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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ng the Sierra Nevada, California

Albert Bierstadt

 

처음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저는 철학, 수학, 경제학, 문학처럼 무엇인가 따로 섹션이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열심히 인문학이라는 파트를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아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인문학이라고 꽤 유명한데 도대체 왜 인문학이라는 분야만 별도로 책들이 없는지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없었던거죠. 철학이나 문학처럼 다른 분야는 분야끼리 책을 모아 놓은 것을 알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 있거나 세세하게 찾아보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후로 인문학에 대해 딱히 정의를 찾아보거나 알아 보지 않고 그저 인문학이라는 분야가 있던데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하는가에 대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때 마다 찾고는 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아 인문학은 아무래도 철학을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봤는데 인문학이라고 떠들어 대는 걸 볼 때 제 판단이 딱히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무난하게 듣거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가지면서 편견 아닌 편견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니 꼭 철학만이 인문학이 아니였습니다. 소설도 인문학이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약간 혼란과 혼동이 왔죠. 도대체, 뭘 인문학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곰곰히 들여다보니 사람 인(人)자에 글월 문(文)에 배울 학(學)를 합쳐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결국에 인문학이라는 것은 어딘지 거창하게 생각한 제 잘못이였죠. 그저, 사람에 대해 글로 써 있는 걸 배우는 거였습니다. 뭐, 꼭 글로 써 있는 것만으로 배우는 것이 인문학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그렇게 인간에 대해 배우는 것이니 이 세상 모든 것은 전부 인문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저는 다시 고쳐 머리속에 입력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벌어지는 일을 비롯한 모든 것이 전부 인간과 관계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말이죠.

 

그 중에서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처럼 인간에 집중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그러니, 어딘지 어려워 보이는 철학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역사를 비롯한 다수의 것들이 인문학 범주에 포함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철학을 인문학이라고 알고 있을 당시에는 인문학은 무척이라 가까이 하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당시에도 소설을 읽고 있었으니 저는 인문학을 가까이 접하고 있었던 걸 제 자신이 몰랐던거죠.

 

인문학은 언제나 우리 곁에 늘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굳이 인식을 하고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난리를 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가 볼 때 인문학이 유행 아닌 유행(??)이 된 것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로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전 재산을 줘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아이폰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선풍을 끌면서 아이폰의 빼어난 디자인과 인간친화적인 기계가 바로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나왔고 그것은 바로 인문학으로 부터 출발했다는 이유로 - 어쩌면 누군가 마케팅 차원으로 약간의 부풀리기를 했을 수도 있는 - 우리나라 CEO들이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회의 지도층이 관심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되며 인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도 출판되고 사람들이 읽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인문학이라 불리우는 책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읽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책을 읽는다면 결국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면에서 볼 때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좋은 방향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더 할 수 없이 좋은 것이라 봅니다. 소외 받았던 인문책들이 사람들이 선택을 받게 되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과 관련책을 보고 있고 어느 정도는 인문에 대해 이야기를 할 정도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이 생긴 듯 합니다. 관련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기도 했지만 인문학 강의도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아쉬운 것은 인문학 강좌들이 일반이 대상보다는 CEO를 대상으로 한 고액이라는 점이지만 그건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 공부는 하는데 정작 인문책은 읽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 강좌의 커리큘럼을 보면 - 제가 그런 강좌를 들어보거나 참여 해 본적이 없지만 - 꽤 많은 인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철학자들을 다루기도 하고 역사를 배우기도 하고 유명한 고전 소설을 다루기도 하고 유명한 미술작품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심지어 고액의 강좌에서는 직접 그 현장을 가기도 합니다. 한국이 아닌 외국이라도 가는 코스로 진행이 되더군요.

 

제가 인문학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고 인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탁견을 보일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지도 않고 인문책을 많이 읽지도 못했지만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인문학을 읽어라류의 책들을 읽고 인문학 이렇게 시작하라류의 책들은 읽고 있는데 정작 그런 책들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이 쓴 책이나 소개된 책을 읽지 않는 겁니다. 워낙, 소개하는 책들이 많아 질리는 감이 있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죠.

 

고전으로부터 배우는 경영과 같은 강의나 책에서 이를테면 죄와 벌이나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배워야 할 점과 적용해야 할 점에 대해서 책을 통해 읽거나 강사로부터 핵심만 쏙쏙 빼 먹지만 정작 그 책은 읽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선는 그 책을 읽었다고 할 수도 없고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도 없다고 보지만 그런 일들이 현재 제가 볼 때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책을 펴 낸 분이나 강의를 하시는 분은 어디까지나 그런 책이나 인물에게 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물가까지 데려갈 뿐입니다. 물을 직접 떠 먹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죠.

 

또한, 그런 책이나 강의를 통해 보게되고 듣게되고 알게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책을 저술한 저자나 강의를 한 강사의 의견일 뿐 고전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그 책을 읽으면 강사가 이야기한 것이나 관련되 책을 저술한 저자와는 완전히 다른 것을 느끼고 알고 배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부분만 바고 똑같은 방향만 가려한다면 그게 바로 문제죠.

 

인문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여러 방법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지만 누군가는 전쟁의 승리에서 누군가는 전쟁의 승리에서 배우기도 하고 누군가는 전쟁의 과정에서 배우고 누군가는 전쟁 소용돌이에서 고생하는 민초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다들 각자 직접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바로 인문을 공부하고 읽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샤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많은 장군들을 쫓아 다녔더니 역사에서 배우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겠느냐 직접 전쟁에 참여해야만 배울 수 있지 않겠냐며 했답니다. 그러자, 그 장군이 하는 말이 그렇다면 전쟁터에 60번 참여한 저 개에게 가서 배우라고 했답니다.

 

어쩌면, 지금 사람들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들 인문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가 남들과 다른 나를 찾고 싶기보다는 솔직히 남들과는 차별화된 나를 만들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작, 인문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진대 말이죠. 

 

남들과 경재에서 이거간 차별화된 나를 만들기 위해 인문을 공부하고자 하면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 작품이나 한 사건에 대해서 오로지 그 작품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강사나 저자의 이야기만 듣고 배운다면 과연 차별이라는 것이 생길까요? 다들 똑같은 걸 알고 있으니 말이죠. 여러 방향으로 자신만의 생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정면만 모든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해 봤자 비슷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는 위에서도 보고 밑에서도 보고 측면에서도 봐야지만 여러 의견과 생각들이 부딪치고 싸워 정반합을 통해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많이 계면스럽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자신있게 할 정도로 인문에 대해 많이 읽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정도의 실력도 능력도 없으니 말이죠. 그래도 저는 인문학 책을 읽지 않고 인문책을 직접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인문학 책을 읽으면 인문 책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고 떠 먹여주니 말이죠. 인문 책에서는 제가 직접 느끼고 깨닫고 알아야 하기 때문에 좀 고통스럽습니다. 정확하게는 더럽게 읽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유행처럼 인문학에 대해 알려고 하고 배우려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감히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라도 시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발전이고 커다란 도약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말이죠. 이왕이면 인문학이라는 분야의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의 목적에 좀 더 충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족하다 부족한 저지만 한 번 끄적여 봤습니다.

Valley oh the Yosemite

Albert Biersta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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