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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함께 산책을

[도서] 니체와 함께 산책을

시라토리 하루히코 저/김윤경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요즘 글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글쓰기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어려우면 집중한다.

'니체와 함께 산책'을 선택한 이유

책 표지만 보고 신청했다. 다산초당에서 나온 니체 관련 책이니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니체, 인류 최고의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다산초당, 이 출판사의 책이 나를 실망시킨 적은 거의 없다. 다른 것보다 편집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체와 짜임새가 극강이다. 처음으로 책을 펴낸 저자들의 글도 그 짜임새와 문체를 보면 기성작가 이상이다. 이는 아마도 저자 원고의 힘이라기보다는 다산초당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산초당의 책들을 상당수 읽었고, 거의 다 성공했다. 항상 배울 점이 있다. 소재서부터 글을 책으로 엮는 스킬까지 나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을 내는 출판사이다.

저자 소개

시라토리 하루히코

깨달음을 얻었는가?

이름처럼 일본 사람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하지만 저자 소개에 보면 '초역 니체의 말'은 전 세계에서 200만 부 이상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다산초당도 그래서 이 책을 출판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철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일본 최고의 니체 전문가로 공부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했다고 한다. 저자 소개 글에 특이한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인류의 생각과 삶을 바꾼 사상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의문을 가졌고, 그들이 특별한 체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관조', '명상',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집필 의도 또한 우리가 각자 일상에서 깨달음을 이를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고 쓰여있다.

내가 독서 방법 중에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도 '화두 독서법'이다. 어떤 하나의 질문을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래 생각할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그 사색의 결과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는 것은 독서의 목적과도 직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집필 의도에 나온 세 가지 단어도 결국 사색을 통한 답을 찾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 철학자든, 성공자든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사람, 인생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본 사람은 어떤 혜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혜안은 항상 자기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다. 다른 사람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고, 프레임의 외각, 정형화되지 않은 곳을 자신이 탐험하고 그 안에서 어떤 진리를 찾은 것이다. 크게 보면 그런 혜안을 갖게 되는 방법은 모두 동일하다. 틀을 넘어 보았는가?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가? 그래서 깨달음을 얻었는가?이다.

이 책 속에는 어떤 깨달음이 있을지 궁금하다.

프롤로그

관조

관조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관조란 어떤 대상을 볼 때 사고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과도 다르나. 객관적으로 볼 때는 사고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명상

명상은 꼭 가만히 앉은 상태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를 멈추고 무언가에 집중한 상태라면 언제든지 명상이 될 수 있다.

깨달음

관조와 명상이 깊어지면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이 세 가지는 경계 없이 서로 이어져 있다. 깨달음은 특정한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온다. 18p

우리가 있은 것을 있는 그대로 본 적이 있을까? 우리 누구도 그럴 수는 없다. 컵을 보면 용도를 떠올리게 되고, 사람을 보면 나와의 관계를 보고, 편의점을 보면 먹을 것을 떠올리게 되고, 돈을 보면 욕심이 깃든다.

우리는 그 어떤 것을 볼 때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정의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각 사물은 어디에 쓰이는 것이고, 어떤 일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기준을 정해 놓는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경험이 있는 일을 다시 하게 된다면 그 기준에 기대어 판단한다. 이 판단이 너무도 확고하면 배척이라는 것이 생긴다. 기준이라는 잣대의 틀로, 현상을 파악하니 옳고 그름이 발생하고, 잘 된 것과 잘못된 것이 발생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보자. 처음 만나는 것이 너무도 많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것은 아이의 장난감이 되어버린다. 용도는 모른다. 좋고 나쁨도 없다. 그냥 가지고 놀면 된다. 선입견이 없고, 기준도 없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렇게 기준 없이 무언가를 본 적이 있는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기준을 찾는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 속 유사한 것을 찾아들어간다. 그리고 결국 그 무엇이든 비슷한 것을 찾아와 그 틀을 새로 만난 것에 대입한다. 그리고 제단을 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서 단 한 번도 있는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

관조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재단하고 기준에 맞추던 작업을 내려놓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있는 것을 있는 것 그대로 바라보는 작업이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행동하던 모든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어린아이가 되어 바라보는 작업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 일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견이 들어있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본질에 다가설 준비가 된다. 그제서야 우리는 제대로 된 사색으로 들어갈 수 있고 깨달음을 찾을 수 있고, 혜안을 가질 수 있다.

1부 철학자처럼 자유로워지는 법

니체

철학자의 명상법

니체는 자연에서 찾아낸 세 가지를 사랑했는데, 바로 광대함, 고요함, 햇빛이었다. 그는 하루에 여덟 시간 동안 혼자 자연 속에 있다 보면 15분간의 깊은 침잠이 몇 번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 여덟 시간 동안 몇 번인가 아주 깊은 15분이 찾아온다. 그때야말로 내 안의 가장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활성 음료를 마실 수 있다. 27p

궁금해진다. 과연 니체의 내면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활성 음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같은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고귀함

현대사회의 생활 속도는 두려울 만큼 점점 빨라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생각하는 시간도, 생각하는 데 필요한 정적도 잃어버렸다. 명상하는 삶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본래 명상 생활을 하려면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33p

우리 말 중에 오만가지 생각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람이 하루에 하는 생각이 45천 가지 정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생각의 수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정확하다고는 보기는 힘들다. 아무튼 사람은 하루에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단 한순간이라도 생각을 하고 지내는 시간은 없다.

