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는 거야 TV를 보는 거야?” 앞에 앉아있는 남자친구가 말한다.
나는 밥을 먹는 걸까? TV를 보는 걸까? 아님, 노래를 듣는 걸까?
오랜만에 그와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만나자마자 안부를 묻기도 전에 동시에 배고프다며 밥을 먹기로 했다. 양식을 좋아하는 나와 한식을 좋아하는 그 사이에서 메뉴를 타협하기란 쉽지 않았다. 고르다가 다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이날은 의외로 메뉴 선정이 쉬웠다. 역전에 깨끗해 보이는 순댓국집이 보였다. 순댓국. 그 때문에 먹게 된 음식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순댓국집으로 들어갔다. 국밥 2개를 주문하고 못 본 사이 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애정 넘치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귀에 노래가 들려왔다.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사랑도 세상엔 없는 것 인가봐 미안해 널 더 이상 잡지 않을게 사랑해 그래도 너를 보낼게”
버즈다. 버즈의 노래 ‘가난한 사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식당을 둘러보자 한쪽에 마련된 티브이에 버즈가 보였다.
나는 버즈의 보컬 민경훈을 좋아한다. 노래하는 민경훈이 좋다. 이쁜 얼굴로 파워풀하게 노래하는 모습이 참 좋다. 고음으로 올라갈 때 마이크를 올리는 모습조차 멋있다.
바로 그가 TV 화면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 뭐라고?”
“밥을 먹는 거냐고 TV를 보는 거냐고?”
“아 미안”
손으로는 수저를 잡고 있었고 그 수저로 국밥을 뜨고 입으로 가져갔다. 입은 무언가 들어오자 자동으로 움직였다. 먹는 행위가 아닌 씹는 행위를 이어나갔다.
이걸 먹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자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안 들렸다. 내 눈은 TV 화면에 내 귀는 민경훈의 목소리에만 반응하고 있었다.
때마침 노래가 끝났고 그제야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미안. 오빠 내가 민경훈 좋아하는 거 알지? 민경훈 노래하는 거 멋지지 않아? 노래 진짜 잘하는 거 같아. 너무 멋있어.”
남자친구는 이미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기분이 상한 남자친구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데, 아직도 귓가에 민경훈의 노랫소리가 맴돈다. 고작 연예인 때문에 화가 난 남자친구가 귀엽기도 하고 그의 기분을 달래줘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랑 가득 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알콩달콩 대화하던 우리는 어디 가고 침묵만이 흘렀다.
중요한 건 아직도 나는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사랑도 세상엔 없는 것인가 봐 미안해 널 더 이상 잡지 않을게 사랑해 그래도 너를 보낼게’
식당을 나와 극장으로 향했다. 말 없는 남자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오빠 뭐 연예인 때문에 화를 내고 그래~ 민경훈은 나 알지도 못하는데, 삐진 거야?”
온갖 애교를 부렸고 극장에 도착했을 땐 남자친구의 기분이 풀려있었다.
이 글을 빌려 그 당시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거 알아? 버즈가 부르는 노래 하나하나 다 오빠와 내 이야기 같고 사랑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오빠를 떠올리는 거? 오빠가 아니었다면 버즈 노래는 아니, 그 어떤 사랑 노래도 나에게 무의미했을지도 몰라.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 노래가 내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거야.
내가 버즈에게 푹 빠져서 국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해도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오빠를 떠올릴 거야. 남편아, 너의 존재가 없었다면 노래는 나에게 무의미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