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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영화] 설국열차

개봉일 : 2013년 08월

봉준호

한국 / SF,드라마,액션 / 15세이상관람가

2013제작 / 20130801 개봉

출연 : 크리스 에반스,송강호,존 허트,틸다 스윈튼,제이미 벨,옥타비아 스펜서,이완 브렘너,고아성,에드 해리스

내용 평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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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편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동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나쁜 편’. ‘착한 편’ 구분 지었다. 내 편이면 착한 편이고 내 편이 아니면 나쁜 편이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은 일부러 장려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지탱해 가는 주요한 잣대가 된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선과 악의 이분법이 주는 편안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겉으로 표시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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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동시에 엄청나게 불편하게 봤다.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나는 좋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 평론가들을 싫어한다. 온갖 어려운 말과 영화 보다 더 한 은유와 상징으로 나와 같은 일반 관객들의 몰입과 감상을 방해할 때가 많다. 이 영화에 대해서 몇몇 평론가들의 감상평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일단 열차라는 공간적 한계가 주는 감독의 의도가 좋았다. 영화라는 장르도 메타포와 상징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 영화를 두고 ‘너무 상징이 뻔하다.’, ‘SF적 장르에 대한 봉감독의 이해가 부족하다.’ 라는 그들의 평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폭주하는 열차 곳곳에 흩뿌려진 감독의 그 뻔한 메타포와 상징은 오히려 나와 같은 일반 관객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 했다. 예술성이 과해 칸을 노리거나, 대중성이 과해 아카데미를 노리는 영화로 구분 짓는 그들의 이분법이 더 불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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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VS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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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는 영화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람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가 될 만한 외모를 가졌다. 몸도 좋고(?) 외모도 좋고(?) 액션도 좋고. 커티스는 우연히 전해진 단백질 블록 속의 메모를 보고 또 한 번의 반란을 계획한다. 그를 따르는 열차 끝칸의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커티스는 우연한 기회를 맞아 끝칸에서 앞 칸으로 앞 칸으로 전진한다. 인류와 모든 동식물이 멸종하고 설국열차에 올라탄 마지막 인류는 그저 앞 칸에서부터 전해지는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했다. 커티스는 뒤집어엎지 않으면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구조를 이해했다. 그래서 가장 앞 칸에 있는 설국열차의 엔진을 차지하려 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 끝에 엔진 칸에 도달한다. 그 곳에서 설국열차의 창조자 윌포드를 만난다. 극 중 윌포드를 연기한 에드 해리스는 이렇게 시스템의 최상위자 혹은 시스템의 최종 관리자 역할을 기가 막히게 소화 한다. 그의 이전 출연작 「트루먼쇼」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커티스는 단백질 블록 속에 편지를 전한 이가 바로 윌포드임을 알게 된다. 더욱 충격적인 반전은 윌포드와 끝칸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길리엄이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인식하게 된다. 더군다나 그것은 단 한 번의 반란과 혁명으로 뒤엎을 수 없는 불멸의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마지막 희망을 끌고 가는 거대한 엔진 앞에서 커티스는 완전히 압도 된다. 결국 맨 앞 칸인 엔진에까지 왔지만 그 이상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윌포드의 설득에 거의 넘어갈 뻔 한 순간, 요나가 떨어트린 성냥개비를 찾기 위해 바닥을 훑다가 엔진칸 바닥 좁은 공간에 갇혀(마치 산업혁명 시기 노동학대 수준으로 노동을 하던 아동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엔진의 동력을 유지하는 티미를 발견하고 정신을 번쩍 차린다.

