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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http://m.ch.yes24.com/Article/View/26315


일본의 사진작가이자 여행 작가인 후지와라 신야의 말을 빌자면, 이랬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이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후지와라의 말을 인용하고 싶었다. 나는 좋았다. 거문도가 그러했고, 바다가 그러했으며, 한창훈과 그의 친구들이 그러했다. 나는 바다를 몰랐음을 실토해야겠다. 바다를 좋아한다고 떠벌렸지만, 고향이 바다여서 그랬겠지만, 나는 바다를 모르는 ‘육지것’이자 ‘도시것’이었다. 바다는 한없이 넓고 깊고 푸르렀다. 좋다는 말밖에는. 꺼내놓을 수 있는 다른 표현이 없었다.


그 바다, 소설가 한창훈이 풀어놓은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이상이었다. 지난 9월 13일과 14일, 양일간에 걸친 거문도 문학기행. ‘한창훈 애독자’임을 자처하는 독자들과 함께 한 시간 덕분이었다. 육지 것들이 오기 전, 한창훈은 말했다.


“기껏 힘들게 바닷가 와서 회나 사먹고 좀 걷다가 차 몰고 돌아가는 이 애달프고 짠한 도시 것들아! 지금부터 바다에서 진짜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알려주마!” 




작가와의만남



거문도 도민 한창훈을 만나다 


한창훈과 거문도를 만나기 위한 중간 기착지였던 여수의 가을하늘은 지독하게 맑았다. 독자들이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 모였다. 줄리아아쿠아라는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물방울’(안상학 시인의 표현)을 떠다니는 배는 거문도로 우리를 데리고 갈 터였다. 그것이 배의 운명이자 목적이었다.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여수시에서 지금도 또 만들고 있는 모형 거북선은 바다를 모른다. 배의 목적은 항해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가 휴식 뒤에 다시 일을 하러 나가듯, 해나 달이 다시 떠오르듯 배는 파도치는 바다로 나가는 게 존재의 이유이다.

-한창훈,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中 


배가 떠났다. 출렁거렸다. 사람들도 흔들거렸다. 거문도로 가는 길은 험했다. 파도는 높고 셌다. 온 사방에서 배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땅을 갈망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호수 같다는 바다였지만, 이날은 바람이 거세고 파도는 화를 냈다. 여수를 떠난 지 2시간이 훌쩍 넘었다. 거문도항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다 내음이 훅 들어온다. 바다 빛깔이 그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 함박웃음으로 반기고 있었다. 거문도 도민 한창훈이었다. 


백도를 둘러보고자 했던 계획은 거센 파도 앞에 아쉽게 접었다. 대신 거문도 등대로 향했다. 한창훈이 외쳤다. “갑시다.” 부모 식당을 물려받아 미래 셰프가 되고 싶은 거문초등학교 3학년 동식이가 가이드를 자처했다. 3학년 가운데 1등이라고 했다. 거문초의 3학년은 동식이 한 명이다. 등대로 향하는 길, 사~ 서~ 솨~ 바람이 파도소리와 함께 거문도의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새소리와 풀벌레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바다는 푸르렀고, 아름다웠다. 등대가 나왔다.


작가와의만남

독자들과 만난 한창훈 작가



거문도 등대가 외로움을 밝히고 있다


표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산토리니 같다” “예쁘다” “멋지다” 온갖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매혹당할 만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매일 등대에 오르내릴 사람의 노동이 떠올랐다. 등대지기. 그들은 어떻게 이 바다를 받아들일까. 궁금했다. 바다가 답을 해 줄 리는 없었다. 


모두 깊고 푸른 바다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갑자기 바다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눈물이 되고 싶다는 말의 다른 판본. 거문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도가 있다. 세월호. 바다는 인류 모든 역사의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흘린 모든 눈물이 바다라면 우리는 바다 앞에서 울 자격이 있다.  


우리는 우는 종족인 것이다. 울고 난 뒤에 그 다음번 울음을 울면서 그동안 살아왔다. 행성 간을 싸돌아다니는 여행객이 차 한잔 하려고 들렀다가 이 별의 특산품은 무언가요, 물어온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눈물입니다

- 한창훈『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거문도 등대를 설명하는 글귀 앞에서 섰다. 1905년 4월 12일 남해안에서 첫 번째로 밝힌 불빛. 항해선박들에겐 희망의 불빛이었으리라. 거문도라는 이름의 유래도 함께였다.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거문도를 방문했는데,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의미인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권유했단다. 그때부터 거문도였다. 아하, 한창훈이 거문도에서 난 이유가 있었구나. 거문도에는 한창훈이 많구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바람과 파도는 하나였음을. 바다에선 파도가 육지에선 바람으로, 육지의 바람은 바다의 파도가 되는 것임을. 저 멀리 가지 못한 백도가 보였다. 멀리서 보면 섬이 희게 보인다며 白島, 대략 100개쯤 된다고 해서 百島, 100에서 하나 모자란 99개라며 일백 ‘百’에서 한 ‘一’자를 빼 白島라고 불린다는 39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국가 지정 명승 제7호. 