명상 강의를 몇 번 했다. 강의를 하면서 짧게나마 실습 시간을 갖는데, 역시나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정말 어려워한다. 단 한순간도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 동안 무언가를 계속해서 한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마저도 생각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24시간 단 1초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그렇게 1초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이런 얘기는 왜 나오는 걸까?

'아~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오늘 뭐 했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렇다.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하지만 기억에 남을 무언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기억에도 남지 않는 그냥 그런 무언가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냥 대부분의 날들을 그렇게 보내다. 어쩌다가 한 번 기억날 무언가를 할 뿐이다.

니체는 얘기한다.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무거나 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동시에 아무거나 하던 그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평생이 가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다시 무언가를 할 때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생각을 리셋하고, 다른 생각이 들어올 공간을 열어 놓을 수 있다. 내면 깊이 있는 생각이 올라올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은 정말 고귀한 시간이다.

괴테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쓴 작가 괴테, 정말 예정하는 작가이다. 물론 인격적인 건 아니고 글이 그렇다. 특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50번 이상 읽은 것 같다. 책에서 괴테의 글이 소개된다.

겨울이 나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정원의 상록수가 푸르다. 태양은 밝게 빛나며, 북쪽 저 멀리 산등성이를 뒤덮은 눈이 보인다. 정원 벽을 따라 심어진 레몬 나무는 서서히 갈대로 뒤덮이고 있지만, 등자나무는 아직 갈대에 덮이지 않은 채 서 있다.

이 나무에는 더없이 실한 열매가 수백 개 달려 있다.

독일에서처럼 잘 깎여 손질되거나 화분에 심어진 것이 아니라, 비옥한 땅에서 자유롭고 무성하게 우거져 여러 나무와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상상할 수 없다. 40p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쓸 수 있는 걸까?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면 이렇게 묘사하는 글들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그 글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이다. 글을 풀어내는 실력,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능력은 세계 최고가 아닌 역사상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이 나온다.

나는 이런 감탄을 하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괴테는 '융화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하기 위해 괴테의 글을 가지고 왔다. 괴테는 '친화력'이라는 소설도 썼고, 자연과 사람 모두와 어우러지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프롬

프롬은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도 명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상적인 통찰이다. 명상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사람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자유롭지 않고, 때때로 망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62p

2부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는 법

명상은 일상이다

명상이라고 해서 별달리 고상한 것도, 종교적인 것도 아니다. 110p

길가나 창가에 서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명상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면서 명상할 수도 있다. 손을 씻으면서도 할 수 있다. 또는 단순한 작업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명상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111p

명상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상의 깊은 의미는 없다. 111p

보기 위해서는 여기에 있어야 하네. 하지만 자네는 대개 어딘가 다른 곳에 있지 않은가.

엔서니 드멜로가 쓴 선사와 제자의 대화

"어디서 깨달음을 추구해야 할까요?"

"여기서 찾으면 되네"

"언제 일어납니까?"

"바로 지금 일어나지."

"그렇다면 저는 왜 그걸 체험하지 못하는 거죠?"

"자네가 보지 않기 때문이지."

"무엇을 찾으라고 하시는 건가요?"

"아무것도. 다만 보기만 하면 되네."

"무엇을 보라고 하시는 겁니까?"

"눈에 머무는 것을 보는 거지."

"무언가 특별한 방법으로 봐야 하는 건가요?"

"그렇지 않다네. 지극히 평범한 방법이면 충분하지."

"저는 언제나 평범한 방법으로 보고 있는걸요?"

"아니, 보고 있지 않아."

"왜 보고 있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보기 위해서는 여기에 있어야 하네. 하지만 자네는 대개 어딘가 다른 곳에 있지 않은가." 150p

제자는 깨달음을 이해하려고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자신이 현재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재는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다. 우선 시간을 보면 내가 현재라는 순간에 머무르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선사는 제자에게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깨달음을 찾아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깨달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깨달음을 자신의 과거 속에서 찾고, 미래에서 찾으니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공간으로 보면 내 마음이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봐야 한다. 나의 마음이 지금 나에게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 다른 곳에 가 있는가? 깨달음을 찾고자 하지만 마음이 나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가 있으면 그곳에서는 깨달음을 찾을 수가 없다. 깨달음을 찾는 것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찾아 나서고, 다른 사람을 걱정해 주고,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어서는 깨달음을 찾을 수가 없다. 내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 그 안에 깨달음은 들어있다. 멀리서 깨달음을 가지고 와 내 안에 넣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안에 있던 깨달음을 끄집어 내는 것, 그것이 깨달음을 찾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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