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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2 세트

[도서] 행성 1,2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상상력으로 사랑받는 한 작가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인류에게 외치고 있다. 그의 상상력의 깊이는 바닥을 보여 주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와 후폭풍은 상상 이상으로 괴롭히지만, 또 하나의 상상력 소재가 된다. 실현 가능성을 초월하더라도 순수성으로 수십 년 동안 상상력에 허우적거리고는 것을 탐닉하게 한다. 매년 한 권씩 만들어지는 공간을 쫓기 바쁘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신세계의 수렁 속으로 빠진다. 그 어느 누구도 쉽게 그리지 못했던 공간에서 라벤더 향기가 샤방샤방, 심쿵함이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뛰어넘는다.

 

쥐들의 지구 침공이다. 인간의 수가 80억에서 10억으로 급감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과 쥐가 벌인 대전쟁이 고양이 버전이다. , 앵무새, 돼지는 이름만 얹은 수준이지만 고양이는 일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이집트 여신의 이름을 한 우리의 주인공 암컷 바스테트는 103번째 부족이 되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하고 인간의 습성과 문명을 평가한다.

 

완벽해 보이는 존재에게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구석이 있다. 저자에게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있고, 주인공에게는 <엄마><지구><우주>가 있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과 상식으로 쉬어 가는 공간을 만들고, 주인공은 일상의 공간에서는 엄마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절대적 위기에서는 지구와 우주에 기원으로 전환의 공간을 만든다. 엄마의 말은 삶의 좌표가 된다. 전자는 이야기 전개의 소재로 삼고, 후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기둥으로 삼는다.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추론해가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절대적 존재를 배경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존재는 스스로 만든 신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누구이고 타인과 어떻게 다른가? 고양이 주제에 세상을 구하고 인간의 여왕이 되겠다는 오만하고 거만한 생각으로 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각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을 위한 최고의 무기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이다.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잠이 필요하다. 최고의 에너지의 원천은 꿈에 있다. 정신의 힘이 분출하기 위해서는 꿈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에 대한 지식도 아이디어의 보고가 된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구체적인 상상력들이 그렇게 펼쳐진다.

 

정수리에 USB 단자를 달아서 자그마한 검은색 동글을 끼우면 인간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라는 장치는 제3의 눈이 돼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다. 압권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만들어낸 변형된 DNA를 바이러스를 통해서 퍼트려서 쥐들이 소통하지 못하게 하여 싸움을 부추겨 자멸로 유도하는 작전이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아쉽게도 거기에서 끝난다.

 

인간들의 상상력은 고작 이거야?(P286)’ 인간의 대책은 기껏해야 핵폭탄으로 맨해튼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주인공도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어도 소통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꿈도 꾸지 않는다.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은 쉬워도,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2% 부족해 보이는 것은 나만일까? 작가 자신의 상상력에 대한 자기 자각은 자기 질문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통은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가장 완벽한 치료제이다. 반전이다. 지금까지 대화와 토론을 부정하는 전제 시대의 여왕을 추앙하였다. 갑툭튀로 소통, 소통 방해는 비밀병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라는 미명하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대화와 토론을 매우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온갖 막장을 볼 수 있었다. 기후 위기, 공장식 축산, 조류 독감, 코로나19 등 많은 문제는 수십 년 전에 경고되었지만, 대책은 여전히 옥신각신이다. 미래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상상력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행복보다는 불행을 위해서 사용하는 존재이다. 어린아이 같은 존재다. 무책임하고 부패한 정부는 내로남불하고, 국민들은 각자도생을 위해서 온갖 편법과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충돌하는 공간은 혼돈의 공간이 된다. 나 이외의 타인은 지옥이 된다. 그런 인간들은 지구상의 다른 동물보다 한심해 보였다.

 

무지의 자각. 만땅의 대반전이다. 소통이라는 반전은 애교 수준이었다. 오작동으로 인간과 고양이들 살육하는 AI 로봇이 불러온 절정의 인간 환멸은 통과의례 같았다. 기생충 인간들은 공룡처럼 사라져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지론을 허물어 버린다. 자신의 생존 본능보다 종의 우월감을 앞세우고, 사소한 문제조차 토론하고, 입에서는 소음만 배출하고, 파괴하던 종이 최후의 승자가 된 비결이 있었다. 미래는 권력을 쥔 자들의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자들의 것(P312)도 아니었다.

 

그렇게 비난만 받고 똥볼만 차던 인간들에게서 존경할만한 구석이 숨어 있었다. 모순투성이로 점철되는 인간이 수만 년 동안 행성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이유가 있었다. 상상력과 소통은 절대적 변수가 아니었다. 스스로 무지함을 자각하고 보완할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유일한 동물 스스로 무지함을 자각하고 보완할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유일한 동물에게 멸종의 위기에 놓인 마지막 희망호의 미래를 거는 도박 아닌 도박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2. P140) 미래는 항상 최악과 최선으로 열려 있다. 모든 가능성이 선택지 위에 놓여 있다. 쥐가 아닌 동물들의 지구 침공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잡아먹었던 토끼, 고슴도치, 들소뿐만 아니라 쥐에게 협력하였던 비둘기, 박쥐는 물론이고 쥐까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 어떤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느냐도 다양한 가능성의 변수가 된다. 잃어버린 5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달라지지 않은 과정 역시 결과도 그대로 답습하게 되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법칙 아닌 법칙은 오늘의 삶에 멍에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시간을 절대 변수로 하는 인생에는 원상회복이라는 것은 없다. 오직 삶이 멈추지 않는 한 희망 또한 사라지지 않(2. p11)는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상상의 흔적이 글로 남는다. 그러기에 자신의 죽음 이후의 지구도 궁금하다. 한바탕 소동(?)으로 마무리되는 그의 상상력은 한 여름밤의 꿈같은 그저 그런 몽상이 아니었다. 현실의 문제를 그대로 나열하기만 하는 것은 식상하다. 과거를 딛고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칠하며 근본적으로 미래에 유의미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단순한 흥미 이상을 넘는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리의 정신이 무한히 확장할 가능성(P372)을 위한 첫 단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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