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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 숭미에 살어리랏다

[도서] 친일 · 숭미에 살어리랏다

정운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한국의 근현대사를 결정짓는 두 개의 키워드는 ‘친일’과 ‘숭미’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 시작하고 여기로 귀결된다. 과한 추론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적확한 답이다. 한국의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 대한 법적 조치나 친일인명사전 발표 당시에도 화두가 되었던 것은 친일잔재의 청산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말뿐이고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는 해방 후 역사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예를 드는 곳은 독일과 프랑스다. 이 책에서도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드골 대통령은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하거나 동조한 자들을 처단하고 청산했다. 그들의 나치 부역은 불과 몇 년이었다. 철자하게 가려내고 밝혀 내 청산하고 정리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왜곡되고 뒤틀러진 채 덮어버리면 그대로 곪고 썩어 악취만 진동할 뿐이다. 나중에는 다시 찾아보기도 싫은 지경에 이른다. 한국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식민지였다. 프랑스와 단순 비교만 하더라도 몇 배는 청산되고 정리되었어야 할 역사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전혀 역사의 심판을 하지 못했다. 친일을 했던 부역자들은 그대로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에 들어가 호의호식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를 겪으면서도 대를 이어 잘 살았다. 그래서 해방된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이때에도 친일 역사학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지경이다. 노골적으로 친일행위를 하는 정치인도 상당수다.

 

 

“2013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이승만·박정희 독재정치를 쏙 뺀다고 한다. 게다가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광주 5.18민주화운동도 삭제한다고 한다.” (p.242)

 

이명박 정권 창출에 큰 기여를 한 뉴라이트 관련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 낸 역사교과서 수정의 결과는 참혹하다. 제 나라의 역사조차 의무교육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선택 사항으로 결정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승만·박정희가 독재를 한 것이 명백한 사실인데 그 내용을 제외하고,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광주 학살이 저질러 진 것이 명백한 사실인데 그 내용을 제외한다고 한다. 얼마 동안 역사교과서 문제로 시끄럽고 난 후 조용하길래 별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당장 내년부터 일어난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이 책 「친일·숭미에 살어리랏다」는 한국에서 ‘친일파’에 대한 연구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정운현교수의 책이다. 여러 언론의 기사를 통해 정교수의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창출의 내막과 박정희 독재정권 종말의 내막을 소개하는 것을 듣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교과서는 물론 역사에 관련된 책이나 언론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 방송에서 소개된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라는 책을 보고 싶었으나 품절되어 구입할 수가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친일역사’에 대한 연구를 해온 정교수는 이 바닥(?)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분이었다. 자칭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지대하다고 늘 말해 온 내가 부끄러웠다. 당연히 정운현이라는 이름을 알았어야 하는데^^;;

책은 재미있고 충격적이었다. 신선하기도 했다. 여기서 충격이라는 말이 엄청나게 대단한 내용이거나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의 내막은 아니다. 정운현 교수가 ‘친일역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잔존하는 ‘친일역사’가 동일하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80년대에 잘 먹고 잘 살던 친일파 후손들이 2012년 11월에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 그들에 대한 어떠한 청산이나 단죄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충격적이었다. 여러 번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도 재창출 되었는데도 왜 ‘친일역사’에 대한 조명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스스로를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면서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것은 위장에 불과하다. 반칙과 특권이 몸에 밴 기득권을 고수하고자 하는 수구일 뿐이다.” (p.271)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그들 독재정권에 결여 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용역사관을 만들었던 것처럼 뿌리가 친일에 박혀 있는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 위장을 해 온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잘 먹고 잘 살았고 자식새끼를 외국 보내 공부시키고 돌아와서 또 한자리 해 먹고, 그 놈의 자식새끼들은 그대로 따라 해서 또 한자리 해 먹고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미군정,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국가의 행정수반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견고하고 철옹성 같은 권력과 부는 바뀌지 않았다. 시대에 따라 재빠르게 옷을 바꿔 입고 변장했을 뿐. 그래서 그들은 태생적으로 뿌리가 약하다.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친일에 닿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당연한 이치다. 지금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나 조직·단체 중 상당수가 친일파의 후손이다. 정확한 통계를 알 길이 없지만 제대로 된 ‘친일역사’에 대한 청산이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역사를 돌이켜 보면 뻔 한 추론이다.

