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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

[도서]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

안드레아스 바그너 저/김상우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경험, 지식, 정보 따위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있다. 습득된 교육과 노출되어 떠돌아다니는 미디어의 토사물들은 큰 의미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간절히 바라고 고대하던 일이 바라던 결과와는 딴판으로 귀결되었을 때 찾아오는 허탈함과 상실감은 말할 수 없다.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일상에서부터 지구와 생명의 역사가 몇 천 년이건 수십 억 년이건 간에 생명의 역사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말할 수 없는 존재의 가소로움을 자각한다. 또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일견 가장 트렌디하고 세련되며 선구자적인 것 같아 보였던 팬덤에 가려져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고민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고민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책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는 꽤 어려운 책이다. 원래부터 자연과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일부러라도 이런 책은 펴보지도 않는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이해한 이 책의 주제는 간단하다. ‘우리가 모조리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생명세계의 가장 미스터리는 우리가 모조리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는 착각이다.’라는 것이다. 생명의 긴장과 신비로움과 경이로움과 다이내믹함은 그 어떤 최고 경지의 예술가, 과학자, 공학자가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꽤나 교만하고 어리석어서 마치 수십, 수 백년 만에 생명의 역사를 추월한 것처럼 생각한다.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 하나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패러독스’의 인식이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으며, 패러독스를 기초로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p.6)

“사람들이 정말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걸까? 아니면 결국 자기를 위한 걸까?” (p.66)

“완전히 우연의 문제다.” (p.77)

 

인간세계와 생명세계, 생물세계와 무생물세계.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하는 거의 모든 세계에 내재된 패러독스를 비교하고 분석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며 호기심이 없는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주된 관심 분야인 사회과학 분야의 책이라면 신이 나서 읽고 정리하고 쓰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해하고 정리한 만큼만 쓸 수 있다. 자연과학 분야를 바라보는 애송이 사회과학 덕후의 서평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앞서 길게 늘어놓은 대로 모든 분야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개인적으로 정의한 ‘일상’에서는 여러 가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패러독스’의 개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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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세계와 무생물 세계에는 매우 근본적인 ‘역설적 긴장들’이 존재하고 있다. 둘째, 이 역설적 긴장들은 인간에게 거대한 힘을 제공함으로써 지금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p.349)

 

저자는 ‘패러독스’라는 개념을 세계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구심점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면 애인 사이에도 이러한 적절한 ‘역설적 긴장’은 애인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더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동인이 될 수 있다. 사람관계, 특히 남녀관계에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영화 같은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주장한다. 확신한다. 그런 일방적인 사랑은 굉장히 위험하고 위태롭다. 인간은 그 어떤 생명세계의 존재보다 미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다면 주고받는 것도 늘 좋기만 하나? 절대로 아니다. 때론 오해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삐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 질투하고 배려하고 지적하고 칭찬하고 지시하고 순종하고 약속시간에 맞춰가고 일부러 늦게 가고 하면서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늘 배려하고 져 주고 사랑을 쏟아내고 기다리고 참고 한다면 그 사람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 꽉 움켜쥐면 타다 만 신문지 으스러지듯 사라져버릴 것이다.

친구관계, 직장 내 동료들과의 관계, 종교단체 안에서 구성원들 간의 관계, 온라인 안에서의 관계 등 인간이 맺고 속할 수 있는 모든 관계의 망 안에서 이러한 패러독스의 개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지금의 생명세계를 만들어 낸 그 ‘역설적 긴장’의 찬란한 설계 도면을 우리가 살아내는 일상의 삶에서 그려내야 한다.

 

“오늘의 세상이 단세포 유기체들이 살았던 30억 년 전보다 더 안전하고, 더 예측 가능하며, 덜 위험할까? 우리가 하는 배팅이 유전자물질을 무작위로 바꾸는 식의 도박을 하는 박테리아의 배팅보다 안전할까? 우리가 하는 많은 도박이 다른 유기체들이 하는 도박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 우리의 도박은 종국엔 우리 목숨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성까지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05)

 

아주 작은 단세포 유기체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끈을 이어져 오기 위해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을 견뎌왔을 것이다. 때론 싸우기도 하고 투쟁하기도 하며, 또는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없애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남은 것일 게다. 그래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소중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이어 온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인간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생명을 건 단세포 유기체의 도박과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의 도박은 그 형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결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단세포 유기체의 도박은 생명의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이유와 동기가 되었지만 인간의 도박은 저자의 지적대로 인간 자체를 파괴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기체, 무기체, 생물, 무생물들이 그려 온 생명의 도화지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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