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천선란
리뷰
이미 작년에 한 번 읽은 책이지만 예스24 북클러버 12월 도서로 선정되어 재독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다닐 정도로 좋았었는데 다시 읽어도 참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읽었을 때는 다리가 불편한 은혜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일방적인 배려가 오히려 불편이고 차별일 수 있다는 내용이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이번 재독에서는 휴머노이드 콜리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의 삶의 다채로움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실수투성이다. 우린 이제 실수투성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언제나 일관적인 기계를 선호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 대신 감정이 없는 로봇의 발전을 기대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완벽'한 삶을 기술의 발전에 기대어 이루길 소망한다.
하지만 막상 기계적으로 완벽한 콜리가 보는 불완전한 인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누군가가 보기엔 비효율적이며 합리적이지 않을지라도, 개개인이 모두 각자의 생각으로, 각자의 성향대로, 각자의 의지로, 각기 다른 행동을 하기에 우리의 삶은 예측불가능하며 그렇기에 다채롭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삶의 아름다움이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천 개의 파랑> 中
로봇이 상용화되고 기술이 발전한 이 소설의 배경 속에서도 우리는 아직 같은 사회문제를 고민한다. 장애인인권부터 동물권까지,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하나도 보호되지 않으며 발달된 기술의 혜택은 고스란히 돈과 명예를 손에 쥔 자들에게 돌아간다. 상상 속 이야기이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 미래의 모습이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도 장애인들의 인권은 무시되고 그들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 나라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한다. 그들이 시위라도 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커녕 시위 중 겪는 자신들의 불편함을 호소하기 바쁘다. 장애인들은 매일 겪는 일상일텐데.
동물권도 비건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고기의 소비량은 절대적으로 많고, 가축들의 사육 시스템을 파헤쳐보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잔인하기 그지 없다.
이런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기술이 현재의 속도로, 아니 더 빠른 속도로 나날이 발전한다면 이 소설 속 배경이 우리의 현실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이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복희가 민주에게 했던 말 처럼.
"우리가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상상보다 늘 나을 거예요."
<천 개의 파랑> 中
작가는 휴머노이드인 콜리를 통해 우리에게 원초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가 그냥 당연하다 여기며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을. 그리고 그런 콜리의 물음에 답을 하면서 책 속 인물들은 삶의 답을 찾아간다. 책을 통해 작가가 남긴 말들은 하나같이 참 아름다웠다. 그 중 몇 개를 남기며 서평을 마무리 해본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 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응.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천 개의 파랑> 中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천 개의 파랑> 中
슬픔을 겪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지구에 고여버린 시간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까.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히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천 개의 파랑>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