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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아한 세계

[영화] 우아한 세계

개봉일 : 2007년 04월

한재림

한국 / 느와르 / 15세이상관람가

2006제작 / 20070405 개봉

출연 : 오정세,오달수,김소은,박지영,송강호

내용 평점 5점

송강호라는 배우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넘버3] 이전에도 연극 무대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던 그였기에 노력과 기회가 만나 지금의 그를 만들어 냈으리라 짐작한다.

크게 흥행하지는 않았던 [반칙왕]을 1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송강호 특유의 어눌하고 찌질한 소시민 연기는 황홀했다. '도대체 어떤 배우가 저런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고 장진영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명인 김지운 감독의 감각에 흠뻑 빠질수 있었던 영화였다.

무엇보다 결말이 헤피앤딩이 아니어서 좋았다.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의 고단함과 처절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말이 정말 좋았다.

같은 해 개봉된 박찬우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내 개인에게는 훨씬 감동적인 영화였다.

 

이후 송강호는 굵직한 영화들의 주연을 맡아 가며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우뚝 선다.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괴물] 등.

 

내 개인적으로는 [반칙왕] 이후 정말 송강호 답고 송강호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연기는 [우아한 세계]에서 연기한 찌질한 조폭 중간보스 강인구다. 이 영화도 10번은 넘게 봤다. 볼 때마다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주는 것을 보면 영화도 영화지만 내가 송강호를 어지간히 좋아하기는 좋아하나 보다.

 

강인구는 조폭이다. 조직 내 서열2위지만 보스의 친동생에 의해 서열3위로 밀려나고 하는 일도 청과물 도매 상가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일수쟁이질 혹은 건설 하도급 협박질 따위다. 나이는 차고 하루도 칼 맞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조폭 생활을 그만두고 싶지만 젊은 시절 큰 은혜를 입은 보스를 떠날 수 없다. 조직 내에서 계속 자리가 밀려나고 까마득한 후배놈들도 인사 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 자리에까지 밀려났지만 그만 둘 수 없다. 청춘을 바쳐 해 온 일이고 더 잘 하는 일도 없다.

외국으로 유학보낸 큰아들 놈 유학비 대고 허구헌 날 수도가 끊기는 아파트에서 벗어나려면 한 탕 해야 한다. 마누라에게도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제는 믿지 않는다.

막내 딸 녀석은 제 아빠 얼굴조차 보려 하지 않는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고 떳떳하게 직업을 밝힐수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청춘을 다 바쳤다. 조직을 위해 일하고 가족을 위해 일했다. 누군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줄 아나?? 근데 왜 이렇게 꼬여만 가는 걸까??

 

시대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막말로 강인구가 조폭 생활을 깨끗하게 청산하고 직업을 구한다 치자. 도대체 무슨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중년의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벗어나고 싶고 풀어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한 건만 제대로 터지면 교외에 으리으리한 독립주택으로 이사갈 수 있다. 현실에서 오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사 갈 새집을 구경하러 가는 길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니까.

 

꼬여만 가던 일의 정점은 노상무의 죽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엣가시였던 인구와 노상무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릉이다. 어떻게 하다보니 노상무가 죽게 되고 인구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혈육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한 노회장은 인구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어떻게 또 일이 꼬여 발사된 사냥총에 노회장이 죽게 된다.

완전하게 꼬여 도저히 풀여낼 길이 없는 막장에서 불알친구이자 경쟁 조직의 중간보스인 현수(오달수)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의도치 않은 곳에서 매듭이 풀려버린 것이다.

 

 

아버지

조폭 생활의 고단함은 강인구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멋있고 무섭고 기세등등한 기존의 영화에서 보던 조폭이 아니다. 늘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살아야 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 아내의 남편으로 찌질하고 처절하고 솔직한 모습의 강인구가 송강호에 의해 연기 된다.

그는 분명 아버지다.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비록 조폭이지만, 비록 딸에게 무시 당하는 아버지지만, 비록 아내에게 버림받는 남편이지만 아버지다. 현실이 짓눌러버린 두 어깨가 참혹하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참 싫었었다. 무섭고 권위적이고. 

5년 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기 직전 우리 가정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두 번의 수술과 네 번의 항암주사 투여.

