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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튜즈데이

[도서] 기적의 튜즈데이

루이스 카를로스 몬탈반,브렛 위터 공저/조영학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한 번도 개를 키워 본 적이 없다. 다른 동물도 키워 본 적이 없다. 요즘은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단순히 동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가 되었다. 반려동물 관련된 시장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여전히 이런 반려동물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유기하는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제는 동네 공원이나 어디를 가도 반려동물과 함께 나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 반려동물들 중에서도 개는 유독 사람과 친하다. 전해져 내려오는 개와 관련된 민화도 많고 내 나이쯤 되는 이들에게는 어린 시절 명작 동화 <플란다스의 개>를 잊지 못할 것이다. 뭐가 그렇게 슬프던지 동생과 함께 일요일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개를 사랑하고 아끼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요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와 같이 반려동물로 개를 키워보지 않고, 개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권리도 중요하다. 특별히 개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권리만을 강조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권리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개를 데리고 밖에 나올 때는 반드시 목줄과 함께 용변을 처리할 수 있는 봉지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목줄을 착용시키지 않고 크게 짖으며 달려드는 개와 사람이 있다. 몇 몇 어린 아이들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는 산책을 하거나 공원에 나가서 그런 사람을 보면 꼭 얘기 한다. 밖에 나올 때는 목줄을 착용시키는 게 맞지 않냐고. 본인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싫다고. 그러면 ‘어이쿠~ 잠깐 풀었는데 다시 채우죠.’ 하고 만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모두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하고 살 수는 없다. 함께 사는 곳에서는 각자의 입장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내가 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개 중에서도 큰 개는 좋아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튜즈데이같은 리트리버 종이나 말라뮤트, 허스키 같은 개들은 좋아한다. 그 외의 종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ㅎㅎ

아내도 개를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노후에는 큰 개를 길러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고.

 

이 책 「기적의 튜즈데이」는 사람과 리트리버 종 개 한 마리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것처럼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꽤 심한 스트레스를 동반할 때가 많다. 특히 그 사람이 나와 일정한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구도라면 이것은 더욱 심해진다.

 

외상성 뇌손상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서 비롯된 대인기피증, 폐소공포증

 

또 다른 주인공 루이스 카를로스 몬탈반의 병명이다. 그는 두 차례나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별명이 터미네이터라고 불릴 정도로 신체적 조건이 좋았고 진급이 보장된 뛰어난 장교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전쟁은 그를 완전히 폐인으로 몰아넣었다.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부적응자가 되었고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다.

아내의 친한 친구가 폐소공포증을 앓았었는데 실제로 그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고통이라고 한다. 갑자기 사방이 막힌 것 같고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 아내가 서울까지 가는 기차를 일부러 같이 타고 가 준적이 있는데 좌석에 앉아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 손을 꽉 잡은 채 한순간도 편안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가 정말로 신뢰하고 안정을 느끼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힘들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증세가 많이 호전되었는데 대학 때는 너무 힘들어 1년을 휴학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얼마만큼 큰 것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몬탈반은 폐소공포증에 대인기피증, 거기다가 외상성 뇌손상과 척추 손상까지 입었다. 아내의 친구는 어린 시절에는 주위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혼 후에는 남편 덕분에 잘 견디며 생활할 수 있었는데, 몬탈반은 전쟁 후유증까지 더해 암흑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았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 불면의 밤, 소화불량과 그에 따른 탈수와 복통” (p.95)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 몬탈반은 명예로운 상이군인이 되지 못했다. 전쟁터에서 벗어나면 적어도 그곳보다는 불행이 덜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매일 보던 뉴스에서는 승리가 임박했다는 소리를 하고 정치인들은 실제로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에게는 관심도 없이 어떻게든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수작만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돌아 온 미국 땅에서 절망을 발견했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진 전쟁의 구조를 발견했다. 그리고 망가져가는 몸을 방치했다. 아니, 더 망가지도록 부추겼다.

그런 그에게 튜즈데이가 나타났다.

