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하면 나도 꽤 많은 경험이 있다. 피자헛, 롯데리아, 비디오 방, 지하철역에서 유동 인구 조사하는 조사원, 삼성 의료원 내방 환자 기록, 과외, 도서관 책 정리 알바, 책 읽고 문제 내는 일, 사무실 서류 정리, 설계사무소에서 모형 만들기 등. 장기 알바와 단기 알바까지. 시간 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 때에도 5시간 이상 잠자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집안에 빚이 있어서 알바를 했던 것은 아니고, 등록금 마련을 위한 알바였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요즈음 젊은 친구들은 어떨까? 20대 신용 불량에, 30대엔 파산이라는 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주변에도 제법 많은 친구들이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로 졸업과 동시에 빚을 진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백인주. 나이는 서른 셋. 그녀는 아르바이트라면 안 해 본 일이 없다. 정규직 일을 구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한다. 그녀가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엄마의 사업이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녀에겐 늘 귀신처럼 돈을 받으려는 사채업자가 떠돌고 그들을 피해 떠나는 것이 인주의 인생이다. 때문에 정규직으로는 일할 수 없다. 그녀가 했던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 CCTV부터 나이트클럽 위장 손님, 인형 탈 알바, 고시원 총무, 방송국 방청객, 식당, 커피숍, 상가 수첩 알바까지.. 자신의 신원을 제대로 알려고 하는 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산 신청이 받아 들여져 억울하게 상속 받은 빚의 그늘에서 벗어날까 싶었지만 공문서들이 날아온다. 그런 그녀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랑하는 연인 호성이 있다는 것. 자신의 처지 때문에 그 누구도 쉽게 만날 수 없었지만 호성은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빚이 있는 그녀를 호성의 부모는 받아들여 줄까?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인주에게 희망의 빛이 들어오게 될까?
알바 지옥까지는 아니어도 나 역시 하루에 2-3개 정도의 알바를 해본 적이 있다. 방학에는 그보다 더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저 추억으로만 생각되지만.. 그 당시 나는 정말 힘들었다. 대학만 졸업하면 뭔가가 될 것 같았는데 졸업과 동시에 IMF가 터지고 취직은 물 건너 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때문에 동기들이나 선배들은 휴학을 신청했고 가능하면 졸업을 미루기도 했다.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대학에서 1년 휴학은 애교인 것 같다. 취직을 위한 휴학. 하지만 휴학은 취직의 대안은 아닌 것 같다. 휴학을 하는 동안 돈이 안 들어가는 아니니까. 악순환은 계속 되고 졸업과 동시에 학생들은 빚을 지게 되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만약 지금처럼 등록금이 비쌌다면 나 역시도 대학 졸업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다양한 알바들이 등장한다. 내가 해본 알바도 있고 처음 들어본 알바도 있다. 인주가, 이 나라의 청춘이 열심히 생활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빚을 지게 되면 그 빚을 갚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빚이 빚을 만드는 구조. 돈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구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 텔레비전을 틀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대출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 대출을 받는 게 당연하고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광고를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결국 고리의 대출을 한 사람들은 어려운 서민들일 테니까.
답답하고 아픈 소설이었다. 인주의 엄마가 돈에 대한 욕심이 덜했다면 이들의 가족은 덜 아프지 않았을까? 돈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