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을 고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1~3살의 아이를 키우는 것. 지인들이 늦둥이를 낳았다고 하면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만, 나에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면 막연하게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왔을 때, 남편은 출근하고 나 혼자 우는 아이를 돌보던 그때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하며 울고 싶었던 그때를. 아이가 사랑스러운 건 잠자고 있을 때뿐.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변하는 아이에 대한 내 마음 때문에 미치도록 서글펐던 그때를. 만약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었다면... 그걸 알았다면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웠을지...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이 책의 주인공 리사코는 세 살 딸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우연히 형사 재판의 보충 재판원으로 선정된다. 이 사건의 요지는 친모가 젖먹이 딸을 욕조에 빠뜨려 살해한 것인데 재판이 진행될수록 리사코는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던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지난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남편이나 시어머니 그리고 친정엄마는 왜 나에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던 건지, 어쩌면 리사코도 사건의 여성처럼 딸아이를 살해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아이를 키우는 리사코에게 누구도 따스한 말을 건네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분노와 짜증이 쌓여갔던 지난 시간들... 누구의 아이와 비교하며 끊임없이 리사코를 자극하는 사람들... 리사코는 그래서 사건의 여자를 더욱 이해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리사코에게 공감을 했다. 나는 아들 둘을 낳고 키웠지만 둘 다 모유수유를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완모를 할 수 없었던 내 몸(?) 때문에... 전문가가 와서 진단을 하고나서야 잔소리를 끝냈던 시어머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표현했던 시댁 어른들. 모유수유를 하지 못했던 내 죄책감. 하지만 다행인지 아이들은 건강하게 그리고 따스한 아이들로 잘 자라주고 있다. 그것 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일일이 간섭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집으로 올라오시는 통에 늘 긴장상태였던 그때.. 어쩜 그래서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 일수도... 그때는 시도 때도 없이 많이 울었었던 것 같다. 평소 눈물이라면 찾아 볼 수 없었던 내가... 뭐든 내 탓이라고 말하는 시댁어른들 때문에 죽고 싶었으니까.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다시는, 정말이지 다시는 아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과는 상관없이.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에. 엄마 아니 어머니의 위대함을 워낙 많이 들었다. 어머니 하면 눈물 먼저 나오는 게 사람들이지만.. 그런 위대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엄마들은 또 얼마나 많은 희생과 눈물을 숨겼을지... 정말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내 부모님과는 다른 부모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게 된다. 내 부모님과 같은 부모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아픈 일인지.. 이젠 조금 알 수 있으니까. 내 아이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나중에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으면 그 마음을 알게 될까?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지? 이젠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아이는 내 이기심으로 키우면 안 된다는 사실. 그 아이가 올바른 인성을 가진 멋진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선 다양한 사람들의 따스한 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한 건. 아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그녀의 마음을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 그렇게 키운다고, 왜 너만 유난하냐고 그런 말로 상처 입히지 말았어야 한다. 시어머니와 비교하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아이의 엄마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점점 아이를 낳는 부부들이 줄고 있다. 아이를 낳으라고 다양한 정책을 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낳은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 이것도 중요함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