 


“‘전우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교도소 강아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성 뇌손상 및 신체부위 손상으로 고통 받는 이라크·아르헨티나 전역병에게 매년 30마리의 도우미견을 무료로 분양하고 있습니다.” (p.135)

“어떤 면에서는 튜즈데이와 닮았다. 사랑받으며 열심히 살고 싶었지만, 애정의 대상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p.64)

 

튜즈데이는 철저하게 사람을 위해 태어난 개다. 그의 어미도 그랬다. 그의 형제들도 그렇다.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분양 되었지만 버림받았다. 몬탈반이 고국에서 버림받은 것처럼 튜즈데이도 그랬다. 같은 상처를 가진 두 존재가 만나서 진정한 우정을 찾아 간다. 흔히 알고 있는 도우미견은 시각장애인 옆에 있을 경우가 많았다. 반려동물에 대한 개념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는 미국에서조차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거구의 남성과 함께 하는 튜즈데이의 모습이 낯선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지만 미국의 중심이라는 뉴욕에서조차 튜즈데이와 함께 식당에 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곱지 않은 시선과 의구심으로 가득찬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무감각해 지기까지 몬탈반과 튜즈데이가 겪은 수모과 고통은 짐작조차 어렵다.

 


“튜즈데이는 단순한 치유를 뛰어넘어 일종의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p.202)

“내가 계단을 내려가도록 도와주는 것 외에도 150여 가지의 지시에 반응하도록 훈련받았다. 내 호흡이 가빠지거나 맥박이 빨라지면, 머리로 나를 때려 과거의 악몽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도록 도와준다.” (p.11)


몬탈반은 튜즈데이를 만나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뜨게 된다. 실패한 인생, 폐인의 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던 자신에게 튜즈데이는 도우미견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책에서 몬탈반의 그런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데 마치 격렬하고 애틋하게 사랑하는 연인 같기도 하고 목숨보다 더 상대를 아끼는 형제 같기도 하다. 버림받은 상처를 가진 튜즈데이도 자신에게 마음과 정성을 쏟으며 진심으로 소통하는 몬탈반의 헌신을 신뢰한다. 수십 년 동안 이어 온 사람 사이의 우정과 같은 끈끈함이 몬탈반과 튜즈데이 사이에 존재 한다. 비록 터놓고 마음을 쏟아 낼 수 있는 대화가 불가능 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서로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 지는 책을 통해 절절하게 알 수 있다.

 


“미국과 이라크 군대 내부의 부패불감증과 고위 공직자들의 책임감 결여. 당연한 얘기지만 기고문은 군 고위층에게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p.124)

“나는 침대를 책상 삼아 전쟁에 대해 연구하고 국가보훈청 뉴욕 지부의 무능력과 부패를 파헤쳤다. 나를 비롯해 수천 퇴역군인들의 뒤통수를 친 사건을 담은 내 보고서는 윗대가리들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p.209)

 

튜즈데이로 인해 일어난 기적은 몬탈반의 삶의 자세와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던 그에게 이제는 적극적으로 상이군인에 대한 처우 개선과 복지확대를 위해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게끔 했다. 그리고 미국의 전쟁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연구를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비판하고 돌을 던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대책이 마련되도록 힘을 다한 것이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니 많은 사람들 보다 더 사람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삶을 살아가며 각자가 경험하는 절망과 고통이 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일의 삶이 항상 행복하고 평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을 바라고 산다. 아니,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행복을 바라고 산다. 예기치 않은 사건과 사람으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과 영화, 사진과 TV, 자연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누구나 튜즈데이를 만나는 기적을 경험할 수는 없듯이 모두가 사람에게 상처와 스트레스만 받는 것은 아니다. 매일 보는 그 사람으로부터 뜬금없는 행복을 발견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아주 낮겠지만.

노후가 되기 전에 튜즈데이와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보고 싶다. 내게 있어서 이런 생각은 엄청난 변화다. 굳이 튜즈데이처럼 내게 기적을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진정한 우정을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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