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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도서] 그냥, 사람

홍은전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어린 시절에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공터나, 놀이터, 뒷산 같은 곳에서 놀았다. 몸으로 부대껴 가며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함께 노는 무리 중 꼭 바보형이 있었다. 놀다가 다른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그 무리에도 꼭 바보형이 있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만 바보형이라 불렀을 뿐, 같이 놀 때는 이름을 불렀다. 바보형이라고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그냥 같이 놀았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시절 ‘바보형’은 자폐성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런 용어도 몰랐을뿐더러 같이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른들도 꼭 “OO하고도 친하게 잘 지내야 해.”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네 ‘바보형’이 사라졌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히 동네에서 어울려 놀 시간도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한 후에도 동네에서 ‘바보형’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호트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책 없는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겐 더 큰 재난임을 알린 것 말이다.” (p.251)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가 있는 분들의 입장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TV에서도 본 적이 없다. 오늘 몇 명이 추가로 확진되었는지,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런 것들에만 집중되어 있다. 중증장애인의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검색을 해봤다. 이 독후감을 작성하는 8월 28일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한다.

 

 

“특수안경을 쓰면 보이는 가상현실처럼 자녀가 장애를 입는 순간 그녀들 앞에 놀라운 지옥도가 펼쳐진다. 도처에서 엄마의 무릎을 꿇린다.”

“장애인 다 싫어하잖아. 왜 우리한테만 그래!” (p.109)

 

 

 TV를 통해 본 낯뜨거운 장면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뇌리에 박혀 있었다. 2017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집값 떨어진다.’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들의 야만과 무자비함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자각을 한순간이었다. 경제는 발전하고 국가와 정부의 복지는 개선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와 뒹굴던 동네 ‘바보형’들을 주변부로 내몰고 있었다. 장애를 격리하고 분리하며 특별한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정책을 펼쳤을 때, 딱 지금과 같은 한국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다. 지금도 장애인은 숨어야 하는 존재다. 특수학교·복지기관·요양병원 등으로 내몰린 것이다.

 

 

“‘손 벌리는 자’이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p.124)

 

 

 물론, 나의 어린 시절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복지 정책 자체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평생을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증진을 위해 살아 온 저자의 고백 앞에서는 한낱 공수표에 불과하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p.216)

 

 

 성인이 된 후 사고로 장애인이 된 경석 씨의 고백은 함축적이다. ‘불쌍한 장애인들’이라는 인식이 ‘그냥 사람’이 되려면, 같은 장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허투루 손을 내밀거나 금방 말라버릴 동정심을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동네 ‘바보형’도 우리에겐 ‘그냥 사람’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밀어내지 않았다. 함께 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돈을 모으고 있어. 시설 나온 지 10년 되는 날까지 2천만 원을 모으는 게 목표야. 그걸 야학에 줄게.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p.242)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꽃님씨가 저자의 야학에 기부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자신처럼 시설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달라.’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과 서비스가 미비하지만, 갇힌 채로 밀려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사회 주요 이슈로 만들어 내기 위해 서울 광화문역 지하 보도에서 이어가는 노숙 농성, 최저생계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나온 뇌성마비 장애 여성, 2017년 현재, 전국의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통틀어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던 현실 등.

 

 애써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다. 죄다 몰랐던 터라 부끄러워할 겨를조차 없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다 보면 사회실험을 하는 채널들이 있다. 장애인을 돕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이라는 것을 밝히고 왜 도왔냐는 인터뷰를 하면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그냥요.”, “당연하니까요.”, “제가 가까이 있어서요.”, “도와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냥 사람”이라서 돕는 것이다. 그냥 같이 노는 ‘동네 형’이니까. 동네 ‘바보형’이라 부르며 놀아도 그것이 전혀 차별이나 따돌림이 아닌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라 생각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냥, 어울려 같이 사는 사회. 너무 먼 미래인 것 같아 아득하기는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홍은전님과 같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연구하고 부딪히며 사는 분들 말이다.

 

 

온 마음을 담아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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