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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모에

[도서] 다마모에

기리노 나쓰오 저/김수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일까? 연속으로 읽게 된 책이 노년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나는 젊다(?)고 자부할 수도, 늙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조금은 어중간한 나이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언젠가는 다가올 나의 60대를 생각하게 된다. 남편, 죽음, 유산 상속, 그리고 공허함 까지..

 

도시코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59세의 중년 여성이다. 고요하고 평범했던 그녀의 삶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미국에서 들어온 아들과 유산 쟁탈전(?)을 벌이고, 도시코 모르게 10년 동안 불륜을 저지른 남편 때문에 더욱 정신적 충격을 얻게 된다. 이후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들과의 정신적 갭, 다가오는 중년 남성의 유혹과 일탈,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제 정비 하게 되는데...

 

부부란.. 그런 것일까? 공기 같은 존재. 같이 있지만 소중한 줄 모르고, 잃어서야 한 쪽 가슴에 구멍이 뚫리게 되는 것.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을. 늘 같은 자리에서 많이 웃어주고, 많이 얘기해 주고, 늘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 그래서 감사한 줄 몰랐는데 많이 감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 모르게 10년이란 시간을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

 

오랜 세월을 같이한 부인은 공기 같은 존재여서 굳이 달려져야 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 먹어서 조강지처를 내쳐야 한다는 부담감은 남편에게 큰 짐이 되었을 수도 있고, 조강지처라는 돌아갈 안식처를 무리하게 내쳐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힌트도 없이 남편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절절한 사랑은 아니었어도, 35년을 함께 한 남편이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든든한 울타리는 되어 주었던 남편의 부재. 그리고 남편을 닮은 아들과의 유산 싸움. 잔잔하지만 그 나이의 중년여성이라면 충분히 공감하지 않았을까? 사는 동안 풍요롭게 호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던 전업주부였던 도시코의 혼란스러움.

 

비슷비슷하게 늙어갈 거라 생각했던 고교 동창생과도 마음 속 이야기를 전부 토해 낼 수 없다. 나도 그렇지만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를 100%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했던 도시코도 혼자가 되면서 날 선 사람으로 변해 간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마냥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없으니까...

젊었을 때는 나이를 먹으면 순하고 투박해질 줄 알았는데 예순 살을 눈앞에 둔 자신의 마음은 젊었을 적보다 더 섬세하다. 때로는 폭력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충동도 생겼다. 감정의 양이 젊었을 적보다 늘어난 기분이었다. (422)

 

이 책은 도시코의 감정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의 당혹스러움과 혼란함을 지나 서서히 자립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려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게 될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예정했던 대로, 내가 계획했던 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에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 책에서 이런 말도 나온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실체는 이미 없었어요.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저 뿐이었죠.”(444) 59살이라는 나이. 그 나이엔 자식들이 있어도 서서히 독립해가는 시기다. 그렇다면 가족의 범주는 부부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늘 떠들썩했던 아이들의 재롱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사라지고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부부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부부가 함께 이겨야 할 인생의 중반기 이후를, 남편은 다른 여자를 통해 해결하려 했고, 도시코는 그랬기에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열등감의 실체는 실은 나 자신의 성격 같은 게 아니라 어쩌면 나와 남편의 원만하지 못한 사이에 있었던 것 아닐까 싶어. 다시 말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좀처럼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없는 답답한 부부 관계였다는 뜻이야.(539)

 

결혼 생활을 한지 이제 횟수로 13년이 되었다. 나에게 늘 공기 같은 남편.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자식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에 반만이라도 남편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도시코처럼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부부 관계 그리고 친구들의 관계 그리고 자식과의 관계.. 그리고 나이 듦의 시간 관계 등..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답답한 관계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남편과의 관계도, 친구간의 관계도, 자식 간의 관계도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진다. 길어지는 수명에 환호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사유하지 못한다면 결국 세금을 축내는 노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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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하늘

    도시코의 감정변화에 공감합니다. 상속이 사람을 정말 변하게 하더군요.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서운하구요. 머리써서 더 받는 가족이 얄미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어르신들이 그랬지요. 한치앞도 못 보는 세상이라구요. 자신에 대해서조차 장담하기 참 어렵더군요.

    2013.02.12 14:42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정말이지 감정변화에 엄청 공감했어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런 상황이 되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해는 되더라구요. 가족이라는게.. 참 그렇더라구요. 어떤 상황에서는 너무도 이기적이니까요... 에궁...

      2013.02.13 09:14
  • 파워블로그 후안

    일본소설을 참 많이 읽으시네요...아마 이 소설에 나온 도시코의 얘기는 우리네 가정의 얘기일수도 있겠지요. 그저 공기같은 존재로 서로를 인지하고 있는 부부관계, 젊을적의 그 불타던 사랑도 이제는 스러져 버리고 재만 남은.. 하지만 그래도 부부간의 사랑이란...숯불처럼 은은한 맛이 있지요. 하지만 그 숯불도 끊임없이 부채질을 해주지 않으면 이내 사그러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나중에 자식들 다 장성해서 내보내고 나면 남은 생을 가족이 아닌 부부로 살아가야 하는데..그 시절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숯불을 살리기 위한 부채질을 해주어야지여...그러면 어쩜 부부간의 그 사랑도 지속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갑작스런 평균수명의 연장은 참으로 새로운 많은 문제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듯 합니다.

    2013.02.12 17:08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어쩌다보니 요즈음은 일본 소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우리네에서 일어날 일이기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그렇더라구요. 조만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는 것. 일어나지 않았음 좋겠지만 많이 흡사해요..
      부부라는게 참 그래요. 오랜시간 같이 해서 편안해서 그런지 서로를 배려하지 않더라구요. 자식들이야 크고 나면 떠날텐데... 더구나 평균 수명이 길어졌으니 부부간의 교감이 더 중요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남편에게 잘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뿐이니 미안할 따름이지요. 부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2013.02.13 09:17
  • 깽Ol

    에고.. 아직 저는 남편이 없어서..ㅠ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오늘 너무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답니다.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했던 한 젊은이가
    저 세상으로 갔더라고요.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이제 막 백일을 넘긴 한 아이의 남편이었던
    그의 죽음이... 하루종일 저를 씁쓸하게 하더라고요. 남겨진 아가와 어린 부인은....
    어찌 살아갈까...같은 생각 때문에요. 어떻게든 살아는 가겠죠. 근데... 그냥,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마음이 참 그렇더라고요. 이제는 신뢰하고 싶어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상실감.... 에고.. 부부를 떠나서 지금 제 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되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ㅠ

    2013.02.12 23:02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맞아요. 근데 왜 그 사람의 죽음앞에 말들이 많은지.. 도대체 악플을다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네요. 부인과 아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할지.. 너무 아프더라구요.

      특히나 이런 책을 읽고나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짠하네요.
      자식들은 크고 나면 때론 남과 같잖아요. 더구나 이젠 부부로 사는시간들이 점점 많아지니 부부사이가 좋아야하겠더라구요.

      아이만 바라보고 살아야할지 모르는 그 여인... 남겨진 여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젊은시절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해야할 시간에 혼자인 그 여인이..

      2013.02.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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