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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

[도서] 스파

에리크 스베토프트 글그림/홍재웅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메인 광고 카피가 "이토 준지, 찰스 번즈, 몬티 파이튼을 한데 갈아 넣은 듯한 작품"이다.(영국의 만화 저널리스트 폴 그래빗의 추천평에서 인용.) 이토 준지야 한국 독자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가인지라 작품의 성격을 쉬 짐작할 수 있었지만, 찰스 번즈는 이름부터 낯설었고 몬티 파이튼은 '설마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그 코미디 스쿼드인 걸까' 의심을 품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 책의 작가 에릭 스베토프트를 구글링할 때 같이 검색해 보았다. 요약하자면, 그로테스크한 작화와 압도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두 작가와 그 '몬티 파이튼'의 풍자 개그를 의도한 것이 맞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메인 카피보다 책 소개에서 일러주는 "[샤이닝](스탠리 큐브릭), [킹덤](라스 폰 트리에), [미드소마](아리 에스터)처럼 숨통을 조여 오는 불길한 공포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라는 문구를 더욱 주의 깊게 보아도 좋을 듯하다.

북유럽 최고의 스파를 배경으로 한 그래픽 노블 《스파》는 휴식과 사치의 공간을 기기괴괴한 폭력과 혐오가 들끓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각자 현실에서 도피해온 투숙객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직원들은 헛것을 보고 종종 발길을 사로잡힌다. 

이를테면, 음울한 현실이 시체처럼 내려앉은 집을 나와 스파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 신혼부부는 여전히 욕탕과 사우나에서 시체를 보고 본인들의 썩어가는 정사를 관조한다. 청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들로 추측되는 돼지 무리와 뒤엉킨다. 요리사는 자신의 음식을 하찮게 취급한 VIP 손님을 얼결에 죽인 뒤 그인 양 가짜 행세를 한다. 외로운 마사지사는 소모임에 참여해 본인처럼 지독히 외로운 이들을 만나고, 자꾸만 길을 잃어 방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남자 투숙객은 직원의 부주의한 일처리로 허리에 창이 꽂히지만 변변한 처치를 받지 못한다. 곰팡이 때문에 금고 속 현금이 모조리 삭아버리자 스파의 사장은 상납금을 요구하는 위장 경찰의 협박과 폭행에 노출된다. 그 와중에 벽에 걸린 그림 속에서 자꾸만 유토피아를 보고, 아버지에게 핍박받았던 유년 시절을 위로받고자 한다. 배관 수리공들은 영혼 없이 메뉴얼대로 일하는데 나사 빠진 얼굴들이 섬찟하다.(어쩌면 이들과 그림 속 유토피아 삼형제 캐릭터가 '몬티 파이튼'을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계급주의를 폭로하고, 인간의 양면성을 응시하는 스파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무엇이 실제인지 아닌지 파악하기가 어려운데, 책 속에 묘사된 괴물들과 시체들, 진액, 곰팡이, 눈이 돌아가거나 목이 졸린 동물들이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난 부정적인 소란을 상징하는 거라면 사실 관계를 따지는 일이 무용해 보인다. 이미 마음이 지옥인 사람들은 휴양의 의미를 진작 잃었고, 그들에겐 지옥도로 둔갑한 현실에 참여하는 일련의 가해 행위가 더욱 친숙하기 때문이다.

책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한 사람이 뾰족한 못이 박힌 둔기를 든 한 무리의 불량배들에게 맞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바로 이 장면을 신혼부부가 목격하고 못 본 척 외면하는데, 결말에 이르러 불량배들이 건들거리는 자세로 재차 등장한다. 그들은 다음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다. 복도에서 길을 잃었던 그 남자 투숙객이 마침내 호텔 밖까지 나왔다가, 근거리에 서 있는 불량배들과 마주친다. 우리는 마지막 장에서 불량배들의 다음 희생양을 예감한다. 

작가 에릭 스베토프트는 스웨덴의 일러스트레이터다. 개인 홈페이지를 구경해 보니 지금까지 그가 출간한 그래픽노블은 총 5권. 《스파》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책이고, 다른 책들은 아쉽게도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작품들도 한국어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문장으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절망 역겨움 지리멸렬함 어지러움 어둠 지겨움 끔찍함'을 휘몰아치는 연출 기법 안에 환상적으로 녹여낸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감상평은 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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