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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속박과 억압의 사슬

 

잘츠부르크 대주교가 사망하고 새로 선출된 콜로레도 대주교는 재정적인 이유로 레오폴트를 지원하지 않고 유급휴가에서 무급 휴가로 바꾸는 등 여러모로 레오폴트 부자와의 사이가 틀어진다. 유럽을 다니며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알리고 명성도 높아지지만, 그가 원하는 직장은 구할 수가 없었다. 이 당시 음악가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살린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 시스템이었기에 잘츠부르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직장을 찾으려 했다. 결국, 아버지는 잘츠부르크에 남아 부악장인 본업에 충실해야 했고 어머니가 모차르트와 유럽을 다녔지만, 직장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1778년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어쩔 수 없이 1779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로 돌아온다. 모차르트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에서 머물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중대한 일이었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는 스타인 자신이 잘츠부르크에선 궁정의 음악가일 뿐이라는 존재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모차르트는 유년 시절부터 유럽 긍정을 돌아다니면서 최고의 작 곡가이자 연주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 꿈을 심 어준 건 아버지 레오폴트였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오랜 구직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 다고 아버지가 종용하고 나선 것이다. 모차르트의 잘츠부르크행 은 정상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겼을 것이다. 그 고통은 무엇보다 좌절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결국 모차르트는 1779년 1월 중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다.(p.147~148)
 

3장에서 모차르트가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작곡한 전무후무한 작곡가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졌다면 4장에서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자리를 찾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모차르트의 구직 과정이 그려진다. 아마 너무 나이가 어려서 일 수도 있고 유럽 지역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의 텃새와 레오폴트의 악착같은 행동이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으로 짐작된다. 자기에게 맞는 때가 있다는데 아마도 10대의 모차르트는 천재성을 인정받고 지속적인 그의 천재성 발휘하고 더 실력을 다닌 것에 만족했어야 하나보다.

모차르트

김성현 저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어린 나이 신동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한다고 한다.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도 만 13세 때인 1977년 잘츠부르크에서 카라얀의 지휘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고 한다.

<Anne Sophie Mutter-Mozart Concerto no 3 -1stmov>

출처 : https://youtu.be/oSOwglbayPA


https://youtu.be/oSOwglbay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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