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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도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1. 언론?

 

김 서방, 추미애 어떻게 생각해?

깜짝 놀랐다. 정치 얘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던 터다. 조심스레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에이, 아니야~! 추미애가 말이지.”

라고 하시며 10분 동안 추미애 장관을 둘러싼 음모론을 펼치셨다. 도무지 장모님께는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와 문장이 쏟아졌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조심스레 여쭈었다.

어머님,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잠시 주춤하셨다.

, 이곳저곳. 인터넷이나 유튜브나, 요즘 죄다 추미애 얘기잖아.”

그랬다. 요즘 누가 TV 뉴스 보느냐고, 다들 유튜브 본다고 하셨다. 김 서방도 유튜브 좀 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유튜브가 언론이 되었다. 유튜브를 언론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레거시 미디어다. 언론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객관적 보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더 레거시 미디어, 공중파TV와 신문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직도 시청률이 나오고 신문 구독자가 있는 건 오래된 습관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들이 문민정부의 과거청산 작업과 사정 활동에 뛰어들어, 마치 때를 만난 뭣들처럼 야단들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언론이 도맡아서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p.427), <언론노보> 끝내 변할 줄 모르는 언론인들의 기회주의 중, 1993

 

() 리영희(이하 선생님) 선생님의 27년 전 일갈이다. 언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껍데기만 바꿀 뿐이다.

    

 

2. 반성 없는 언론

 

박정희와 전두환을 세종대왕급으로 신격화한 언론인들 주에서 자기반성의 글을 썼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고, 부끄러워서 사표를 내고 신문사를 떠났다는 말을 더더구나 들어본 일이 없다.” (p.429) <언론노보> 끝내 변할 줄 모르는 언론인들의 기회주의 중, 1993.6

 

박정희와 전두환을 세종대왕급으로 신격화환 언론인들과 언론사들은 현재도 그대로다. 세월호와 박근혜 탄핵 국면, 조국과 추미애를 둘러싼 보도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지르고 본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가 개미 눈곱만큼 작게 정정 보도를 싣는다.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전 서프라이즈 대표 신상철 씨가 며칠 전 항소심에서 10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10년이 지나서야 말이다. 그에 대한 보도는 미미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기억조차 못 한다. 대중의 기억 속에는 대대적인 보도와 헤드라인만 가득할 뿐이다. 진실에 가까워야 할 미디어가 제구실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알고리즘을 타고 유튜브를 기웃거린다.

    

 

3.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

 

선생님의 책반세기의 신화를 읽고 나의 세계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22살이었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교육을 받아온 것이 억울했다. 억울함은 잠시였다. 더 늦지 않게 반세기의 신화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때부터 나 혼자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선생님의 책에 탐닉했다. 지금처럼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가공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오로지 진실 추구에 대한 신념하나로 발로 뛰며 정보를 얻고 취합해 분석했다.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방패로 써먹어 온 북한의 군사적 우위는 사실 그렇지 않음이 1998년 나의 논문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에 의해 밝혀졌다.(중략) 이 논문 때문에 국방부에서는 논문이 발표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국방백서라는 것을 펴내게 되었다.” (p.87), <한반도의 비핵화·군축 그리고 통일> , 1993.9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는 국방부나 당시 안기부 같은 곳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방패로 쓰기 위해 진실을 가렸다. 가려진 진실은 미디어에 의해 왜곡되어 전파된다. 아직도 그대로다.

 

한국의 신문들이 베트남 파병 이후 반공 성전또는 자유진영과 공산주의의 투쟁으로 전쟁을 묘사하면서 전쟁열을 부추기고 있을 때 유독 리영희 외신부장만이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썼습니다.”신홍범 도서출판 두레 대표,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

 

당시 리영희 외신부장은 결국 조선일보에서 쫓겨났다. 진실을 추구한 기자를 지켜주지 않았다. 군사정권과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에 기반한 기득권 세력은 현재도 유효하다. 입법·사법·행정·학계·언론계에 가득하다. 이제는 더 이상 군사독재 정권이 탄생하지 못하고 적법한 탄핵절차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한국 사회와 국민이지만 마주한 현실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식 석상에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의 손목시계가 기삿거리가 되고 외국의 언론들이 극찬하는 한국의 코로나 대응과 경제 상황은 한국의 기득권과 레거시 미디어들만 외면하고 있다. 그들에게 진실 추구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리와 입지, 누려온 위세가 흔들리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다. 지난 총선으로 압도적인 힘을 몰아줬음에도 공수처를 비롯한 개혁 입법이 지지부진한 이유다.

