부 관계 그리고 친구들의 관계 그리고 자식과의 관계.. 그리고 나이 듦의 시간 관계 등..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답답한 관계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남편과의 관계도, 친구간의 관계도, 자식 간의 관계도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진다. 길어지는 수명에 환호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사유하지 못한다면 결국 세금을 축내는 노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