커티스는 반란을 꿈꿨지만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다. 앞 칸으로 앞 칸으로 커티스와 같은 끝칸 사람들이 오지 않고서는 도무지 자신들의 뒤 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앞 칸 사람들은 여전히 즐기고, 누리고, 향유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그 닫힌 생태계 안에서 이제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면 단백질 블록을 받아먹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윌포드를 죽이고, 엔진을 멈추고 나면 그 뒤! 그 뒤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커티스는 답이 없었다. 티미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윌포드의 뒤를 이어 엔진칸을 차지한 설국열차의 최상위 계급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커티스의 최종 종착역(驛)은 혁명과 반란도 아닌 개혁과 개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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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의 극 중 역할의 비중과 대사 등에 대해서도 그 ‘아는 척’하는 부류들의 비판이 거센 것 같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보인 송강호 만의 능글능글하고 어리바리하면서도 의외의 반전을 가진 깨알 같은 대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송강호가 연기한 냄궁민수(원래 이름은 남궁민수,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냄궁이 더 편했던 것 같다)는 커티스보다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혁명가였다고 생각 한다. 설국열차를 설계한 냄궁민수는 커티스의 반란의 엔진이 되어 문을 차례로 열었다. 크로놀 중독자로 자신을 포장해 마지막 엔진칸 바로 직전 문에서 커티스에서 급진적인 혁명을 제안한다. 바로 열차 옆문을 폭발시켜 열차를 멈추는 것이다. 모두들 알고 있듯이 열차는 앞으로 전진하거나 멈추거나 후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다. 단선적이다. 단선적으로 펼쳐진 닫혀 있는 생태계 혹은 구조로부터 벗어나지 않고는 진정한 혁명이 아닐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저 크로놀에 환장한 중독자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지만 냄궁민수는 점차 줄어드는 얼음의 두께와 열차 바깥 환경변화에 주목했다. 결국 엔진칸을 차지하더라도 열차는 앞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을 해내고 실천한다. 옆을 폭발시켜 열차를 멈춘다. 단선에서 벗어나 복선을 추구하는 기발함. 이것이 혁명의 동력이 된다. 결국 냄궁민수의 의도대로 열차의 옆문을 폭발시켜 설국열차는 탈선한다. 열차에 타고 있던 모두가 죽게 되고 냄궁민수의 딸 요나와 엔진칸을 움직이던 티미 두 아이만 살아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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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포드 & 길리엄 - 양가적(Ambivalence) 공생관계




설국열차의 창조자 윌포드는 신이 되려 한 것일까? 커티스에게 자신을 이어갈 것을 주문한 것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윌포드는 어쨌든 인류의 절멸을 막았다. 하지만 철저하게 닫힌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맨끝칸 사람들에게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먹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윌포드가 악(惡)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엔진을 위해 티미와 같은 아주 작고 어린 아이들의 노동을 착취한 것으로 그가 악(惡)일까? 윌포드는 최소한 설국열차를 움직였다. 적절한 균형을 위해 반란을 유도하고 정상적인 자연계에서는 자연스레 도태될 숫자의 생명을 가공의 힘으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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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엄과 윌포드가 긴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커티스는 충격에 빠졌다. 그 장면을 보는 나는 탄식했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세상의 이치를 간파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 왔다. 가장 치열한 양 극단은 결코 평행한 것이 아니라 양가성을 가진 것이다.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통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길리엄을 윌포드보다 더한 악(惡)이라 할 수 있을까? 길리엄은 분명 맨끝칸 사람들에게 영웅이었다. 설국열차를 올라 탄 초기 인간성과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짐승들이 서로를 잡아먹었다. 그 혼란과 야만을 멈춘 이가 길리엄이다. 그것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이자 역사다. 길리엄의 맨끝칸 전화와 윌포드의 맨앞칸 전화는 핫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윌포드가 커티스에서 여러 번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오는 ‘닫힌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 두 극단은 손을 맞잡는다. 그렇게 십 수 년을 유지해 왔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되는 곳은 한국의 정치현장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전의 동지가 오후의 적이 되는 곳이다. 죽일 듯 비판하던 사람도 큰 선거를 위해 친구가 될 수 있는 이 곳. 이곳이 바로 길리엄과 윌포드로 득시글거리는 현장이다.

뭐,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람들이, 특히 맨 끝 칸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가만히 있다 뿐이지 늘상 봐오면서 당해오던 패턴이다.

결국 선(善)과 악(惡)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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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or 절망 - 피안(彼岸)의 세계로

마지막 장면을 보고 극장에서 내 뒤에 앉아 있던 여고생 무리는 외쳤다. “뭐 결말이 이래, 도대체 뭔 말이야? 야~ 내가 더테러라이브 보자 그랬지!!”

