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데, 서평
저번 달부터 독서모임 멤버 두 분과 함께하는 Yes24 북클러버 도서로 이번 7월은 '모모'가 선정되었다. 가벼운 책을 읽고 싶기도 했고, 최근에 문득 어릴 적 읽은 이 책의 내용을 다시 어른이 되어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다시 읽기 전,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라고는 '모모'라는 여자아이, 그리고 '시간'을 주제로 다루는 책 이라는 것 뿐이었다. 책을 읽어내려감과 동시에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스토리에 이정도로 내가 이 책을 까먹고 있었다니 충격을 받았다. 과연 이 <모모>를 어릴 적에 '읽은 책' 이라고 말해도 되나 싶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독자들에게만 보이는 '카시오페이아' 등 뒤에 적힌 글씨 '끝' 이라는 일러스트레이션은 다시금 나를 어릴 적 이 책을 읽던 그 때로 끌고 들어갔다. 드문 드문 기억이 나는 이 책, 어른이 된 후 다시 느낀 내 감상평은...?
감상평을 말하기 앞서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난 부모도, 친척도, 아무도 없는 꼬마 여자아이 '모모'는 마을에 있는 원형극장에서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마을에 자리잡아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 아래 살게 된 모모가 행운이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후에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모모를 곁에 두게 된 것이 행운이 되어버린다. 모모는 마을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을 열심히 들어주었고, 모모의 경청으로 그들의 문제거리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신기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모모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는 그 아이의 충분한 시간 덕이었다. 어느새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모모한테 가보게!"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사람들에게 회색신사들이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낭비하는 시간을 미래를 위해 저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회색신사들은 점점 많아지고 그런 회색신사를 만난 마을 사람들의 시간은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그들의 하루는 점점 빨라지고 삭막해져갔다. 어느새 회색신사와의 계약도 잊고 그들은 시간을 아껴 일을 하는데 집중했다. 그들이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 생각한 시간은 사실은 더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회색신사들의 이런 계획을 알아낸 모모는 가장 친한 친구인 베포와 기기,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을 지켜내려 하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버리고, 어느날 모모를 찾아온 거북이 '카시오페이아'를 따라 어디론가 떠나게 되는데... 모모가 떠나고 흘러버린 1년의 시간. 과연 모모는 마을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 다시 본 이 동화의 첫 느낌은 허무함이었다. 뭔가 대단한 서사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회색신사를 물리치는 모모의 모험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회색신사의 자멸은 그들의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아이들에게 명확한 '권선징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로써는 좋은 결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나는 과연 '시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 '회색신사'가 다가오지 않았을까, 나는 그걸 잊고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2주 전부터 바로 전주까지 출근을 매일 하는 상황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고, 를 반복하고 나니 에너지는 하나도 없고 시간은 어느새 2주나 지나있었다는 걸 느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내 2주의 시간동안 나는 불행했다. 아는 언니가 회색신사가 나에게 다녀간 거라고 했다. 오...! 그런가?
캐나다에 살고 취업을 하면서 나는 삶과 일을 분리하는데에 노력을 많이 했다. 퇴근 후 일에 대한 생각을 그냥 수도꼭지 잠그듯 꽉 잠글 수 있게 까지 되는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일을 하며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을 집에까지 가져오는 일, 꿈까지 꿔가며 스트레스를 받는 일. 지금도 완벽하게 분리를 해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휴무날, 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휴무를 즐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푹 쉴 때도 있고, 내 취미활동으로 가득 채우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계획을 세우는 등 나의 행복과 연계된 일들을 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파워 J라 그런가,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꼼꼼히 계획을 세워내려가다보면 또 여유없이 바쁘게 사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시간'을 다루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책에서는 아이들을 회색신사들의 천적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포섭해 그들의 시간을 아끼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를 떠올려보면, 학교에서 하교하자마자 바쁘게 여러 학원들을 다니며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어른들이 그들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고, 현실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며 그들을 학원에 보낸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이 상황이 과연 옳은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든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실수는 어른들 혼자 하는 걸로는 부족한 것일까. 다신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시간이 학교와 학원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 어른처럼 되어갔다. 아이들은 짜증스럽게, 지루해하며, 적의를 품고서,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을 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p.350 <모모> 미하엘 엔데
이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일인 듯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앞으로 일어날 일인 듯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는 그래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p.506 <모모> 미하엘 엔데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 책의 '시간'에 대한 내용이 계속 공감가는 것을 보면 '시간'에 대한 인간들의 고찰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고, 미래에도 계속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들의 경험을 통해 '시간'을 계속해서 배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동화는 계속해서 회자되어 미래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