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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도서] 고요한 밤의 눈

박주영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사라진 쌍둥이 언니를 대신해 스파이와 소설가의 상담을 해주는 정신과 의사 D. 15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스파이가 되기를 종용 받은 X. X를 감시하는 스파이이지만 차츰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깨달아가는 Y. 스파이의 감시 타깃이 되는 가난한 소설가 Z에 대한 이야기이다. 독립된 듯 보이는 각각의 인물들의 관점이 번갈아 가며 나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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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와 카드 결제 내역을 통해 감시할 수 있는 세상. 그 속에서 세상을 조작하는 무형의 세력인 스파이가 존재한다. 자신이 스파이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스파이에서부터, 큰 뜻을 위해 무수히 많은 작은 것들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지휘자급의 스파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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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언뜻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세상과는 달리 이 세상, 우리들의 세상에서는 우리의 삶이 조작되고 있는지, 내가 그들에게 이용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이들의 조작 행위에 이용되는 지도 모르는 무지함과, 개인적 이익 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기심, 이슈가 되었을 때만 잠깐 불같이 타올랐다가 잊어버리는 냄비근성적 우매함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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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덜 양심적이고 덜 진지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는 잘 못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이 틀렸다고 느끼면서도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먹고살기 바빠서, 누군가는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만 지켜보고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사회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도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그냥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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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건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사는데 필요하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면서 삽니다. 어쩌면 당신의 기억상실은 우리들의 집단 기억상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주 많은 것을 잊어버립니다. 문제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지워지는 기억들입니다. 우리가 잊어버리면 잊어버릴수록 유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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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스파이 소설인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 대중들에게 눈 뜨고, 귀 열고, 생각하고, 기억하라고 일침을 놓는 소설이다. 또한 문학을 하는 소설가들에게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을 쓰라고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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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소설을 굳이 스파이 소설로 읽겠다면, 은둔자는 스파이에 대항하는 스파이 같은 사람이다. 속물적인 사회의 기준 자체를 무시하는 사람들. 타인과 경쟁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인간의 존재 자체를 숙고하는 자들. 그래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정부적인 일종의 진공상태에서 계속 살아가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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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돈에서 자유로웠으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처럼 위험한 존재는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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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재밌어. 그런데 그 재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하고는 좀 달라. 너무 재미있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 어떤 작가들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지금 여기의 문제를 고민하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어. 그런 작가들은 본능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것인가를 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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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독성이 좋은 책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으로 쓰인 글들이 아닌 사변적이고, 은유가 많은 글들이 많아 읽는 중간중간 자주 곱씹어야 한다. 이런 표현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데다, 이 장편소설을 끌고 나갈 힘이 부족해 뒷부분에서는 집중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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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삶의 구석구석을 식상하지 않게 표현하고, 그냥 스쳐지나칠 수 있는 삶의 단상을 붙잡아둘 수 있는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지금까지 읽어온 '혼불문학상'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왜 이 작품이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혔는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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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아쉽기도 할 것이다. 내가 포기해버린 것들. 찬란하고 빛나고 바라 마지않은 승자의 것들.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패자가 될 것이다. 승자가 되어 죽이느니 패자가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짓밟히고 쓰러지고 피 흘릴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볼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또 궁금해할 것이다. 질문할 것이다. 대답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제 나는 적어도 내 남은 생의 목적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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