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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도서]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박정애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책의 제목을 보고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몇 번을 망설이다 구매했지만 읽기는 더욱더 힘들었다. 얇은 책이지만 어렵고 길게 읽었다.

7~8년 전, 가까운 친구가 대구에 있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서 상근 직원으로 일했었다. 도와줄 일이 있다 해서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실 주소를 받아 들고 한참을 헤맸다. 사무실은 사람의 왕래가 잦지 않은 대구 구()시가지 골목 안에 있었다.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사무실은 좁았다. 좁은 사무실에는 물품이 가득했는데, 당시 후원을 위해 제작하던 희움팔찌의 구성품이었다. 시민모임의 예상보다 구매와 후원이 많아 나를 제외하고도 일손을 돕는 사람이 몇 있었다. 역사관 건립을 위한 활동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2015년 시민모임 사무실 인근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건립되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인식은 문서자료를 더 많이 발굴하여 그 피해를 입증하고 일본의 가해 책임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공간을 가로질러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외면 또는 은폐하고 싶던 위안부라는 호칭은 문서자료를 통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p.45)

 

당시만 해도 위안부보다 정신대 할머니라는 호칭이 일반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위안부로 통용되고 있다. 친구가 시민모임에서 일할 때, 몇 번 모임의 캠페인에 참석했었다. 피켓도 들고 행진도 했다. 친구가 시민모임 일을 그만두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줄어들었다. ‘위안부라는 단어를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수도 없이 보고 들었지만, 이 책을 받아든 순간 제목을 보고 이질감이 들었던 것은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현저히 줄어든 탓이다.

 

여전히 당신들이 겪은 일은 피해가 아니었다며 훈계하고 입막음하려는 역사 부정론자들이 있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p.92)

 

얼마 전, TV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지난 보수 정권하에 국정원과 일본 우익의 커넥션을 폭로했다. 나라 전체가 들썩여야 할 대단한 사건이었음에도 너무 조용했다. 받아쓴 언론은 없었고, 피를 토하며 비판해야 할 역사학계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친구가 일하는 단체라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참여하게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보도하고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극우세력이 망언하면 잠깐 보도되거나 위안부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단신으로 전달될 뿐이다.

 

피해자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평화와 인권이라는 가치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p.4)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의의가 크다. 생존하신 할머니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기록했다. 정확한 역사적 사료와 표현이 중요한 독도 영유권과는 다른 문제다. 전쟁이 끝난 후 위안부문제를 가장 지우고 싶어 한 사람들은 할머니들이셨기 때문에,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숫자 240명은 정확한 수치가 아닐 것이다. 평생을 아픔과 한으로 살아오신 할머니들의 구술을 받는 작업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과 친지, 이웃들에게도 알려질 터라, 더욱더 그렇다.

 

본문에 나온 이름은 모두 존칭을 생략하였다. 이 책에 언급된 피해자 및 인권운동가의 삶이 할머니에 갇히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 기록되기를 바랐다.” (p.5)

문서에 의존하기보다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으려는 듣는 자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흩어진 조각들을 이야기로 엮을 수 있었다.” (p.46)

 

피해자 중심으로 위안부문제에 접근하는 자세는 책의 곳곳에 드러난다. 무엇보다 할머니로 통칭하는 위안부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피해자 인생의 기록에 초점을 맞춘 접근은 의미 있는 성과다. 단편적인 기억과 엉켜있는 경험을 조합하고 정리하는 일은, 고난도의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수고로움과 인내를 동반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들은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일상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생존해냈다. 살아남아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서 자신들이 기억되기를 바랐다.” (p.78) 는 저자의 종합적인 의견은 위안부문제를 더욱 공론화해야 할 이유다. 그들의 생존은 자체로 역사가 되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견디고 끊어질 듯 힘겹게 삶의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명이 24일 별세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13명이 남게 됐다.매일신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명 별세.”, 925일 기사 중 발췌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숫자가 240명이다. 수십 명이, 수백 명이 더 생존해 계실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공식적으로 등록된 피해자가 모두 별세하신다면 대내외적으로 위안부피해자는 생존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제는 이런 책을 위해 구술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료가 남아 있는 것과 그 자료를 수정할 수 있는 당사자가 생존해 계신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일본의 극우와 가해자들, 한국의 극우와 부역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미 시작된 카운트다운이 가파르다.

 

다음에는 더욱 속 깊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열흘 뒤인 2001210일 하복향이 세상을 떠났다.” (p.33)

이수산은 어느 때고 망설이기는 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202032일 작고했다.” (p.70)

박순희는 20128월 작고했다.” (p.72)

 

시간은 피해자들 편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살아온 영겁 같은 세월과는 반대로 남아 있는 시간은 무람없다. 인터뷰 약속을 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다음번엔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않은 채 나눈 작별 인사 뒤 얼마 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운 일이다. 전하고 퍼뜨려야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너무 크다. 일개 개인과 가족, 집단의 잘못이라고 치부하며 역사 부정론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후 김순악은 위안부피해자 생활 대상자로 결정되었다. 그는 더 이상 우울증에 짓눌리지 않았다. 김순악은 대상자 결정통지서를 액자에 넣어 방에 걸어두고 보고 보고 또 봤다고 한다. 그것은 국가가 김순악을 피해자로 인정해준 것이며 삶의 고통이 김순악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p.90)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선생님이 좌절한 제자에게 말한다.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완벽을 추구하는 천재 제자가 가진 깊은 상처를 위로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 맞아. 네 잘못이 아니야.’

김순악도 평생을 짓누르던 고통을 다소 떨쳐냈다. 국가의 인정배려는 죽어 있던 영혼을 되살린 것이다. ‘결정통지서를 액자에 넣어 방에 걸어두었다는 피해자의 구술이 슬프면서도 당차고 멋있다. 그 종이 한 장이 전 생애를 어루만져 위로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숨어 지내며 가해자가 아닌 자신을 괴롭히는 인생을 살지 않게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연구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시민단체는 활동을 지속하고, 정부는 종합적 지원을 모색하고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고 찾아내야 한다. 노력을 기울여 찾아내고 알아내야 한다. 알아야 전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재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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