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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도서]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저/김자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8.15 이후에 진주한 미군정이나 그 뒤를 이은 이승만 정권이 8.15후에 응당 새나라 발족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허다한 잘못을 범했으며 이후 이 나라는 해방과 더불어 응당 후퇴했어야 할 친일파들이 나라의 실권을 장악해 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 잘못을 지적하기가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p.1)

 

 

 지난 달 10월 역사적인 남북 2차 정상회담이 있었다. 첫 번째 정상회담때의 결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남과 북이 더 이상 외부세력에 의한 수동적 통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주체적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골자였다.

 독재자 박정희로 부터 이어 온 반공의식은 이제 많이 사라졌으며(몇몇 생각없는 재향군인회나 해병전우회, 딴나라당 따위의 용공단체를 제외하고) 군인들조차 우리나라의 주적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라는 설문이 많이 나오는 지금의 현실에서 6.25 한국전쟁은 이미 까마득한 옛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금세기에 있어 옛 유고연방과 옛 서독과 동독과 더불어 끔찍한 내전을 치른 한반도의 남과 북에 있어 한국전쟁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사건이다.

 

 독재 살인마 박정희가 만든 어용사학에 바탕을 둔 역사 공교육을 받아온 내게 역사를 가르친다던 선생과 교과서는 이렇게 가르쳤다.

 

6.25 한국전쟁은 북한이 옛 소련과 치밀한 계획을 세워 남한을 급습해 일어난 전쟁이며 부산과 일부 경상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쪽의 땅이 점령당했을 무렵 그야말로 천사같은 미국이 떡 하니 나타나 북쪽의 신의주와 원산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생각만해도 지저분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개떼같이 몰려와 남과 북 중간쯤에서 선을 긋고 휴전을 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 후로 천사같은 미국은 신탁통치를 통해 남한이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기초를 닦아 주었고,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표정의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깁미 쪼꼬래뜨"외치며 미군의 짚(Jeep)을 쫓아가면 개 먹이 던져주듯 초콜릿과 사탕을 던져 준 고마운 은인으로 남아있다.

 

 이 쓰레기 같은 것을 역사랍시고 배워왔다. 오호통재라~~~

 

 각설하고 책을 읽어 온 이후 한국전쟁에 대한 책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던 차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만났다.

 저자는 지금의 한반도의 상황을 초래한 6.25 한국전쟁의 원인을 찾는 데 책의 중점을 둔다.

 한국의 작가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미국 국립기록보관소의 자료를 조사하고 인용한 저자의 철저한 사료 조사와 객관성이 이 책에 대한 신뢰를 더하게 한다.

 

 

 

 "나는 한국전쟁의 원인은 주로 1945년에서 1950년 사이의 사건에서 찾아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식민통치기간 동안 한국에 부과된 외부세력과 그것이 전후의 한국에 남긴 독특한 자취에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p.13)

 

 저자는 한국전쟁의 주요 원인을 한반도 내에서 찾는다. 흔히 미국이나 소련 등과 같은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왔고 그렇게 배워 왔었는데, 저자는 500여 년간 이어져 온 조선의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서부터 구한말 열강들의 침략야욕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과 그들의 앞잡이를 자칭한 한국인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억압 받아온 민중들의 관계로 인해 얽혀진 실타래를 객관적 사료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풀어내고 분석해 낸다.

 

 

 

1. 공산주의

 일본에 의한 1910년의 병합은 구 조선의 토지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비록 일본인들을 통해 수리의 개선, 곡식종자와 수확증대에 있어서의 과학적 발전을 통해 농업의 생산성을 증가시킨 것 만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몇 차례에 걸친 토지 조사와 시장관계의 발전은 토지의 집중화를 가속화했으며, 이에 따라 소자작농의 소작농으로의 전락을 가져온 것이다.

 식민당국은 조선 때 부터 지속되어 온 지주와 결탁하여 수출용 쌀을 수탈하였고 이것은 소작농 처지의 농민들에게 절망을 안겼다.

 

 나라를 잃은 슬픔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가장 큰 절망거리가 되지 못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여전히 자신들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한국인 지주들과 소작농인 자신들의 변하지 않는 관계가 가장 큰 절망거리였다.

