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읽어나가는 〈북클럽 『자본』〉시리즈의 10 권째이다.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1권 제 7편 「자본의 축적 과정」중 제 21장 "단순 재생산"과 제 22장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전화"라는 2개의 장을 다루고 있는데, '자본의 생산'을 높은 봉우리에서 조망하는, 즉 생산 과정의 반복이라는 자본의 자기 갱신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자본의 정체를 폭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전체로서 자본주의의 재생산,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을 고려하는 관점에 서면 생산수단과 노동력 구매, 생산, 유통(판매)이라는 하나 하나 개별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커다란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 그것들이 내재하고 있는 계기와 과정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된다. 이 관점으로부터 드러나는 주목할 만한 것은 '자본가는 결코 임금 지불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가가 노동자 자신에게 지불한 가치를 생산물가치에 담고, 생산물을 판매하면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지불했던 임금을 회수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사실 고용주(자본가)는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았"다고 해도 그릇되다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여기서 단순 재생산이나 확대 재생산을 설명할 생각은 없다.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즉 생산에 투입할 것인지, 개인적으로 모두 소비하거나 그저 화폐 축재에 탐닉할 것인지에 따른 분류일 뿐이다. 다만 자본주의의 속성상 자본가는 확대재생산을 통해 잉여가치를 더욱 늘려나갈 것이라는 이해로 족할 것 같다. 잉여가치란 "등가물 없이 취득한 가치 내지 지불하지 않은 타인의 노동"이라는 불불노동(不拂勞動)이므로 이것을 극대화하려는 탐욕을 걱정할 까닭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곧 노동력만 구매할 수 있다면 자본가는 계속해서 "대가없이 취한 돈으로 대가를 지불하며" 부를 늘릴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누군가 100억이라는 돈이 있다고 하자. 그 돈이 어떻게 그의 소유가 되었는지는 무시하고, 그가 1년 동안 생산수단 구입비로 80억을, 노동력 구입에 20억을 써서 120억을 벌었다고 할 때, 잉여가치는 20억이다. 단순재생산, 즉 잉여가치를 그가 사적으로 모두 소비(치부)하고, 다시금 100억으로 동일한 생산을 5년간 하면 그는 총 100억의 잉여가치를 다 써 버려도 역시 100억으로 재생산을 반복할 수 있다. 그리곤 이 100억이 자기 것이라고 한다. 그는 최초의 100억을 이미 모두 회수하였으며, 단순 재생산에 투입된 100억은 사실 그의 것이 아니다. 즉 최초의 자본과 5년 후 자본의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법은 이것을 자본가의 재산이라고 한다. 여기에 어떤 모순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이는 소위 '사적 소유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기에 합법적이요 정당화된다. 자본가의 잉여가치 취득의 핵심 기제인 '타인의 노동력 소유', 다시 말해서 "내가 노동하지 않았지만 타인의 노동을 내 것으로 사용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노동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 생산물은 내 것이라는 논리"의 성립 때문이다. 일례로 '이 생산물은 내가 몇 명 고용해서 만들어 낸 거야'라고 말하는 자본가의 말 속에서 노동력의 소유, 상품화된 노동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노동하는 시간을 벗어난 노동자의 여가시간은 그렇다면 생산과 무관한 시간일까? 자본주의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를 생산하도록 한다. 즉 노동자의 소비는 자본가의 '낭비적 소비'와는 달리 '생산적 소비'라고 부른다. 노동자는 일하기 위해 먹고, 아니 일하는 중에도 밥을 먹을 뿐만 아니라 근육과 뼈와 뇌를 재생산한다. 자기계발을 하고 보다 쓸모있는 노동력이 되기위해 스스로 관리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한 것으로 가치를 지불하고 더불어 잉여가치까지 얻으며 기계나 그 어떤 설비처럼 관리비도 들이지 않으니 돌멩이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一石二鳥) 정도가 아니라 가상의 돌 혹은 던진것 처럼 착각만 일으켜도 두 마리의 새를 잡는(幻石二鳥) 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출현하는 역사적 조건이라는 '가난'은 노동의 지속적 공급을 보장해주기까지 하며, 최저임금이라는 기막힌 도구가 한 몫 거들어주기까지 한다.

【본문 81쪽 중 부분 발췌】
저자 고병권의 이 책을 모두 옮겨 적어 많은 이들과 생각을 같이하고 싶을 정도이지만 노동의 소외와 노동력의 착취분이 곧 잉여가치임을, 또한 이 노동력 착취분이 자본이 되는 것임을,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 역시 착취된 자기 노동 가치임을 아는 것만으로 , 자본주의의 순환,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란 바로 이 체계의 반복임을 이해하는 것으로 맺기로 하자. 이 책이 설명하는 『자본』 1권 제 7편인 '자본의 축적'이란 곧 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통한 잉여가치의 무한 축적, 노동력의 끊임없는 착취를 토대로 작동하는 것임을 확인하는 다음 책의 예고 문장이야말로 맺음말로 맞춤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