 

다음은 냉전식 극우·반공을 아직도 무슨 덕목처럼 내세우면서 일부 언론계를 주무르는 개인과 세력이다. 그들은 미국 시민보다 오히려 미국에 충성적이다.” (p.102)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 , 1994.4

 

1994년 선생님의 일갈이 2020년에도 유효하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들의 충성 대상이 미국에서 다른 곳으로 바뀔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자 역할을 자처하며 한반도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 ‘그들은 비웃었다. 조롱하고 비난하며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북미 간 회담이 최종 결렬되었을 때,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축제를 벌였다. 앞서도 언급한바, ‘그들에게 진실 추구한반도 평화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투쟁으로 독립한 나라는 해방이 되자마자 첫 사업으로 독립기념관을 짓습니다. 해방 40년이 지나서야. 그리고 늦었다 하더라도 이왕 지을 바에 그 절반은 민족반역의 관으로 할애하여 후손들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후손들이 과거를 보고. 그런데 어디 그것을 지을 수 있었습니까? 친일파들이 독립기념관을 짓겠다고 나선 판인데.” (p.336),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교훈> , 1992.6

 

근본적인 이유다. 그들이 리영희 선생님처럼 진실 추구를 향한 신념으로 살지 않는 이유다. 다른 것으로 현재를 분석할 수 있나? 찾을 수 없다. 오로지 그들이 가진 기득권과 과거로부터 쌓아온 재산과 위세를 잃기 싫은 것이다. 제대로 된 사회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청산하자고 하면 아직도 빨갱이타령이다. 견제할 수 없는 권력을 개혁하려고 하면 손에 쥔 칼자루에서 칼을 뽑고 마구 휘두른다. 한참 칼춤을 추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신들의 위세를 보여주면 그만이다.

더 이상 레거시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는 대중은 자신들만의 당파성을 갖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유튜브는 그 욕망에 최적화된 도구다. 수십만 명이 구독하는 채널은 힘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돈이 따라서 온다. 더 자극적인 썸네일로 욕망의 알고리즘을 휘어잡는다. 돈은 계속 쌓이고 대중은 탐닉하며 경도된다..

    

 

4. 미래 없는 언론

 

당신네들, 하늘을 나는 저 새를 보시오. 저 새가 오른쪽 날개로만 날고 있소? 왼쪽 날개가 있고, 그것이 오른쪽 날개만큼 크기 때문에 저렇게 멋있게 날 수 있는 것이오.” (p.24)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균형이다. 균형을 유지해야 앞을 똑바로 볼 수 있다. 당연한 사실이다. 좌나 우로 치우쳐 있다면 한쪽만 더 잘 보일 뿐이다. 레거시 미디어든,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든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직장 동료 중 보수 유튜브를 애청하는 사람이 있다. 한 번씩 대화를 나눌 때면 답답하다. 논리와 사실로 설득을 해보려는 시도조차 망설여질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 사람은 30대 중반이다. 장모님 같은 노년층이 아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세대가 10대와 60대 이상이 많다고 했다. 젊은 층이 균형 잡힌 언론을 소비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각자 도생해야 하는 사회지만 그 각자도생이 균형을 잃게 되면 지난한 갈등과 혐오를 낳는다.

이럴 때, 레거시 미디어가 중심을 잡고 객관적 사실과 진리를 기반해 보도한다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변변치 않은 나의 독서편력을 되돌아보면 간절한 소원이 앞선다. 나의 후세대나 후학들은 제법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고, 어떤 책도 국가권력에 의해 약탈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 말이다.” (p.512), <변혁의 시대정신을 따른 37> , 1992.9

 

아직도 선생님의 책과 진실 추구에 대한 신념은 유효하다. 아니, 유효해야만 한다. 더 이상 자신의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염원하신 선생님의 바람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송구한 마음으로 다시 선생님의 책을 읽는다. 미디어와 출판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며 종이책 멸망이 예언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다행히 종이책은 멸망하지 않았다. 다시 선생님의 책이 읽혀야 한다. 나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은 반세기의 신화도 더 많이 읽혀야 한다.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읽어 진실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손가락 터치 몇 번의 노력보다 수십, 수백 배의 노력이 따르겠지만 읽어야 한다. 더불어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의 책을 소개해야 한다. 브레이크 없는 알고리즘 기관차에 제동을 시도해야 한다.

 

적어도 후대가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인 채로 사회와 타인을 혐오하고 해석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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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보

    이번에 나온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라는 리영희 선집을 책상 위에 놓아둔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이 리쥬를 보면서 어서 읽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ㅎ

    2020.12.09 16:34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