5년의 투병과 가족의 간병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그 사이 나와 남동생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는 투병 중에도 다니시던 회사에서 명예로운 30년 직장생활 퇴직을 하셨다. 최악이던 가정의 상황은 많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많이 바뀌셨다. 죽음에 직면한 후 심경의 변화가 많으셨던 모양이다. 아직 완쾌 판정은 받지 않았지만 굉장히 건강하게 취미생활동 하시며 지내고 계신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결과가 좋지만 지난 5년은 가혹하고 힘들었다. 그것은 당사자들만 알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이다. 일순간에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 같은 청천벽력을 이겨내셨다.

뼈를 태우는 듯한 독한 항암 약물을 투여해서 다 빠져버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시고 명예퇴직식에 참석하셨다. 어색한 가발과 퉁퉁 부은 얼굴의 아버지 모습이었지만 내게는 가장 멋진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들이라고 있는 것이 아버지 마음을 도려내는 나쁜 말도 많이 하고 속도 많이 끓이고 여전히 걱정덩어리만 안겨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다.

그 힘든 3교대와 집안을 휘청거리게 했던 IMF의 상처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잘 지켜내셨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후 다시 본 [우아한 세계]의 강인구와 송강호의 모습에서 자꾸만 내 아버지가 오버랩된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자꾸만 시야가 흐릿해지고 가슴이 내려 앉는 탓에.

 

 

그래도 살아야지.

인구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 으리으리한 집에 막내 딸 희순이 그토록 원하던 유학도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큰 걱정없는 기러기 조폭 아빠 인생이 펼쳐진 것이다.

좋은 차에 좋은 집에 좋은 대접에 좋은 위치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혼자 살고 있다. 아무도 없다. 내 돈 받고 진료받고 검사하는 데 의사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뇨' 판정을 내린다. 180도 다른 환경에 살지만 사는 꼴은 똑같다. 여전히 언제 칼 맞을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가 상존한다. 일이 다 잘 풀린 것 같고 가족이 원하는 것을 마침내 해 줄 수 있지만.

 

혼자다.

 

아내와 두 아이들이 보내 온 테이프를 삐까번쩍한 홈시어터에 재생한다. 평화로운 주택가에서 천사처럼 활짝 웃는 아이들과 아내의 웃음을 마주한다.

히죽히죽

속옷 차림에 냄비 채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있는 자신과 마주한다.

히~죽~히~죽

들고 있던 냄비를 집어 던진다.

 

왜 모든 걸 다 했는데 저들과는 다른가?

내 가족인데? 내 마누라, 내 새끼들인데??

 

짜증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눈물이 인구의 눈에서 쏟아진다. 송강호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은 모든 걸 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우아한 세계]의 백미는 이 장면이다.

 

 

집어던진 냄비에서 쏟아진 라면 면발과 국물을 훌쩍거리며 걸레로 닦는 이 장면!!!!!

 

누가 이 장면을 연기할 수 있을까?

송강호가 아니면 누가 이 장면 하나로 영화의 전체를 담아낼 수 있을까?

나는 이 장면을 볼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시대를 살아가는 찌질하고 처절하고 불쌍하고 애닲은 아버지가 고스란히 투영 된다.

라면이 담긴 냄비 하나조차 시원하게 던져버릴 수 없는 현실.

 

송강호 이기에 가능하고 이 시대이기에 가능한 명 장면이다.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아버지의 현실과 나의 아버지의 현실 그것과는 많은 차이도 있고 많은 공통점도 있다.

 '아버지'가 살아가는 결코 '우아하지 않은 세계'는 똑같다. 아직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도 분명히 그 '우아하지 않은 세계'를 살아가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인구 같은 아버지가 될 지 나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 내는 것이다. 푹 눌린 두 어깨 죽지를 교차로 셀프 안마해 가며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다.

 

시원하게 라면 냄비 던져버리고 싶을 때 일단 시원하게 던지고 재빨리 젖은 걸레와 마른 걸레를 대동해 언제 던졌냐는 듯 깔끔하게 닦아내면 그만이다.

 

[반칙]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 [우아하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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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mjinsim

    송강호 영화는 믿고 봅니다^^

    2012.10.18 14:21 댓글쓰기
  • 시간의빛

    송강호만이 표현할 수 있고 소화가능한 연기라고 저도 느꼈는데 저랑 같은 걸 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로지 송강호 연기로 빛난 작품으로 전 기억합니다. ^^

    2012.10.18 14:21 댓글쓰기
  • 파란토끼13호

    송강호는 내면연기가 강한사람입니다.최근의 영화들이 흥행과 거리가 멀어져 아쉽지만,송강호의 연기는 변함이 없어요.

    2012.10.19 12:50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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