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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도서]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저/김영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we only live once. wrong!
we only die once. we live every day.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는 중에 접한 문장이였는데,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 두 사람의 모습과 편지글의 내용을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삶의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가진 사후세계의 유무에 따라 현생을 사는 태도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꽤 크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죽음은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화두가 되는 적은 거의 없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기에(아닐 확률이 더 높기에) 사는데 더 집중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으로 이 죽기 전의 삶을 채울지에 대한 더 집중한다. 그래서 욜로도 나오고, 존엄사도 나오고, 그렇기에 운명론도 나오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사후세계를 더 잘 준비하려는 메시지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혹은 인간)의 죽음이 쉽게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지만, 종교성을 배재하고라도 확실히 정해진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죽음 이전에 살아가는 삶에서 만나는 우연의 사건들(질병을 포함해서)을 아주 넓은 가능성의 차원으로 바라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연과 확률, 아무리 객관적인 데이터로 사실여부를 검증하고,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좀 더 큰 확률의 범주 안에만 있을 뿐, 확실한 죽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우연성과 좀 더 높은 확률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고, 운명론을 따르기보다, 아무리 확실하게 준비해도 충분할 수 없고, 또 제어할 수 없는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삶의 가능성과 우연에 열린 자세를 취하는 것, 이것이 삶을 더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책으로 정리되었다.

책을 읽으며, 평소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과 꽤 일치하는 면(피할 수 없는 죽음의 완전함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사이의 살아있는 시간에 집중하자)이 있었다. 죽는다는 사실 자체를 무겁게 여기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살아있는 삶에 집중할 수 있다고 본다. (죽음 덕분에 삶에 초점이 더 맞춰진다는 의미에서) 그래서 이런 방향성이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공감했다.

이소노 마호가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확률론이 그저 ‘약한 운명론’과 다르지 않으며, 그 운명론이 아픈 개인에게 질병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으로 과학적 근거나 확률이라는 도구도 결국은 약한 운명론의 맥락일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차단했었는지를 떠올리게 했다. 비단 질병만이 아니라, 우리가 진로를 결정하거나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할 때 내리는 선택들을 떠올려보면, 거의 확률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고려하게 되는데, 이런 선택이 운명론적인 배경일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과감하고 무모한 도전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로 사실이구나 싶다.(운명론은 체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지속, 확률론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로 정리될 것이기에)

더불어, 개인의 선택이 온전히 개인의 선택만 일 수 없는(개인이 선택이 타인과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정말 개인적일 수 없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운명론적 배경을 혹시라도 나나, 조직이 의사소통하는 방식에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죽음으로 종결하기보다는 우연처럼 마주할 일의 하나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열어주며 나아가야겠다.

*인상적인 문장
갈림길 중 하나로 들어서는 것은 외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생겨난 수많은 가능성들을 만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능성이란 계속 나뉘는 길 중에서 도착지를 알 수 있는 한 줄기 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가능성이란 항상 쉬지 않고 변화하는 전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처럼 변화하는 가능성 중에는 나쁜 일이 벌어질 가능성 또한 숱하게 존재합니다. 평범하게 사는 인생‘을 이루려 노력했던 도요코 씨에게 ‘또다시 심방 잔떨림이 일어난다.‘라는 가능성이 있었듯이 말입니다. 미래란 나빠질 가능성 또한 포함한 총체이기 때문에 우리네 삶은 외길을 나아가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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