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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미술관

[도서] 히포크라테스 미술관

박광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의 저자 박광혁씨는 현직 내과의사이다. 그동안 그림과 인문학을 연결한 책들을 읽어왔지만 현직 의사가 쓴 책은 처음이다. 의사가 그림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고, 좀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다. 그러나 책을 받아보니 쓸데없는 기우였고 만듦새도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내실있게 만들려고 했는지 저자의 노력과 출판사의 편집력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책에는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림에 담긴 의학과 인문학적 코드를 찾아내어 관찰한 저자의 알뜰살뜰한 기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 어떤 명화 해설서보다 내용이 풍부했다. 이런 책은 편집에도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표지에 어떤 그림을 사용할 것인지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본문 내용에서는 텍스트와 그림간의 배치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원화의 색감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가 관건이다. 아무리 글 내용이 유려해도 기본이 되는 그림이 원래의 색감대로 나오지 않으면 예술책으로서의 가치가 훅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목차만 봐도 그림 느낌! 오지 않나?

 

 

 

 

 

 

저자 박광혁씨는 갤러리아 나이트(galleria night)’라는 별명이 있다는데 아라비안 나이트를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 한 점에서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밤새 쏟아낼 만큼 해박한 미술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걸작을 만나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놀랐다. 내가 모르는, 처음 보는 그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5장에 걸쳐 소개되는 그림의 양이 꽤 많은데 아는 화가보다 모르는 화가 투성이었다. 그동안 아주 유명한 화가의 유명 그림들을 소개하는 것을 중복해서 읽었다는 뜻이 된다. 클래식 음악도 아는 것만 계속 듣게 되는데 그림도 그랬단 말인가? 당황스러웠다. 모르는 화가에 대한 설명이니 내용도 다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나마 첫 장에서 다룬 화가는 고흐였고 연결한 다른 예술가는 차이코프스키와 로트렉이었다. 1장에서 아는 예술가, 아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평소 읽던 미술책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던 거다.

 

독자들도 고흐는 다 알테니까 1장으로 구성을 소개해본다. 저자가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에서 만난 그림은 고흐의 유서 같은 그림 <영원의 문>이다.

1890년에 유화로 완성한 이 그림은 그로부터 8년 전 그렸던 소묘에서 시작되었다.

 

유화는 자살하기 두 달전에 완성한 그림이다. 당시 고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절망감과 경제적 궁핍까지 겹친 상태에 정신착란이 심해져 자주 발작을 일으켰다. 깊은 슬픔과 비통함을 이 노인의 모습에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흐가 남긴 자화상 중에 가장 비통한 자화상일 거라고 저자는 생각했다. 보통은 그림 설명을 작가의 상황과 연결하면 끝이 나는데 저자는 그러지 않는다.

 

<영원의 문>과 데자뷰를 이루는 음악을 소개하는데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비창>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죽기 9일 전에 발표한 <비창>은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었을 것이라고 하며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죽음으로 몰고 간 뒤 콜레라 감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비통한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과 음악을 소개하고 그것을 만든 화가와 작곡가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했으며 동성애의 역사와 짧은 상식까지 더했다.

 

이 장에서 사용한 그림은 6점이나 되는데 텍스트의 순서에 부합하는 그림을 맞춤하게 배치했다. <영원의 문> 소묘와 유화, 동성애를 설명하면서 길버트 베이커의 그림 일부, 로트렉의 <침대에서>, 파벨 페도토프의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은 콜레라> 마지막으로 니콜라이 크즈네초프의 <차이코프스키 초상화>이다.

 

본문 내용에서 설명하지 않는 그림은 글씨체와 색상을 바꿔 그 그림에 설명을 붙였다. 보통 다른 책에서는 그림 하단에 본문 내용과 동일한 것을 복붙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도 그림만 보고 안 읽고 넘겼다가 혹시나 하고 읽어보니 본문에 없는 설명이었다. 그림의 색감이 좋아서 맘에 들었는데 요런 디테일도 좋았다. 깨알 상식이라 할 수 있는 내용도 있었는데 동성애를 나타내는 무지개색은 화가 길버트 베이커에 의해 제안되어 지금까지 상징색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2장부터는 진짜 모르는 화가, 처음 보는 그림들이 많았다. 새로운 화가를 알고 그림을 감상하면서 마치 미니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그림이라 한 번 보고 기억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고흐의 그림을 척 보고 제목까지 알아맞히는 것은 그만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에 자주자주 들러서 그림을 본다면 처음 보는 그림이 아니라 잘 아는 그림이 될 것이다. 어떨 땐 그림만 감상하고 또 어떨땐 도슨트를 불러내어 다시 설명을 들으면 된다. 이 미술관의 도슨트는 의사라서 더 재미있으니까.

 

이 책에서 그림과 연결한 질병도 다양하다. 자주 언급된 질병은 성병이었는데 위생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문란한 성생활은 성병을 창궐하게 만들었고 숱한 예술가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 외 머릿니처럼 질병으로 분류해야 할지 갸웃할 만 한 소재부터 조현병, 외과 수술, 나아가 굿닥터를 소재로 한 그림까지! 저자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의 확장을 따라 가다보면 세계여행 역사여행을 너머 미의 여행을 하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인물 중에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얼굴만 보고 아는 사람이라 생각한 건 그 주인공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다. 9월에 나온 줄리언 반스의 책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의 주인공 닥터 포지가 이 사람이다.

 

 

집에서 저 정도의 옷을 입고 저런 자세를 취하다니! 저 오른손은 의사라기보다 모델에 가까워 보인다. 닥터 포지는 19세기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인들과는 다 아는 사이였고 그를 흠모하는 여성들도 줄을 서서 대기했다고 한다. 여성편력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에게 난소물혹 제거수술을 받으며 가까워진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그림을 보자니 저 정도는 되어야 닥터 포지 옆에 설 수 있겠다 싶었다.

 

 

닥터 포지는 잘생긴 바람둥이로 유명했지만 자신의 본업에서도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그는 부인과의 권위자로 통했다. 외과, 부인과에서 유명한 논문을 여러 편 남겼고, 그가 처음 개발한 부인과용 의료기구들은 지금까지 사용될 정도로 탁월하다고 한다. 복부 절개수술에서도 명성이 자자했고, 1889년에는 프랑스 최초로 위소장연결수술을 성공했다. 닥터 포지 같은 사람을 보면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 히포크라테스의 방에서는 책 제목 히포크라테스와 속표지로 선택한 인물을 설명하고 있다. 루벤스가 그린 루도비쿠스 논니우스의 초상화로 그는 이슬람 의학의 시대로 불리던 시기에 활약했던 의사였다. 그림 속 그의 방에는 히포크라테스의 흉상과 전집이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전집 가운데 금언집에는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이 많은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그가 남긴 기록이다. 금언집 첫머리에 나오는 아래 긴 문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인생은 짧고, 테크네는 길며, 기회는 순간이고, 경험은 흔들리며, 판단은 어렵다.”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여기서 인생은 의술이나 의학에 몸담은 의사나 의학자의 생애다. 지난한 의학의 길에 비해 의사의 삶은 턱없이 짧으니 한 눈 팔지 말고 의료와 학문에 매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책은 그동안 유명 그림 다루는 인문학 서적 좀 읽어왔다!고 젠체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처음 보는 그림으로 시작해 의학과 음악, 역사, 성경까지 종횡무진 확장되는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지적 충만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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