 일부 항일 지식인들의 농촌 유입을 통한 사상교육은 그들의 사상전환을 가져오게 되었고, 해방 전 전국 각지에 <농민조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45년 해방은 저자의 말대로 "해방은 그저 단순한 경축일이 아닌 하나의 대유동의 시기와 대중참여의 시대를 개막시켰다." (p.107)

 

 수십년 꿈틀대던 화산이 폭발한 것 처럼 한국의 대중은 해방이라는 빅뱅을 맞이하여 무언가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기대는 <공산주의>의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마치 끝없어 보이는 외국의 압제에 억눌려 지내온 한인들에게 있어서 공산주의는 새로운 희망과 마법의 횃불처럼 보였다.. 일반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공산주의의 이상 자체는 제쳐놓고 그들의 희생만으로도 강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어쩌다 폭탄을 던지는 민족주의적 행위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p.65)

 

 "해방이후 한국에는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자 및 농민들의 조합이 한편에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측이 주도한 애국 및 반공단체들이 한국사회의 모든 계층에 존재했다." (p.114)

 

 

 

 

 

2. 미군정과 한민당

 

"사회와 안락한 생활에 타고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미국인으로서는 1945년 당시 한인들의 정치적 및 사회적 모순을 이해하거나 동정하기란 극히 어려운 것이다. 미국에 있어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 있어서의 공산주의 인식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미국에 있어서 공산주의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적이 없는 반면, 1945년의 한국에서는 그들의 강인한 항일투쟁과 그들의 정강이 지니고 있는 대중적 호소력 덕택에 대중적 지지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1945년 당시 한국에서의 공산주의는 세계정세에 대한 깊은 조예가 없었으며, 소련당국에 근거를 둔 권위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마르크스의 국제주의에 구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것은 특수한 한국의 공산주의였다."(p.128)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로 인해 남쪽에 군정을 세운 미군은 이러한 대중의 호소를 전혀 듣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2차세계대전을 통해 반공체제를 국가 최고 이념으로 삼았고,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들은 한국의 상황과 한국인들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35년 동안 한국인들을 폭압해 온 일본 총독부의 관리들과 그들을 위해 일한 한국인 앞잡이들을 그대로 등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방법만큼 빠르고 편안하게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방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창설된 <국립경찰(현재 경찰의 전신)>에도 경찰 간부의 80%이상이 일본인들을 받들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에 더해서 미군정은 커져가는 남한내의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병욱을 위시한 세력들이 세운 <한민당>과 손을 잡게 된다.

 지금의 <한나라당>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총독부에서 고관을 지낸 많은 한인들이 한민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민당의 명단에는 일본에 의하여 임명된 의원들이 공공연히 들어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지주들이었다. 미국 정보국에서 작성한 임명록 속에 들어 있는 한민당원은 거의 전부 지주, 공업가 혹은 어떤 종류의 기업인들이었다." (p.139)

 

 당연히 한민당은 대부분의 남한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미군정은 "자주독립 신탁반대"를 외치는 대중들의 옹골차고 뼈에 사무친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러한 대중의 원성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남한 전역에 퍼져있는 공산주의 조직인 <인민위원회>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경우 소련으로 인한 공산주의 통일이 이루어 질 것이라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3. 농민봉기의 실패

 

"1945년과 1946년에 있어서 한반도 전역은 도, 시, 군 및 마을 단위까지 존재한 '인민위원회'로 가득차 있었다. 북한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정권 수립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남한에서는 국토의 반이 넘는 지역에서 이들이 각기 다른 기간 동안 통치를 하였다. 이들 인민위원회들은 지방에 뿌리를 박고 지방에 책임을 지는 조직으로서 한국 정치의 가장 희귀한 형태의 표본이었다. 그들은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농민의 정치 참여의 시기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은 문헌에서 여전히 연구되고 있지 않다."(p.345)

 

 저자의 말대로 위와 같은 현상이 왜 아직도 문헌에서 연구되고 있지 않는 것일까? 내 짐작대로 한민당의 직속계보를 이은 한나라당을 위시한 친일, 반공 세력들이 이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자리잡고 있어서가 아닐까? 흐흐흐

 

 해방 후 남한의 전역에서 강력한 영향을 끼치던 <인민위원회>와 그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던 남한 대중들의 호소는 미군정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46년 가을 끔찍한 가뭄이 찾아왔고, 그 해 "서울 자유시장의 쌀 도매가격은 8월 부터 급속히 올랐으며, 1947년 2월에 이르러서는 이미 상당히 올라 있던 8월의 물가시세가 30배로 뛰었다."(p. 466) 고 한다.

