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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

[도서]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

에란 카츠 저/김현정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 책은 참 재미있는 책이다.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이라는 제목 자체도 무척 신선했는데 내용은 더욱 그랬다. 이미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유명한 저자 에란 카츠의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기술이 흥미로웠다. ‘통섭’이라는 개념이 최근 들어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의 서술은 그 ‘통섭’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책의 서술에 있어 인문학과 과학 문학은 만나기 어려운 접점이 많았다. 비슷한 주제로 인해 교집합 정도 되는 것은 사례가 많았으나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통섭’의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는 책은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은 특히, 뇌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문학이 ‘통섭’되어 있다. 세 분야 모두 나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주제이다. 아마 이 책이 뇌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개념이나 연구로 가득차 있었다면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고 흥미롭게 저자인 에란 카츠는 뇌과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문학의 방법을 빌려 일반인인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서술했다.

 

 

“에란 카츠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잠재력을 깨워 주고자”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잠재력을 깨워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 아직 현대의 과학은 뇌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뇌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창조가 되었든지, 진화가 되었든지 어쨌든 뇌는 아직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저런 말을 한 저자조차도 자신이 가진 뇌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 중 한명 이다. 다만, 그런 진실을 알고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잠재력을 깨워주고자 한다. 그런데 미처 깨닫지 못하는 뇌의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 그것이 조물주의 섭리이든, 최적화된 진화의 조건이든 인간으로 하여금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선물인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롬 좀머 교수와 미선, 리한과 여자 K.와이 4명이다. 보스턴과 서울, 뭄바이, 방콕, 베이징, 도쿄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 된다. 미상의 여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하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이 정도의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 했다. 그리고 머리말에서부터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미선이기도 하고 사건이 진행 되는 곳 중 하나로 서울이 등장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전체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매개가 되는 사건이 한국전쟁이라는 점도 마치 한국 독자들만을 위해 책을 출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한 제롬 좀머 교수의 아버지의 폭격으로 인해 당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죽데 된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일에 대한 복수극을 치밀하게 그려 내는 리한과 그 도구로 이용 되는 여자 K.와이, 그리고 K.와이와 오래 전 연인이었던 제롬 좀머 교수 간의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단순히 이런 첩보, 복수 스토리만으로 가득한 책이었다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중간 중간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에 대한 소개가 절묘하게 삽입되어 있었다. K.와이와 리한이 만든 복수극에 제롬 좀머와 미선이 들어오게 되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적극적으로 개입되면서 그 스토리 한 가운데에 저자의 의도가 투영 된다.

 

 

첫 번째는 <망각의 선물>이다.

 

“하지만 용서하기는 무척 힘들어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듯한 기분이 드니까요.” (p.51)

“기억을 지우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 기억에 수반된 감정을 지워 버리는 거지.” (p.53)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국가와 도시로 이동하게 된 제롬 좀머 교수와 미선은 이미 리한과 K.와이가 만들어놓고 배치해 놓은 인물을 만나게 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 동안 감금된 최민식에게 일정하게 최면을 걸어 탈출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초밥집에 있는 강혜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이 책의 스토리 전개도 비슷하다.

책의 초반부에는 제롬 좀머와 미선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편지를 보내는 미상의 여인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거대한 스토리가 자신의 아버지와 한국전쟁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차렸을 뿐이다.

뇌를 위한 선물 중 첫 번째는 <망각의 선물>이다. 망각하지 못한다면 아마 인간은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과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들 동일하다. 망각이 없다면 모두 차곡차곡 쌓아야 할 것이다. 어디로 재활용 할 수도 없고 폐기할 수도 없다면 미쳐 버릴 것이다. 대를 이은 복수 스토리는 이제는 너무 예전 스토리가 되어 버렸지만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상황과 마음가짐을 달라질 것이다. 남의 일이라면 ‘이미 지나간 일, 잊어 버려라!’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내 일이라면 쉽지 않다. 그래서 망각은 더욱 절실하다. 망각하지 못한다면 타오르는 복수심을 소화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주는 선물>

 

“저희 아버지가 마오쩌둥의 아들을 죽였다는 말씀이시군요. 제롬은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망설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p.171)

“폭탄을 투하한 조종사의 아들인 자네를 죽이려고 꾸민 사고였어. 네가 주요 목표물이었던 거지.” (p.173)

 

두 번째 스토리에서 좀머 교수는 K.와이와 리한이 자신에게 어떤 복수극을 준비하고 실제로 실행했는지 알게 된다. 우연이라 믿었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계획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일이 자신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때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퍼즐처럼 맞춰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음모가 서서히 목을 죄어 오는 것이다.

 

“자아 때문에 잘못된 감정이 생겨납니다. 산토쉬가 말을 이었다. 자아는 직관을 왜곡시킵니다.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많은 변명을 찾아냅니다.” (p.144)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데도 의연하게 마치 제3자처럼 그 일을 객관화 할 수 있는 사람은 초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과 공포로 제대로 된 일상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두려움과 공포는 더 큰 두려움과 공포를 낳는다. 계속 나에게로 향하는 두려움과 공포와 고민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저자의 표현대로 수많은 변명을 찾고 만들어내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렵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나를 객관화 하는 노력이 필요 하다. 나에게로 침잠하지 않는 자세, 그것이 필요하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나는 안전할 것이다.’라는 믿음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내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고 수년 동안 암이라는 놈과 싸우실 때 나머지 가족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긍정적인 자기 최면화였다. 그것마저 없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좀머 교수에게 이런 긍정적인 자기 최면은 어쩌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욕망관리의 선물>

 

“가령 집 전체를 청소하는 게 아니라 방 하나를 청소하는 거죠. 일주일 동안 정해 놓은 방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겁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 주에 또 다른 방 하나를 추가하는 겁니다.” (p.192)

 

욕망이라는 불구덩이... 모두가 부담스러워 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것이다. 내 욕망이 다 이루어진다면 영혼이라도 갖다 바칠 수 있다. 자신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과거의 사건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파악한 좀머 교수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내고 싶었다. 용솟음치는 욕망의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참 공평하게도 모든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잔인하지만 공평한 룰이다. 그런 룰이 어떤 경우에는 야속해 보이기도 하지만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부나비를 하염없이 바라는 것보다야 실제적인 욕망을 관리하는 편이 훨씬 나에게는 이득이다.

 

 

 

<설득의 선물>

 

“너무 완벽한 사람은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연약한 모습과 결점은 오히려 호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p.266)

 

너무 완벽한 사람에게는 질투심이 생기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이 아닌 가 싶다. 어디에도 꼭 있다. 완벽한 사람.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말도 잘 하고 잘 생기고 거기다가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 적대감과 질투심도 있기는 하지만 부담스럽다. 나는 완벽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업무에서 만큼은 완벽하고 싶어 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허도 완벽을 기한다. 그런데 나를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철저하다.‘고. 1000% 정답이었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그 사람을 보다 더 잘 설득하기 위해서 나의 모자란 성격과 기질, 그리고 연약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나에게 한없이 관대한 것처럼 상대방에게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내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공평한 것이다.

 

이 책은 뇌과학과 심리학, 문학을 하나의 글로 ‘통섭’하는 작가의 능력으로 채워져 있다. 사건의 전개에 따라 각 학문과 분야가 이어지고 분리되며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낸다. 마지막까지 분명하게 사건이 해결되거나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열린 결말이 책의 성격과 맞는 것 같다. 이어질 이후의 전개 과정은 이 책을 읽는 각자의 미처 깨닫지 못한 잠재력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배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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