 

 

박정희, 그 깊고 아픈 시대의 그늘” (p.178)

 

책의 한 챕터 제목이다. 정말 잘 썼다. ‘박정희, 그 깊고 아픈 시대의 그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박정희라는 인물은 그래서 아프고 슬프다. 친일파 - 독재정권 - 수구세력이 한 덩이로 포개져 역사를 이어왔기 때문에 깊은 그늘이다. 아직도 그를 임금님으로 모시며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최고의 친일파요, 악질적인 독재자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 안에서도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부모와 박정희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는 자식이 존재한다. 비극이다. 그의 딸이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 유력한 외신들은 그녀를 보도할 때 ‘독재자의 딸’이라는 문장을 쓴다. 한국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일이 생길 것이다. 한국에서 독재를 한 사람의 딸이 분명히 맞는데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이 어이없는 현실의 정점에 박정희가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를 거치며 ‘친일역사’에 대한 청산과 단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국민의 입과 귀를 막아 ‘잘 살아 보세’, ‘경제 발전’, ‘수출’ 이야기만 하면 끝이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는 가장 호화롭고 안정적인 역사였을 것이다.

 

 

“백선엽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전공(戰功)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강조해왔는데, 이는 제대로 따져 묻지 않은 언론의 책임도 없진 않다. 몇몇 수구언론들은 그의 ‘어두운 그림자’는 아예 제쳐둔 채 그를 ‘전쟁영웅’으로 만드는 데만 혈안이 되어 온 터이다.” (p.166)

 

박정희뿐만 아니라 백선엽과 같은 인물도 분명한 친일행위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친일역사’ 청산은 관심이 없다. 일본에 의해 한국의 근대화가 촉진되었고 한국 정부의 기원이 상해임시정부가 아니라 유엔에 있다는 따위의 역사를 재편하려고 하는 이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주무르고 있는 이상 절대로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 돈 내고 보는 KBS라는 방송국에서 어이없는 친일 행위자의 영웅으로의 미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도 별 다른 소리를 할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를 미화한 프로그램이 준비 중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그것은 유야무야 된 것인지, 아직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곳은 그런 곳이다. 한국은 그런 국가다.

 

 

“재산보상금은 66억 2209만원(7만 4967건), 사망자(유족)보상금은 25억 6560만원(8552명)이었다. 당시 미화 1달러가 300원이었으니 재산·사망 합해 보상금은 모두 약 3062만 달러로, 이는 대일청구권 자금 중 ‘무상 3억 달러’의 10.2퍼센트에 불과한 액수였다.” (p.58)

 

65년도 한일협정에서 청구권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아 온 자금이 있다. 아무리 정신대 할머니 수요 집회가 천회를 넘고 소녀상을 세우고 외국 언론에 알려도 일본은 묵묵부답이다. ‘청구권’ 협상 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65년도에 자신들이 식민지 시절 잘못에 대한 보상을 이미 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독재 시절 이뤄진 한일협정에서 대일청구권 자금을 3억 달러를 받아왔는데, 그 중 실제로 보상한 금액은 전체 금액의 10퍼센트 남짓이란다. 이런 곳이다. 한국.

나머지 자금이 포항제철 건설 자금으로 쓰였느니, 경부 고속도로 건설 자금으로 쓰였느니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직접적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청구권 자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곳이다. 한국.

 

 

아~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고 워낙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분야라 신나게 리뷰를 작성할 것 같았는데, 답답하고 짜증이 밀려와서 속까지 메스껍다.

이번 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어도 ‘친일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는 한 수십 년 동안 대를 이어오며 잘 먹고 잘 살아 온 그들이 여전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나라라는 곳이 이런 데가 있나 싶다.

구조가 제대로 되어 있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곳이라면 당연히 되었어야 할 일들이 될 낌새가 없다.

역사문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해방 후 반민특위와 같은 곳에서 제대로 이 문제가 처리되고 독재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친일역사’에 대한 청산이 이뤄졌을까? 이것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난 일을 가정해 봐야 시간낭비 일 뿐이니까.

워낙 오랜 시간 동안 감춰두고 덮어온 일이기에 당사자들조차 그들의 역사가 제대로 된 역사라는 착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오랜 시간만큼 내려 뻗은 뿌리가 깊고 넓어 끝까지 파헤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자꾸만 가고 세대는 바뀌어 가는데 자꾸만 때를 놓치면 영영 할 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미래사가 덮여진 과거에 의한 반쪽자리 역사로 기록될 것 같아 못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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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토끼13호

    친미가 아니고 숭미라고 한 이유를 찾아보고 싶은데 거의 친일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네요.

    2012.11.11 16:40 댓글쓰기
  • 키드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는 듯한 시원함은 있었겠지만 그래서..? 이제는..?이라는 대안에서 막혀있는 그런 상황인 듯 해요...
    제목이 참 씁쓸하네요... 친일, 숭미에 살어리랏다...

    2012.11.11 17:4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세상의중심예란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이 친일파에 숭미주의자들 뿐이니..
    우리나라의 정치향방이 어디로 갈지 한숨만 나오네요.. 휴우~

    2012.11.13 13:37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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