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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가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딱히 이유도 없이, 그냥 슬프고,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지금 이것은 내가 아니야,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왜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다른 곳에 있고, 그곳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은 뭐지?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여기는 어디지? 나는 누구지?"

이번 에피소드에서 리사가 이런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런 슬픔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이해받을 수 있다면, 슬픔이 좀 덜어질 수도 있겠지만, 리사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호머는 이런 슬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바트는 세상에 혼자 있어도 즐겁게 놀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속에서 자신의 가치 따위로 고민하지는 않지요.

그런 슬픔을 유일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음악뿐입니다. 그것도 블루스 음악입니다.

리사는 입냄새 머피라는 흑은 음악가로 부터, 블루스의 소울을 배우지요.

머피는 리사의 연주에 이렇게 평합니다.

"연주를 잘하는구나, 사람들이 좋아하겠어"

리사는 말하지요

"그래도 제 기분은 안좋아졌어요"

머피는 말합니다.

"그게 블루스야. 사람들을 우울하게 해 주고 돈을 버는 거지"

이게 무슨 말인가요?

삶이란 원래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니던가요?

일부러 돈을 내고 우울해지려고 하다니!!

마지는 리사에게 말합니다.

"기분이 어떤가는 중요한게 아니란다.
중요한 것은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나쁜 기분을 밟고 지나갈 수 있게 무릎 아래 발 밑으로 내려보내 버려라.
그게 익숙해지면, 파티에도 초대되고 남자들도 널 좋아하고, 행복도 따라와"

그러나 이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만약,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그래고 슬픔과 우울함이 피해야 하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겠지요.

사람에게 우울해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그 우울함이 삶에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조건 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해야 할 때, 우울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거짓된 감정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리사에게 마지가 다시 말합니다.

"사과할게, 엄마가 틀렸었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슬프면 그냥 슬퍼해, 우리가 도와줄게.
슬픔을 다 이겨냈을 때도 우린 네 곁에 있어"

라고 말이죠.

그리고 리사와 가족들은 함께 머피의 클럽으로 가서, 함께 블루스를 들으며 이번 에피소드는 끝이 납니다.

이유없이 슬픔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 슬픔은 또한 이유없이 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슬픔이 찾아왔을 때, 반갑게 슬픔을 맞이하고, 슬픔이 함께 있는 동안 같이 슬퍼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슬픔이 떠날 때, 아쉬워하지 않고 작별하면 됩니다.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프하고, 웃을 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쁠 때 눈물 짓고, 슬플 때 웃으며, 축하할 때 시기하는 것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이 행복이지요.

다만,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하는 때인지 알게 됐다면, 걱정하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자신있고 당당하게 그렇게 하면 됩니다.

설령, 그것을 잘못 알았더라고 하더라도, 실수 했다고 하더라도, 항상 옆에서 지켜봐주는 마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당신은 당신의 마지가 틀리더라도 그의 곁에 있어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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