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게 벌써 몇 년 전인가? 25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나에게 요즈음 중학생들의 생활을 나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교복 세대가 아니어서 여학생들의 패션은 다양했다. 한창 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죠다쉬 청바지, 나이키 운동화, 그리고 명동의 보세 패션까지. 사춘기의 여중생이 그렇듯 많은 수다가 있었고, 질투가 있었고, 몰려다님이 있었다. 그 안에는 분명 왕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처럼 잔인하거나 아프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왜 이렇게 잔인하게 친구들을 왕따 시키는 것일까?
왕따를 당하던 친구가 자살을 했다. 그 친구의 유서에는 4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절친이라 칭했던 나, 왕따의 중심인물인 미시마와 네모토, 그리고 후지슌이 좋아했던 여학생 사유. 하지만 나는 후지슌의 절친이라 칭할 수 없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까지는 친했었지만 중학생이 되고 부터는 멀리했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절친 이었던 너는 후지슌이 왕따 당하고 있는 동안 뭘 했냐고? 그런 원망이 나의 인생을 무섭게 짓누르기 시작한다. 후지슌은 잘못이 없다. 다만 선택 당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미시마와 네모토가 아닌 새로운 아이들이 나타난다. 후지슌을 왕따 시키는 그룹이.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왕따 시킬 수 있는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지슌은 죽었다. 그는 왜 나를 절친이라 칭했을까?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성인이 되고 아버지가 된 나는 그 무서운 십자가를 지고 살 수 밖에 없다. 아버지가 된 나는 아버지가 된 후 후지슌을, 그리고 그 부모님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왕따에 이유가 없다는 것. 어쩜 그게 제일 무섭고 잔인한 것 아닐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누군가의 불행을 침묵으로 동의하고 있는 이 현실이 많이 슬프다. 이 세상은 오로지 피해자만 되는 사람이 없고, 오로지 가해자만 되는 사람도 없다. 지구가 둥근 것처럼 나의 선의든, 악의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십년이 되든, 이십년이 되든.. 그렇기 때문에 선한 부메랑이 되돌아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 선한 부메랑 때문에 우리는 가능하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다. 모든 이의 입장이 되어서. 후지슌의 입장, 후지슌의 부모입장, 그리고 왕따 시킨 가해자, 그리고 가해자의 부모 입장, 그리고 제 3자의 입장. 왕따를 당한 부모입장에서는 왜 그 많은 아이 중에 우리 아이였냐고 눈물 흘린다. 가해자의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는 그럴 일이 없다고 일단 아이 편을 들게 된다. 그리고 제 3자의 부모 입장에서는 휴.. 우리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떤 부모인지, 어떤 부모여야 하는지.. 아이를 사랑하고 믿어줘야 하는 것. 그건 맞다. 하지만 아이의 잘못 앞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는 분명 생각해 봐야 한다. 무조건 아이의 잘못을 감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평생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할지 모를 인생을 만들어 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 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75)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한다. 나도 부모가 되었다. 그래서 후지슌의 부모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지켜줄 수 없었던 부모 마음. 알아채지 못했던 부모의 마음. 당연히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 앞에서 부모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학교라는 건 하나의 그릇이야. 내용물이 바뀔 뿐, 그릇 자체에 뭐가 남는 건 아니지, 그리고 교사의 일은 내용물을 보는 거야. 12년 전에 죽은 학생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하기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왕따를 봐야 하거든. (299)
책을 다 읽고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모두의 입장을 생각하고 싶어서다. 어떻게 사랑을 줘야 모가 나지 않은 아이가 될까? 어떻게 사랑을 줘야 친구를, 이웃을 배려하는 아이로 자라게 될까? 부모, 그리고 아이들, 선생님까지..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