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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도서] 달려라, 아비

김애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김애란님의 달려라, 아비 소설을 읽고. 리뷰에 개인적인 감상 및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민감하신 분들은 읽지 말고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은 크게 달지 않고, 소설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문장들을 직접 타이핑해 달아두겠습니다. 모두 제 마음을 크게 치고 뒤흔들다 나간 문장들입니다. 김애란 작가의 글이 늘 그렇 듯 부드럽고 잔잔하게 그리고 덤덤하고 유쾌하게 저를 위로합니다.

영원한 화자 中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냉소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허영심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냉소적이고 허영심도 많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알기'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알 수 없는 쓰다듬에 숨죽이는 사람이다.

나는 말을 줍고 다니는 사람, 나는 나의 수집가, 나는 나를 찌푸린 눈으로 보는 나에게 가장 버르장머리없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말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호프집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상체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내 앞사람이나 옆사람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하루에 한가지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일 오늘 나의 사장 큰 일과가 운동화를 빠는 일이라면 나는 정만 그낭 운동화만 빠는 사람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지만 앉아서도 누워서도 온종일 '오늘 운동화를 빨아야 되는데....'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부지런한 사람이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지만 재치있는 사람을 보면 적의를 품는 사람. 나는 때론 돈 만원 때문에 우울해지는 사람이며, 현금지급기 앞에서 항상 뒷사람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나는 낯선 이들을 웃기고 난 뒤 안도하는 사람.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은 수난자들의 질문입니다'라는 알료사의 말에 밑줄 긋는 사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서워하는 것, 깔보는 것, 묻는 것이다. 나는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것, 곁눈질하는 것, 눈감아주는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혈액형 혹은 별자리에 대해, 우리가 무수히 침을 발라가며 넘겼던 해설들에 대해서도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잔뜩 남겨진 다이다.

나는 이것저것을 긁어모으지만 당시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관심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언제나 조금씩 지루해진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이가에 대해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 대답하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고개 돌리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유머감각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속물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유머감각이 있고 속물적이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다. 나는 '묻기'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철렁이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첫사랑. 나는 내가 읽지 않는 필독도서, 나는 나의 죄인 적 없으나 벌이 된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성명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창 앞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레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들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하여, 스스로를 책 하는 것이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하나의 자부, 하나의 자만. 나는 당신에게 '진짜'인 것 같았고,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뿌듯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언제나 잘난 척보다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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