작가와의만남"


한창훈과 독자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도란도란. 그는 20대 때 다방 주방에서 일했던 경험도 꺼냈다. 휘핑 기계도 사주지 않는 사장을 짠돌이라고도 했다. 등대가 비춰주는 바다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지만, 일정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문도 해산물 정식이 기다리고 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한창훈의 뒤를 따랐다. 그의 모습에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가 나무를 잡았다. 지팡이로 썼다. 그것은 그것으로 그림이 되었다. 외로움이 나무지팡이에 기대 있었다. 그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바닷가에서 홀로 살고 있기 때문에 쓸쓸함을 잘 견딘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사실 잘 견디는 편이다.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견뎌야 할 것이 쓸쓸함이니까. 그러나 견기는 것과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중략) 세상 끝 바닷가의 외로움.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외로움이 생명체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를 이곳에서 확인하는 것은 쉽다.

한창훈『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아무렴. 한창훈의 말마따나, 우리는 아주 기가 막힌 하루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 사람살이다. 최소한의 평화가 필요하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그의 집은 그러한 평화가 깃든 곳 같다. 유림해수욕장 근방에 자리한 ‘해발 1미터의 바닷가 흰 집’. 역시 그에게 깃든 외로움이 똑같이 묻어나는 집이다. 사람은 집을 닮고, 집은 사람을 닮는 법이다.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


거문식당횟집이 시끌벅적하다. 한창훈은 이곳의 단골이자 객원 종업원이다. 삼치회를 비롯해 바다가 준 진수성찬이 마련돼 있다. 그는 테이블을 옮겨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밥상, 술상이 한 번에 차려졌다. 『자산어보』를 쓴 손암 정약전 선생도 이 풍경을 봤다면 흐뭇했으리라. 삼치회가 살살 녹는다. 성질이 고약해서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순간 삼치는 죽어버린다. 육지로 이동하면서는 결국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삼치를 먹다니, 한창훈과 거문도 바다가 준 선물이다. 한창훈의 이 말을 꺼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작가와의만남

한창훈 작가와 거문도 여행을 떠난 독자들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거문도의 가을밤이 깊어간다. 횟집 앞 야외 테이블로 옮겨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는 계속된다. 한창훈은 독자들을 위해 박제한 ‘철갑둥어’ 두 마리를 경품으로 내놨다. 턱 밑에 발광 박테리아가 있어서 야광처럼 빛을 발한다는 예쁜 물고기다. 물론 조건이 없을 리가 없다. 


오매, 갑식이 즈가부지, 오매, 갑식이 즈가브지.

한창훈『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오디오로 누가 이것을 잘 하느냐로 승부를 내기로 한다. 이튿날 낚시를 가서 서바이벌 오디션 경쟁을 펼치기로 했다. 가을밤의 즐거운 문학기행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잎새주가 돌고, 안주도 돈다. 한창훈의 동네 친구들도 함께했다. 참돔, 히라스 등 고기를 낚은 이야기가 추억담처럼 돌고 돈다. 걸쭉한 거문도 사투리로 그 순간을 설명한다. 낚시꾼의 이야기는 절반 이상 허풍이 섞여 있다지만, 그러면 어떠랴. 그 상상만으로도 내가 낚시를 하고 있는 듯, 팽팽하게 줄을 당기고 있다. 오로지 지구상에 두 존재만 있는 그 순간. 팔딱팔딱, 수면 위로 오른 물고기를 난 이미 뜰채로 뜨고 있다. ‘밀당’은 연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물고기를 낚는 일이 연애와 다르지 않은 건가.  


“낚시는 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낚싯대를 들고 있는 것도 낚시다.” 


한창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내가 살았던 바닷가, 늘 낚시를 나갔지만 나는 고기를 낚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낚시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15kg짜리 붕장어를 잡고 동네 절반이 모여 함께 고아먹는 이야기에 나는 감동했다. 아, 저것이 공동체구나.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 공동체의 심성은 옆집이 마음에 걸려 차마 고기를 굽지 못했던 것에서 나온다. 먹을 것 없는데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공동체는 촌스러운 것도, 고리타분한 것도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인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돈이 위세를 떠는 짓은 이곳 변방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 사람들이 생선과 쌀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낚시하다보면 마을 해녀가 소라 몇 개 내 발치에 두고 가기도 한다.

-한창훈,『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中.


