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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메타과학

[도서] 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물리’라 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 별명이 ‘개장수’였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별명이다. 물리 시간이면 수백 가지가 넘는 화려한 체벌 향연이 펼쳐졌었기에 거의 모든 아이들이 싫어했다. 유독 수학과 과학에는 소질이 없고 재미없어 하던 내게 ‘개장수’ 선생의 그 어색하기 짝이 없던 가발과 음흉한 미소를 띠며 아이들을 괴롭히던 광경은 과학, 특히 물리를 완전히 경멸 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했다.

(예전 내가 고등학교 때처럼 학생들 대하면 당장 뉴스에 나올 텐데……. 이제 안 그러겠지.)

 

 

이 책 「과학과 메타과학」은 물리학자가 쓴 책이다. 저자의 이름이 장회익씨인데, 이름만 입속으로 되뇌어 봐도 뭔가 학구적이고 어렵고 생소하고 낯설다.ㅎㅎ

 

“메타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채택하면서도 모든 학문 특히 자연과학의 바탕을 그 대상으로 살피며, 이렇게 얻어진 성과들은 생명과 인간을 비롯한 우리의 모든 관심사를 망라한다.” (p.7)

“자연과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속하는 일차적 실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 지식을 과학이라고 부른다면, 다시 과학과 과학이 빚어낸 문명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우리는 메타과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14)

 

일단 [메타과학]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는 어렵지 않았다.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과학적 지식’이라는 개념도 사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생각하고 고려하고 대화하는 개념인데 단어화 되어 있다 보니 어렵게 느껴질 뿐이지 가까이에 있는 개념이었다.

순수 과학이라는 것의 의미가 과거보다는 퇴색되고 추상화 되었다. 급속도로 변하고 발전하고 진화하는 현대에는 한 차원 더 높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이 필요하다. ‘응용’, ‘통합’, ‘통합’, ‘융합’ 이런 단어들이 접두사로 붙는 신조어의 대부분이 [메타과학]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 책은 총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과학과 인식”, 2부는 “생명과 인간”이다.

1부 “과학과 인식”은 과학이라는 것의 인간의 삶, 특히 과학적 지식을 수용하는 연구자 혹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과학의 논리·이론·인식 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2부 “생명과 인간”은 태초의 우주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인간의 우주적 존재 양상과 가치, 존재론적으로 어떤 인간의 모습을 지녀야 하는지에 까지 설명한다.

 

 

#

이해하지 못한 부분.

1부

사실 1부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일단 개념이 모두 낯설고 처음 들어보는 것이 많았다.

 

“지지이론, 스니드이론, 관념구조적 관점, 동역학법칙, 양자역학(상태함수), 강생기제, 상보성원리, 열역학, 통계역학 등”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와 개념이 많았고 들어봤다고 하더라도 단 한 번도 찾아보거나 읽어보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다만 이 책의 초판이 1990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대중적 과학서적은 아니었지만 한창 경제개발이다 뭐다 해서 수출 주력 산업, 제조업 등에만 국가의 정책에서부터 대학의 전공에 이르기까지 발 벗고 난리를 치던 시절에 이런 순수 학문(물리)에 대한 서적을 펴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싶었다.

사회와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진화하고 발전한다. 그것의 합목적성이 옳으냐 그르냐는 차후의 문제이다. 사회와 역사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 또한 진화하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그 삶의 합목적성에 대한 옳고 그름은 차후의 문제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은 저자인 장회익씨의 [과학→메타과학] 과 같은 진화·발전 과정과 같은 중간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이나 쓰고 있는 물건이나 보고 있는 현상들은 진일보 했는데 사람의 의식·인식 수준은 과거의 그것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물리학자가 되고 수학자가 되고 응용·통합·융합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물론 아닐 것이다.

메타로 전진하는 보폭에 크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의식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적 지식과는 달리 과학적 지식은 무의식 속에서 손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과학 공부라고 하는 학습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과학 연구라고 하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정신적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p.27)

 

과학 공부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 서적을 읽거나 교과서를 찾아보거나 지식인 형들에게 물어보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와 지금보다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정신적 활동을 지향하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상에서 ‘왜 그럴까?’ 라는 물음을 진지하고 꾸준하며 성실하게 던져 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1부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뿐이었다. 내가 나름대로 소화해 낸 결론이다.

 

“20세기 지성계의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 하나를 말하라면 아마도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를 꼽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p.113)

 

 

#

이해한 부분.

2부

1부를 읽고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2부를 읽은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생명과 인간”. 최소한 1부 보다는 쉬울 거라 생각했고 그 생각이 맞았다. 재미도 더 있었다.

