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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리커버 특별판)

[도서] 달콤한 나의 도시 (리커버 특별판)

정이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p106

 

주말 현장 근무는 정말 지독하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나도 평범한 화이트 칼라 회사원들 처럼 주말에는 좀 쉬고, 빨간날도 좀 쉬고 싶다. 일주일 동안 불어닥친 무시무시한 칼바람, 그리고 비 때문에 현장은 거의 개점휴업상태였다. 타워크레인이 강풍으로 작동이 불가하니, 작업자들도 일이 없고,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나 기울이고 있었던 일주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휴무조가 떠난 오늘,왜 내가 근무할 때 날씨가 이렇게 좋은 것인가. 아침부터 현장을 뛰어다니고, 먼지를 마시다 보니 숨이 턱턱 막힌다. 간만에 돌아온 화창한 날씨에 누군가는 주말맞이 여행을 떠나는 날, 나는 다음 주 콘크리트 타설 때문에 철근, 거푸집을 점검하고 장비사용 시간을 분배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군, 건설산업 종사자, 대기업 건축기사, 그렇게 나를 위로해 주면 쌩큐 베리 감사할 뿐이다. 위로금이라도 한 푼 쥐어주면 더 좋고. 이럴 때 예전 만나던 그 아이라도 있으면, 전화라도 해서 투덜대고 싶은데, 어떤 이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아이와 연락을 끊었다.

 

모든 고백은 정말 이기적이다. 여인에게 하는 사랑고백이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차마 말하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 하지마라'고 하면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든, 그 고백은 자기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더 큰 것이다. 올해 여름에 만났던 여러명의 사람들, 소위 남들이 말하는 '선' 이라는 것도 해보았고, '소개팅'이라는 것도 했다. 그리고 그 중 몇에게는 사귀자는 식의 고백을 했다. 그런데 그 고백이 과연 내가 진심으로 좋아해서 했던 고백이었는가라는 점에서는 아니다고 하고 싶다. 어쩌면 여자에게 고백하는 연기를 했을 수도 있고, 여자의 마음을 한번 뺏어보고 싶다는 변태적 속물근성의 발현일 수도 있다. 회사일이 바쁘다보니까, 그보다 결정적인 것, 내가 일하는 이곳이 너무 시골이라는 것이 그 사람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나의 서른 한살은, 11월 칼바람부는 동해바다 근처에서, 대한민국 건강한 남성 한 명으로서 또는 외로운 한마리 갈매기로서 마을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마을의 모든 술집 막걸리 혹은 소주를 있는 힘껏 퍼 마시며, 가끔은 당구도 치면서 여유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연인 사이의 대화는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려 들고, 종국에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 -p140

 

그리고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 다음은?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 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난 그랬으니까. 정말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더라도, 너무 편안해지면 위험하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긴장감있고, 좀더 오랫동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지겨운데 헤어지기 싫으면 결혼을 하든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든가 해야한다.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p440

 

대학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주 토요일에 결혼한다." 으레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대략 짐작은 한다. 우리 나이때 갑작스레 연락할 일은 경조사 밖에 없다. 자기 일에 빠져 살거나, 아님 친구들이 바쁠까봐 안부전화는 거의 연중행사에 가깝다. 자주 연락해서 이런저런 수다떨 수 있는 친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다음주에 결혼한다는 친구가 물었다. "너 내년에 시험칠꺼야? 준비는 하고 있어?" 친구는 내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고, 경제적인 이유였든 내 마음의 포기였든 아깝게 시험에 떨어진 후 포기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별다른 차선책이 없었으므로 건설회사에 취직했다는 것도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난 "글쎄, 아직 미정이야." 라고 했다. 앞으로 '고시 따위는 하지 않을꺼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 친구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내게도 지금보다 나를 넘어선, 그 어떤 계획이 있고 보다 폼나는 멋진 인생을 계획 중이라는 뉘앙스를 적어도 남기기 위해서다. 재수할때 생일선물로 친구가 전해 준 책이 갑자기 생각났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이다. 나는 내 스스로의 존재가 항상 비중이 크기를 바랬다. 남들의 눈에 띄고 싶어했다. 대기업 건설회사에 입사한 후 서울에서 많이 떨어진 시골 건설현장에 일하고 있는 것에 큰 불평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마치 내가 해병대 입대 후 연평도에서 근무했을때 '너희들 이만큼 힘들게 살아본 경험있어?' 라는 자부심 같은 것을 가슴 한켠에 묻고 있어서다. 그렇게라도 인정받고 싶은거다.

 

이 책의 주인공이 겪은 나이인 서른 한살, 서른 두살... 내 나이가 이제 한달 보름이 지나면 서른 두살이 된다. 나는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고, 부모님은 내게 의지하고 싶어한다. 든든한 아들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하신다. 과연 지금 내가 예전에 포기했던 그 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포기한 것이 아니고 포기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멋진 인생이란, 달콤한 나의 삶이란, 일단 한번 독하게 밀어부쳐보고 끝까지 해내고 말든가, 아님 처절하게 깨지고 부서져서 공기중으로 산화하든가 하는 그런 강렬함 아니겠는가. 나만의 달콤한 도시로, 비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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