바다-밤-바람-별-빛이 술상 위에 함께 놓여 있었다. 8년 전 거문도로 왔다는 한창훈이 계속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도 알았다.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티격태격 아웅다웅 친구와 만담을 늘어놓는다. 문학이 따로 없었다. 달빛에 비친 그의 배도 보였다. 동성호. 섬에서 배가 없으면 그렇게 서럽단다. 한창훈은 서러움을 견디고 견디다가 2년 반 전, 1350만원을 주고 배를 마련했다. 배를 마련한 뒤로 고기도 훨씬 많이 잡힌다고 했다. 술이 익어간다. 가을밤도 익어간다.


그래서 저는 취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을 최고로 칩니다. 흥취가 솟아났는데도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꼭 붙들고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그런 친구 있나요? 저는 몇 명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러니 어찌 함께 안 마실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데.

한창훈,『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안녕, 나의 깊고 푸른 바다


내가 타고 다니는 배는 ‘동성호’이다. 중고로 샀을 때 이미 그 이름이었다. 나는 ‘순심호’나 ‘삼월이호’로 바꾸고 싶은데 배 이름을 바꾸는 데도 수고와 돈이 든다고 해서 아직 못하고 있다.

한창훈,『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이튿날, 동성호를 탔다. 거문도 서도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향했다. 전날처럼 바람이 세다. 물살도 셌다. 파도가 넘실넘실. 통통배. 오래전 내 기억이 살아났다. 어릴 적, 집 앞의 바다에 묶인 통통배를 타는 것이 소원이었다. 몰래 타보긴 했어도 그것을 끌고 나갈 수는 없었다.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통통배는 반쪽이었다. 통통배 선장이 되고 싶었다. 통통배 선장이 된 한창훈이 부러웠다. 그는 소설가 한창훈이 아닌 뱃사람 한창훈이었다. 멋있었다. 가두리에 도착했다. 김기덕 감독의 <섬>이 떠올랐다. 

작가와의만남"


꽃보다 바다. 꽃보다 한창훈. 


뱃사람 한창훈의 몸짓 하나하나에 카메라가 움직이고 셔터가 눌러졌다. 열 살 동식이도 낚시 시범을 보여준다. 낚싯대 하나씩 드리우고 바다를 만난다. 음악도 흘러나온다. 평화롭다. 함께 한 천운영 작가는 맨발의 디바. 가을날의 바다 위에 누워있다. 


“채비가 내려가서 땅에 닿아야 한다. 투둑하면 올려라. 감지 말고 소리를 질러.”


한창훈의 설명이 잇따른다. 조나단의 비행도 멋지다.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낚시는 낚시 대로, ‘내 바다위의 술상어보’가 차려졌다. 물고기는 무슨 이유에선지 강태공들의 낚싯대를 거부했다. 대신 차려진 것이 숯불에 구운 삼치구이. 큼지막한 삼치구이가 손맛보다 입맛을 부추겼다. 삼치구이를 가두리 위에서 먹어본 적 있는가. 다시 말하면,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가두리 위에서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기는 역시 잡히지 않았다. 한창훈의 넋두리다. 


“이렇게 손복 없는 사람들은 처음 본다. 어떻게 이렇게 안 낚일 수 있단 말인가(웃음).”


아무렇게나 널브러지고 누워 있고, 어떤 자세로 있어도 좋은 곳. 나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섬이었다. 못 가본 것도 아니고 못 먹어본 것도 아니니, 그 순간만큼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이틀에 걸친 문학기행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한창훈은 독자들 모두에게 ‘깊고 푸른 바다’를 보냈다. 그는 바다를 닮아 있었다. 그는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사람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는다고 했다. 그래서 죽을 때 바다를 닮은 얼굴이 되어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물었다. 비씨카드나 돈의 얼굴을 하고 죽을 수 있다고 상상해본 적 없느냐고. 바다를 늘 바라보던 소년의 얼굴에서 나는 너무 멀리 왔구나. 작별을 고했다. 안녕, 나의 깊고 푸른 바다. 그럼에도 나는 그 바다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틀 동안의 거문도 여정. 소설가를 만나서 문학기행이 아니었다. 아주 살짝 엿본 거문도의 삶이, 거문도의 바다가, 거문도의 외로움이 문학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창훈의 향연』에 나온 한창훈의 말이 떠올랐다.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은 의미를 잃은 시대에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중략)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 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한창훈,『한창훈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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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상 위에 자산어보한창훈 저 | 문학동네
전작『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바다가 차려주는 먹을거리 묘사로 독자들의 침샘을 터뜨렸던 작가 한창훈이, 『자산어보』의 원저자 정약전이 1814년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써낸 지 꼭 200주년이 되는 2014년, 한창훈의 자산어보 2탄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완성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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