 

 대중(민중)의 호소는 전혀 무시한 미군정의 시책과 끔찍한 가뭄은 1946년 미군정을 뒤흔든 <농민봉기>를 일으킨 동기가 되었다.

 

 "1946년 가을, 미군 점령 1년간의 결과를 되돌리기 위하여 경상도 및 전라도와 인민위원회가 강세였던 기타지역을 농민봉기가 휩쓸었다. 이 봉기는 여러 면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로 이것은 정치, 경제 및 사회 분야에 있어서의 미 군정 정책의 실패를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미국인들은 해방 후 1년간의 경험을 통해 쌓이고 쌓인 한인들의 불만을 회오리 바람을 이제 거둬들이는 것이었다. 둘째로, 반란으로 인해 인민위원회와 이와 관련된 대중조직들이 지방에서의 권력을 공개적으로 쟁취하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 세째로, 봉기의 진압과 인민위원회의 붕괴는 우파, 특히 국립경찰과 한민당의 운명의 뚜렷한 전환점을 나타냈다."(p.438)

 

 가을의 농민 봉기는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경찰관 200명 이상이 피살되었고 죽은 관리, 시위자 및 민간인의 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1쳔명이 넘었다고 한다. 재산 패해는 더 광범위하였다.

 이 혼란이 가라앉자 가장 큰 피해자는 좌파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봉기의 성공적인 진압은 국립경찰의 실력과 생존력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고 남한에서의 치안세력은 이제 몹시 겁에 질린 농민들을 향하여 총부리를 돌려 남한의 대중들은 일제 강점 시기의 서슬퍼런 <순사>의 지배를 다시 받게 된 것이었다.

 

 인민위원회는 분명 전국에 걸쳐 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비체계적이고 경험에 의존하는 자연발생적인 개개 농민의 집합을 이룬 것에 불과했고, 남한의 좌익세력 및 공산주의자들은 인민대중을 조직한 경험이 거의 없는 지도자들이 태반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서 전수받은 중앙의 통제기구에 의하여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농민봉기의 실패는 외세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라서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한민족 스스로의 자주적 독립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꺽어 버렸다.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좌파지식인들은 처형당하고 살해당했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쟁기와 지게를 벗어 던지고 나선 농민들은 다시 그들의 끔찍한 논과 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후 한반도의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각자의 과도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찾는 데 두 권의 책을 펴낸다고 하였다. 내가 읽은 첫 권은 일제 강점 말기부터 해방 후 1946년 가을 농민봉기까지의 정세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두번째 책이 나오지 않은 거 같다. 첫 번째 책이 워낙 안 팔려서 출판을 안 한 걸까?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1947년 부터 6.25 전쟁 직후까지의 남한과 북한의 정세를 분석한다고 한 두 번째 책이 아직 출판되지 않은 것이 못내 애석하다.

 

 해방 후 남한은 식민 일본의 과거를 전혀 벗지 못한 채 미군정에 의해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고, 민중의 열망을 담은 공산주의는 미군정에 의해 철저히 실패해 버렸다.

  이후의 47년부터 6.25전쟁 직후의 정세는 저자의 말대로 두번째 책에서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거 같다.

 

 여튼 풍부한 사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궁금한 사건 중 하나였던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근본 원인에 대해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담아 내고 있다.

 6.25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내가 전혀 모르던 분야를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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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청은

    슈퍼작살님의 강추로 구매합니다 ㅋㅋ 리뷰도 너무 잘 읽었구요 ^^ 에드 온 ~ 으로 고 ~ 했답니다 ㅋㅋ

    2012.02.21 15:18 댓글쓰기
    • 슈퍼작살

      와우~!!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드림님의 멋진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2012.02.21 21:18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