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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7

[도서] 아리랑 7

조정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아리랑 3부로 들어섰다.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갯벌간척사업이 시작되고, 국외에서 자유시사변으로 독립군 활동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며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혈단이 활약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동경대지진으로 조선인대학살이 자행되고 서서히 신지식층 사이에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면 조선 곳곳에서 노동쟁의와 소작쟁의가 벌어지며 조선노동공제회가 창립된다.

 

갯벌간척사업으로 조선인의 노동력 착취 및 임금 착복으로 일본인의 배만 불리게 되는데 중간 관리인 조선인 배신자들의 악랄함 또한 여전하다.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에 눈이 멀어 같은 민족에게 고통을 주던 이들은 일본인들에게 편리한 이용 도구가 된다. 방대근은 러시아에서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의혈단 단원으로 활동한다. 그의 누나 수국이는 양치성이 밀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 그를 죽이려는 시도한 후 도망치지만 그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 후 정을 주지 않고 중국인 부부에게 입양을 보낸다. 수국이 언니 보름이는 군산에서 아비 없는 자식을 셋이나 키우며 여전히 힘든 날들을 보낸다. 대지주 송가네 아들 세 명 중 막내 정도규는 공산주의 사상을 농민들과 노농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조직해 임금 삭감과 노동력 착취에 맞서 소작쟁의와 노동쟁의를 벌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만주에 있는 송수익의 아들 송중원은 일본으로 유학 생활을 하며 조선 노동자들의 실상을 헤아리며 민족의 현실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되는데 이때 동경대지진이 일어나고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조선사람들을 위해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한다는 요시다의 말은 물론 당치도 않는 거짓말이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일본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 것이 그 정책이었다. 일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공업생산력은 급속히 발전한 반면 농업생산력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3년 전인 1918년에는 대규모의 쌀폭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공업생산력을 지속시키면서 모자라는 쌀을 손쉽게 충당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식민지 조선이었다. (p.31)

 

보라 조선의 사나이 된 자들이 더욱이 배움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그건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항일이냐, 친일이냐 하는 것이다. 아니, 또 하나 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항일도 친일도 하지 않고 중간에서 엉거주춤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히 친일이다. 다만 적극적이지 않고 소극적이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것이 왜 친일인가? 조선인에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항일을 해야 할 책 일과 의무가 있다. 더욱이 배움을 가진 지식인들은 그 책무가 더 커진 다. 그런데 왜놈들의 범죄를 방관하다니. 범죄를 방관하는 것은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고 동조하는 또다른 범죄다. (p.250)

 

송중원은 그 부유한 도시의 모습 위에 남루한 조선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동경은 다름 아닌 일본의 모습이었고 일본의 실체였다. 그리고 조선노동자들은 조선의 모습이었고 조선의 실체였다. 송중원은 눈을 질끈 감으며 신음을 씹었다. (p.273)

 

7권에서는 신지식층이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일본 자국에서도 조선에서 그리고 독립운동 활동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는 점이 가장 큰 핵심으로 다가왔다. 3·1 운동 후 일본도 총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 하면서 농민과 노동자들의 단결은 큰 힘을 발휘한다. 일본의 착취는 날이 갈수록 더 교묘해지고 이들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민족의 등에 칼을 꼽는 인물들과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끝까지 소신을 굳히지 않았던 사람은 한용훈 선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모든 이들을 생각하며 내 하루하루를 또 감사히 열심히 살아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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