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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도서]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저/송은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3사관학교에서 후보생 교육을 받을 때 처음 총을 쏴봤다. 입교 초기부터 총은 또 하나의 몸이라면서 철저하게 청소하고 관리할 것을 명령했다. 교육훈련을 받을 때에도 항상 총은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했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갈 때에도 어깨에 총을 둘러메고 다녀와야 했다. 그래도 실전 사격은 달랐다. 실탄 사격 일정이 잡힌 날 오전부터 훈육교관들의 얼차려는 시작되었다. 사격장으로 이동하는 중간 중간에 별 이유도 없이 얼차려를 다시 받고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하고 안전검사 후 정렬해 자리에 앉기 전까지 얼마나 호통을 치고 얼차려를 주는 지 정신없이 사격을 했던 것 같다. 사격에는 실탄이 지급되고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총구방향을 비틀어 격발을 하면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 갔다. 처음으로 해본 실탄 사격은 생각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입교 시 지급된 K-2소총을 매일 몸에 끼고 살아도 ‘이게 과연 발사가 되는 건가?’싶을 때가 많았다. 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마치 장난감이나 레저용 장비인 것처럼 느껴지던 찰나였다. 실탄 사격은 반동이 생각보다 심하고 소리도 생각보다 컸다. 가장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정확했다는 것이다. 총 20발 중 12발 이상 표적을 넘어뜨려야 합격이 되는 훈련인데, 대부분의 후보생들이 이 기준을 넘었다. 장난감 총 내지는 레저용 정도로 생각했던 총이 살상무기라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식은땀이 났다.

 

10대 초반 어린아이들이 AK소총과 RPG포를 들고 다니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후보생이던 시절 훈련의 일환으로 사격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 사람을 죽이는 사격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끔찍한 사실이다. 이 책 「집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신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그 어떤 신이든 있다면 이 책의 내용처럼 비극적이고 암담하며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싶다. 순전히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이스마엘은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러 날을 계속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남자 두 명이 총을 들고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들은 총구를 들이대며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p.161)

 

힙합 음악과 춤을 좋아해서 형과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스마엘. 옆 동네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 이스마엘에게는 악몽의 시작이 되었다.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에라리온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른들의 욕망이 가득한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과 미국, 이른바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다이아몬드 수요는 끊이지 않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인 다툼과 쿠데타, 반군을 지원해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려는 라이베리아. 이런 아귀다툼은 고스란히 시에라리온에 사는 국민들이 피를 흘리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중에서도 어린 소년병들의 무분별한 징집(납치)은 시에라리온의 가장 큰 악몽이다.

이스마엘도 옆 동네 장기자랑에 참석하기 위해 간 그 길로 소년병이 되었다. 이스마엘은 반군과 맞선 정부군의 소년병이 되었는데, 정부군인가 반군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시체들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경멸하는 마음으로 시체들을 발로 차서 뒤집었다.” (p.189)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p.192)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p.198)

 

2년 동안 이스마엘은 소년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눈앞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들어온 정부군에서는 오로지 반군에 대한 적개심만을 주입했다. 그 불타는 복수심을 이용해 아이들이 총을 쏘고 대포를 발사하고 전장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전혀 가르치지 않은 채 아이들을 사지로 내 몬 것이다.

 

 

“어린 군인 하나가 뭔가 알약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캡슐처럼 보였는데, 그냥 하얀색이었다.” (p.183)

 

더 심각한 문제는 마약이다. 아무리 가족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다 할지라도 소년병들은 아이들이다. 실제로 총알이 빗발치고 동료가 죽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인다. 별 것 아닌 것처럼 그냥 비닐봉지에 가득 담은 채로 배급하듯이 아이들에게 마약을 준다. 너무 처참하다. 이것은 마약이니까 많이 먹으면 안 되고, 혹시나 부상을 당하거나 도저히 전투에 나갈 자신이 없는 소년병들에게만 지급한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감기약 먹듯이,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비타민 알약을 챙겨 먹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줬다. 아이들의 몸은 물론 정신까지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소년병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다. 쓰고 나면 버리는 것이 당연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지급해 환각 상태에서 전투에 뛰어들게 하고 죽으면 그만이고 살아 돌아오면 다시 마약을 먹이면 그만인 것이다.

 

 

“총 한 발이 후골을 박살내고 목구멍 뒤에 깊숙이 박혔다. 시체의 얼굴을 덮은 천을 들친다. 내 얼굴이 보인다.” (p.45)

 

하지만 이스마엘은 마약으로도 악몽을 떨쳐낼 수 없었다. 2년 동안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살인이 습관화 되더라도 악몽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전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몇 시간 뒤 트럭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왔다. 깨끗한 청바지와 ‘유니세프(UNICEF)'라는 파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힌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 네 명이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p.201)

 

그러던 중 유니세프가 정부군을 찾아와 부대장이던 중위와 상의한 후 어린 소년병들 몇을 데리고 간다. 이때부터 이스마엘과 다른 소년병들의 힘든 재활이 시작된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마약에 찌들어 전쟁 기계가 된 아이들은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금단현상이었다. 쉽게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마약을 갈구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재활센터에서 마련해준 포근한 숙소도, 학교도, 사람들도 그들의 적개심과 폭력성을 쉽게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건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p.219)

 

아이들은 서서히 변해 간다. 어김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재활센터에서조차 정부군 소년병과 반군 소년병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아이들이 죽기도 했지만 재활센터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잘못을 돌리지 않는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숀 교수로부터 윌 헌팅이 들었던 그 말. It's not your fault. 아이들은 서서히 마음을 연다. 마약으로부터 멀어지고 금단현상으로부터 멀어진 후 원래 아이의 모습을 되찾는다. 물론, 죽음의 현장에서 전쟁기계가 되었던 절망적인 상처가 한꺼번에 치유될 수는 없었지만 이스마엘은 유엔에서 시에라리온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발표도 하게 되고 훗날 양어머니가 되는 로라도 만나게 된다.

 

 

“프리타운에 계속 있다가는 결국 다시 소년병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예전 군대 동료들 손에 죽든가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떠나야 했다. 나와 함께 재활 과정을 거쳤던 친구들 몇은 벌써 군대로 돌아갔다.” (p.321)

 

이스마엘은 힘든 재활과정을 이겨내고 삼촌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된다. 엄마, 아빠보다 더 사랑을 쏟고 보살펴주는 삼촌과 숙모, 사촌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가 싶었는데, 수도인 프리타운을 반군이 점령하게 되면서 이스마엘은 다시 한 번 집을 떠나야 했다. 이스마엘의 말대로 그대로 프리타운에 남아 있다가는 다시 소년병이 되거나 소년병들의 손에 죽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자명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 바로 옆 나라 기니로 탈출하기 위해 또 다시 험난한 여정을 겪는다. 미국으로 가서 어떻게 양어머니를 다시 만나는지에 대한 과정은 책에는 없지만 이런 책을 출간하고 한국에도 자신의 책이 출간되어 나와 같은 독자들이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꼭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이 이스마엘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성인으로, 한명의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이스마엘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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