나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을 한참동안 지켜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지막 장면의 충격이 대단했다.

요나와 티미는 유일하게 설국열차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 중 마지막이 된다. 마치 알프스 산맥 깊은 계곡 같은 곳에 발을 디딘 두 아이는 눈부신 하늘과 눈밭 속으로 걸어간다. 무참하게 탈선한 설국열차는 흉하게 엎어져 있지만 아이들 눈에 비친 세계는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설렘이다.

그런데 저 멀리 산등성이에 북극곰 한 마리가 요나와 티미를 쳐다보고 있다. 북금곰이라.

‘뭐야!! 또 다른 세계!!’

라는 생각부터 강하게 들었다.

선과 악으로 규정하고 가치 판단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닥친 위협은 실제적이고 절망적이다. 북극곰 한 마리가 있다는 사실은 북극곰이 존재하는 생태계. 윌포드의 말을 빌리면 또 다른 ‘닫힌 생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북극곰 한 마리가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극곰은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있듯이 순한 동물이 아니다. 난폭한 최상위 포식자다. 산등성이를 내려와 요나와 티미에게 시원한 코카콜라를 전해 줄 성질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나와 티미에게 열린 세상은 또 다른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후에 요나와 티미, 북극곰이 서로 사이좋게 지냈을지 누가 누구를 잡아먹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전부라고 알고 있던 세계와 세상, 구조와 닫힌 생태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선과 악만으로 세상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닌 피안(彼岸)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지각, 인식이 필요하다. 일상에 파묻혀 살다 보면 그런 것은 배부른 소리고 허황된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여겨질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갑자기 펼쳐진 인류의 종말 앞에서 단순히 설국열차를 차지하고 문을 폭발해 탈출하는 것만으로는 피안(彼岸)에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고 인식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존재하고, 아니 존재해야만 할 피안(彼岸)을 인정하는 것.

어차피 영화는 관객의 몫이다. 어떤 감상을 하고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각자의 것이 중요하다. 평론가들의 리뷰와 나의 리뷰 따위는 글자 몇자에 불과하다.

직접 보고 판단하시기를.

다만 우리는 이 세계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선의 역(驛)과 악의 역(驛)을 과감히 벗어나 피안(彼岸)의 세계로 향하는 또 다른 설국열차에 올라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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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자중독

    모든 분야의 평론가들의 글을 저도 의식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들은 시각 자체가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 것도 아주 저울에 올려 고기 중량을 딱 재려는 듯한 규격화된 양가적 사고의 틀에 아주 독하게 사로잡혀 있더라구요. 열린 철학과 공감의 여지라곤 전혀 배려하지 않는, 너무나 고루하고 편협한.... ㅎㅎ

    -우리에게 닥친 위협은 실제적이고 절망적이다.... 그리고 북극곰...
    정말이지, 피안의 세계로의 초대를 암시하는 듯한, 어떤 철학적 메타포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 저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멈칫거리게 만드는 문장이 많네요. 우웅~. 나 이런 리뷰 느무느무 좋아요, 좋아.^^

    역시 이 영화에 대한 슈작 님의 남다른 이해가 멋져 보이는 리뷰였어요.
    다만 아쉬운 건 전 아직 이 영화를 못봤다는. 해서 찐~ 한 공감의 장을 펼치지 못했다는.
    이 영화 빨리 봐야겠습니다.

    2013.08.13 19:55 댓글쓰기
  • 슈퍼작살

    매번 칭찬만 해주시니 몸둘바를...ㅎㅎ
    지적해주셔도 됩니다.ㅎㅎ
    저 또한 사고의 영역과 틀을 유연하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인데도, 어느 순간 어느 사안에 대해서 아주 편협하고 꼰대스럽게 판단하는 저를 발견하고는 합니다. 제 생각과 다른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규정지을 때도 있고요.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ㅎ
    영화 리뷰도 올리세요. 아주 멋진 리뷰가 탄생할 듯^^

    2013.08.20 16:39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