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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그 언어로 표현(encoding)하고, 청자는 그 표현된 언어를 해석(decoding)해서 상대의 원 생각을 유추하게 됩니다. 


유추라는 말을 한 까닭은, 아무리 표현력이 출중한 자연어(Natural Language)라고 해도, 생각의 전부를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일반적인 자로는 나노 단위의 세계를 측정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라는 수단의 한계때문에, 완벽한 생각의 표현과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많은 오해들이 인류 역사상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처럼, 성긴 수단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다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 2차적인 수단들이 추가되었습니다. 


표정, 목소리, 손짓 같이 문맥에 도움을 주는 수단들이 사용되었는데, 이들 2차 수단은 나름의 법칙(문법)을 갖고 있는 언어와는 달리, 개별 경우에 특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위 Overfit 문제라고 하는 것인데, 10년지기 친구 사이에서는 당연한 의사 소통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것이 이것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사이일수록,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특화된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집단 안에서 사용되는 의사 소통 수단의 특수성은 그 집단의 응집력에 비례합니다. 


오랜 역사가 있는 집단 일수록, 집단의 응집력이 강할 수록,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일 수록, 그 집단 내의 의사소통의 수단은 특수한 형태를 갖게 되고, 이런 특수성 때문에 외부인은 쉽사리 그 집단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우리만 아는 비밀 언어" 라는 것은 타인과 우리를 구분짓는 역할을 하고, 그 구분선이 뚜렷할 수록, 집단의 결속력은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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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조카 아이(당시 8살)가 "우샤빠, 우샤빠" 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누나는 "그게 뭐야?" 라고 물었고, 조카는 "내가 만든 말이야" 라고 대답했습니다. 


전직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던 누나는 "말이란건 말이야,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해. 그것을 언어의 사회성이라고 하거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발음을 낸다고 해서, 그것이 말이 될 수는 없어."


"아니야, 이건 말이야. 알아듣는 사람 있어!" 


"그 말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는데??" 


"삼촌(-> 네 접니다)은 알아들을 수 있어"


그래서, 누나가 저에게 확인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전날, 조카아이와 카카오톡을 하면서 만든 단어였기 때문이지요. 


<우샤빠 : 어디야?> <우샤빠우샤빠 : 뭐해?> <우샤빠우샤빠우샤빠 : 언제 올꺼야?>


3개뿐인 어휘 집합을 갖고 있는 아주 단순한 조카의 공동체 (조카 아이와 저 둘 뿐인 집단입니다) 의 공용 언어였던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변덕으로 인해, 이 언어 사전이 3개의 단어로 끝나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더 확장되고, 나름의 문법까지도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조카 아이가 이런 기억, 아주 단단한 결속력으로 뭉친 집단의 중요한 구성원 (어차피 전체 구성원이 두명 뿐이니까,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합니다) 이었다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자존감의 핵심이며, 행복한 삶의 근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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