 

우주의 탄생과 기원

“그런데 우주의 신비성, 생명의 신비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빠져드는 함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주가 자연의 합법칙적 질서를 따르고 있다는 점 이외에 우주가 처음부터 신비스러운 그 어떤 ‘자기조직의 능력’을 지녔다는 관점이다.” (p.211)

 

나는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다. 처음 종교를 가졌을 때는 믿지 않았다. 나름 읽고 듣고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다.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나만의 ‘메타과학적 지식’의 결과인 셈이다.

물론, 시키는 대로 믿는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대학 때부터 진화론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다. 최근에는 최재천 교수의 책도 많이 읽었다.

이후에 내린 결론이 ‘창조론이 더욱 믿을만한 이론’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신앙을 가졌어도 쌓여오던 의문이 많이 해소되고 관련된 책을 읽으며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해결되었다.

 

“대략 40억 년 전에 지구상의 풍요로운 물질적 요동 속에서 매우 단순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하나가 우연히 발생했고,” (p.292)

“초기 지구의 상황에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나타나 자신의 기대수명 동안 평균 1회 이상의 자체촉매적 기능을 수행한다면, 이러한 존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p.218)

 

이 책에서 말하는 우주 탄생과 기원에 대한 내용은 모두 추측 내지는 가정이다. ‘우연히’, ‘수행한다면’ 이런 단어는 과학, 더군다나 메타과학을 운운하는 물리학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모르겠다. 우주 탄생의 기원과 진화론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나를 설득한다면 그때는 내가 믿고 있는 창조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현재로서는 아니다.

저자도 이것이 맞다. 저것이 맞다. 라고 확실하게 선을 긋지는 않는다. 모호하게 여지를 남기는 면이 많았다. 뭉뚱그려 이렇게 장엄하고 신비로운 우주 속에서 잘 삽시다. 정도로 무마해 버린다.

 

메타과학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자세 - 인문학적 고찰

골치 아픈 1부를 지나 조금 재미있고 관심이 가는 2부의 첫 주제를 읽고 책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과학서적에서 인문서적으로의 바뀐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내용이 급변했다.

 

“현대인은 지구 생태계 전체를 파괴시키기에 충분한 행위 능력은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 안에서 자신과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보존해나가기에 충분할 만큼 명확한 통찰력은 지니지 못했다.” (p.281)

 

갑자기 생태계 파괴와 핵겨울에 대한 실제적 위험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머리를 쥐어짜며 읽었던 1부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과 소재였다. ‘메타과학적 인간’이라는 명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수많은 실제적 선택을 포함한)에 산재하는 현실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늘상 삶의 언저리에서 만져지고 맡아지는 감각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IMF이후 한국은 ‘국가가 책임질 수 없으니 알아서들 사시오!! 경쟁해서 이기시오!!’ 였다.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타고 10여년을 살아왔다. 가치 있는 것들은 도외시되고 생존하는 것에 애쓸 뿐이었다. 옆을 돌아보고 주변을 챙기는 시대정신은 사라졌다.

책에서도 명확히 지적하는바 인류는 우주와 지구를 충분히 지켜낼 만한 문명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상징적으로 ‘핵’을 명시했다. 냉전을 거치며 기하급수적으로 양산되어 이제는 폐기처분조차 할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 왔지 그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다.

 

 

“핵겨울 문제가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현재 적재된 핵무기의 극히 일부분만 폭발하더라도 이 엄청난 현상이 유발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백 메가톤 정도를 핵겨울 유발의 경계치로 보고 있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그 이하로 보는 사람도 있다.” (p.325)

 

인류가 가진 핵의 아주 작은 양만으로도 전 지구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바 아니다. ‘핵겨울’은 인류의 종말 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메타과학적 인간’의 자세다.

 

“우리는 장엄한 우주의 질서와 그 안에 주어진 삶의 기회를 경건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 질서를 존중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이 모든 의식 주체의 ‘삶’을 존엄과 긍지 가운데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p.362)

 

물리와는 이미 오래 전 결별을 선언한 나와 같은 독자가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다. 특히 책의 1부가 그렇다. 하지만 2부는 재미있고 신선했다. 어렵지만 1부의 내용을 통해 ‘메타과학적 지식, 메타과학적 인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한다면 다소 뜬금없는 인문서적으로의 트랜스폼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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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토끼13호

    책을 소화시키는것도 능력입니다.읽는것도 수월치 않았을텐데 이렇게 리뷰를 쓰시는것은 정말 대단해요. 메타과학적인 인간답게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삶의 기회를 받아들이겠습니다.

    2012.09.22 17:06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