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셜록 탐정에게 여동생이 있다면?
낸시 스프링어의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이런 재미난 가정 하에 쓰여진 소설입니다. 나이는 십대. 당시만 해도 여성에게 탐정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죠. 사회적으로 말이죠.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여겼기 때문에 감히 범죄자에 맞설 수 있다고 여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범죄를 해결할 머리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건 나이 어린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 편견이었죠.
주인공 에놀라 홈즈는 그 당시 영국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두 가지 편견 모두의 희생자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더 재밌는 것은 그런 편견이 다른 누구도 아닌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홈즈라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오빠들을 통해서 가해진다는 점입니다. 어리니까, 여자이니까 보호 받아야 한다며 남성인 그들이 정한 안전 구역에만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놀라 홈즈는 그렇게 오빠들로 대표되는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놓은 울타리를 혼자 힘으로 뛰어넘는 존재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두 개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삶을 개쳑해 나가는 인물인 것입니다. 그를 그렇게 주체가 되고 자유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것은 엄마의 실종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에놀라 홈즈의 엄마가 사라진 것입니다.
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온 오빠들은 에놀라 홈즈가 전혀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말하여 에놀라 홈즈를 놀라게 합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 때문에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는 오빠들을 대신하여 에놀라 홈즈는 오직 혼자 힘으로 엄마를 찾아 나서는데 그러다 공작의 유일한 아들이 실종되는 사건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공작의 삶이 에놀라의 삶과 유사합니다. 엄마가 정한 삶의 형태 안에서 조금도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엄마에게 종속되어 자신의 삶을 자기 뜻대로 조금도 조정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낸시 스프링어는 사라진 공작 아들과 에놀라 홈즈의 삶을 유사하게 만들어 지금 에놀라 홈즈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하게 알려줍니다. 그건 물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죠. 누가 정해 주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정하는 삶 말입니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인 '사라진 후작'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입니다. 이것이 어떤 강요가 아니라 이야기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들어 알려주고 있기에 더 좋은 작품이 되었다고 해야겠네요.
물론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이것말고도 19세기 영국의 삶을 여성, 그것도 어린 여성의 시각에서 들여다본다는 것도 있습니다. 당시 시대 모습이 꽤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꽤 즐길만 합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좋아하고 홈즈의 여동생 활약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 번 벗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