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이란, 이 희미한 어스름 속에서 끝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는 이 무서운 질주 밖에 없었다. 침묵, 추위, 눈 그리고 자기 곁을 지키는 거만한 인물, 조각상 같은 남자의 차가운 눈은 바로 은백색 수은으로 가득 찬 헤르메스의 눈, 얼음의 눈, 그 여자의 영혼을 빼앗고 위협하는 눈이었다. -164쪽
이렇다 할 서사도, 구체적이거나 명료한 시간도 공간도 모호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이 모든 것이 뒤섞인 혼돈 그 자체인 소설이다. 드러나는 소설 속, 주요 배역인 화자(話者)와 여자,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