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수필 중의 하나이다. 이 글에서는 냄새가 난다. 옛 얘기가 살아난다. 그것도 내 마음 깊숙히 자리 밥은 좌심실과 우심방에서 뜨거운 피가 나의 가슴을 두드린다. 그것도 거세게, 팔딱팔딱. 나는 이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가을에는 낙엽이지고 나무는 옷을 입니다. 나도 옷을 입니다. 나는 옷을 입는다. 냄새로, 추억으로 옷을 입는다. 지금의 스산함은 미래의 추억을 위한 것이라고 옷을 입는다. 커피 냄새, 개암 냄새, 연기가 자욱하게 드리워진 우리 집 뒤뜰을 기억한다. 그리고 삶을 불태운다... 기억을 태운다. 묵은 지 냄새가 난다. 구리지만 향긋하다. 언제나 이 맘 때면 느껴보고 싶은 냄새다. 지금은 그 냄새를 맡기 어렵다. 그 자리를 불이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이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랬다. 그들도 내 기억 속의 자리는 태우지 못한다. 나는 내년에도 이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 냄새에 내 몸에 베이면 나는 더 진해지는 것 같다.
---------------------------------------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 새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엣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어서, 어느덧 뜰 안에 자욱해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띄운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