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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가, 나의 악마

[도서] 나의 아가, 나의 악마

조예 스테이지 저/이수영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자식을 위한 끝없는 자기 희생으로 흔히 정의되는 '모성'은 그렇기에 가장 위대한 사랑으로 숭앙받는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모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가령 자식이 살인마이고 자신을 죽이려든다면 그 앞에서 모성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이런 질문에 대하여 그동안 본 영화와 소설 등에서 얼른 세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공공의 적'이고 다른 하나는 린 렘지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케빈에 대하여'이며 마지막은 이번에 출간된 조예 스테이지의 '나의 아가, 나의 악마(원제 : BABY TEETH)'이다.

 

 일단 '공공의 적'부터 얘기해 보자면, 거기서는 모성이 변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한 펀드매니저는 돈 때문에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다. 자신에게 혐의가 오지 않도록 미치광이의 짓으로 위장하려고 살해한 부모의 시신 위에 밀가루까지 끼얹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데, 그동안 아직 목숨이 간신히 붙어있던 살인자의 엄마는 자식이 실수로 떨어뜨린 자식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유력한 증거를 입에 넣어 삼켜버린다. 자식이 경찰에게 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자신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식을 보호한 것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케빈에 대하여'에는 학교에서 무차별 연쇄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둔 엄마가 등장한다. 아들을 학대는커녕 부당하게 대한 적도 없고 많은 부모가 그러하듯이 사랑을 다해 정성껏 키웠는데도 괴물이 되어버린 아들 앞에서 그녀의 모성은 그저 황망할 뿐이다. 남들처럼 아들을 쉽게 단죄하지도 못 하고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변해버린 아들을 전처럼 사랑하지도 못 한다.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아들을 이해해보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 역시 면화할 때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 앞에서 늘 좌절한다. 린 렘지의 영화는 이걸 틸다 스윈턴이 분한 엄마가 아들과 면회할 때 그저 아무 말 없이 멍한 눈으로 아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묘사한다. 여기서의 모성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를 모른 채, 그저 망연자실하여 침묵만 지키고 있다.


 

 

 

 조예 스테이지의 '나이 아가, 나의 악마'에서의 엄마는 이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어 흥미를 끈다. 

 그녀의 이름은 수제트. 그녀에겐 어린 딸, 해나가 있다. 수제트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전혀 살뜰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엄마는 자식에게 무심한 차가운 엄마였고 심지어 수제트가 매우 아플 때조차도 별로 신경을 안썼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수제트는 자신은 그런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다. 최선을 다해 해나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 애쓴다. 그러나 해나가 도와주지 않는다. 해나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귀찮게 여기며 자기가 원하는 걸 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급기야 해나는 엄마가 아빠를 독차지하려고  자신과 자신이 좋아하는 아빠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멋대로 단정해 마침내 엄마를 살해하려고 든다. 원제 'BABY TEETH'는 유치, 즉 아기의 이빨을 뜻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건 이름처럼 귀여운 게 아니다. 엄마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섬뜩한 이빨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해나의 마음, 즉 자신을 향한 해나의 공격성 밑바닥엔 뭐가 있는 것인지를 수제트는 비교적 일찍 알아차리지만 심지어 남편조차도 믿어주지 않는다. 당연할 것이다. 해나의 나이는 겨우 7살. 그런 나이의 아이가 엄마에게 해를 입히려 한다는 말을 누가 믿어줄 것인가? 더구나 해나는 너무나 영악해서 아빠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뱀처럼 교묘하게 계획을 세워 은밀하게 움직인다. 단 하나의 목적인 엄마를 제거하기 위해. 수제트는 엄마라면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가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과연 수제트의 모성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까?

 

 '공공의 적'처럼 한 순간에 벌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지며 '케빈에 대하여'와 다르게 공격성이 직접 모성을 향하기 때문에 이 소설의 모성은 더 커다란 고뇌와 혼돈에 빠진다. 거기다 수제트가 빠진 이중의 모순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수제트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좋은 엄마는 자식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경험이 없어 알지 못한다. 그는 간접 경험에만 의지하여 해나를 양육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받은 사랑의 경험이 없기에 지금 자기가 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한다. 자연히 남의 판단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자신과 친구에 대한 해나의 행동이 문제가 있다고 여겨져도 쉽사리 남들에게 꺼내지 못한다. 그것이 되려 자신을 향한 비난의 빌미가 될까 두려운 까닭이다. 그녀는 고립될 수밖에 없고 과거의 경험도 있어 그토록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썼고 지금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해 양육한 아이가 왜 자신이 전혀 헤아릴 수 없는 존재로 변모해 버린 것에 대한 혼돈과 엄마라는 입장 때문에 해나의 공격 앞에서 마냥 당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인한 고뇌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걸 양해해준다면 난 이와 같은 작가의 설정에 정말 탄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으며 이도저도 움쭉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수제트를 잘 빠뜨려 놓아 서스펜스를 한껏 키워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예 스테이지는 모성으로 하여금 아기의 이빨에 엄마의 목덜미를 쉽게 내주지 않도록 한다. 소설은 수제트와 해나를 번갈아가며 전개되는데, 앞 부분에선 해나가 여지없이 승기를 쥔 것으로 그려지지만 차츰 그것이 수제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수제트는 아이의 문제를 방관하지 않으며 그걸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비록 남들의 눈이 두렵고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진실로 잘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나은 방법이라 생각되는 걸 최선을 다해 결행한다. 모성의 이러한 능동적인 태도가 높은 서스펜스와 더불어 이 소설의 미덕이라 하겠다.

 

 대체적으로 'CHICK NOIR'에 속하는 작품으로 그런 장르의 특징인 심리 묘사를 이 책 또한 잘 보여준다. 단 칼에 배어낼 수도, 그렇다고 온전히 품을 수도 없는 자녀를 앞에 둔 불안과 혼돈 그리고 고뇌를 생생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쉽게 풀 수 없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장르 소설이 가지는 재미를 다 하면서도 아주 현실적인 결말을 내고 있어 그것도 이 책의 장점으로 꼽고 싶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좀 맥이 빠지는 결말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모성도 제법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만큼 한 번 예전과 다르게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새로운 모성을 향한 여정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쓰고 싶진 않지만 마냥 희생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보여주는 모성의 모습은 시간을 들여 한 번 읽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꽤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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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자기 아이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 같네요 자신은 아이한테 잘하려고 했을 텐데, 남한테 쉽게 말하기도 어렵겠습니다 거의 다 믿지 않을 듯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다른 모습을 할 테니... 해나는 어쩌다가 그렇게 태어났을지... 수제트와 해나는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지, 그건 어려울까요


    희선

    2021.03.12 00:07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