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고 싶을 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내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 바로 몸을 바꾸는 것이다. 내 신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는 게 아니다. 몸을 현재 상태와 다르게 만들면 된다는 것. 이것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아침마다 남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이다. 마침 회사가 남산 아래에 있어 가능했던 일. 몇 달 전부터 출근하면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지를 걷는데 익숙한 몸을 경사로에 올려놓으니 몸이 평소와 다른 반응을 했다. 거친 숨소리, 아픈 다리, 달아오른 몸에서 흐르는 땀.
매일 경사로를 오르며 알게 됐다. 내 몸이 차츰 바뀌고 있다는 것을. 걷는 거리가 늘어나고 속도도 빨라졌다. 죽을 것처럼 헉헉대던 몸이 경사로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더욱 남산 오르기에 집착하게 됐다. 몸이 힘든 날도 몸을 한바퀴 돌리고 나면 다른 몸이 되는 경험을 하고 난 후 힘들수록 가야하는 코스가 됐다. 몸에 활력을 불어넣은 느낌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태도는 평소와 다르다. 축 처진 몸으로 일과를 시작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하루의 시작은 달라져 있다.
몸이 달라지니 바뀐 일상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지혜다. 내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내 것이 된 깨달음이다. 내가 남산을 오르기 전에도 그런 분이 있었다. 아침마다 남산을 오르면 참 행복한 경험을 한다는 분. 그 분 체형이 눈에 띄게 바뀌는 걸 보고도 크게 감응이 없었다. 건강에 좋은 건 알겠는데 내키지 않았다. 이제 내가 그 분과 같은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한다. 매일 남산을 오르면 좋다. 내심 그들도 경험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미 알고 있다. 그리 와닿지 않을 거란 걸.
그런 날이 있었다. 회사 직원과 앞으로 먹고 살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남들이 안 하는 기술을 보유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퇴사를 하면 뭐라도 가진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지 않을까 하다가 전기나 도배 같은 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러다 문득 이 책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인터넷 서점에서 본 기억이 나서 검색해보게 됐다. 아마 '전기 기술자가 된 이야기', 이런 게 있었다면 같이 봤을 듯 하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를 검색하다가 유재석의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걸 알고 동영상을 보게 됐다.
"사라지지 않을 기술을 몸으로 터득하는 거잖아요"
이 한 마디가 내 안에 콕 박혔다. 내 몸이 익힌 기술은 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 내가 몸으로 익혀둔 기술, 내게 필요하고 남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전기나 도배 기술을 배울 기회가 생기면 당장 할 것처럼 의욕이 생긴 상황. 책을 읽으면 더하겠단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다. 사라지지 않는 기술을 몸으로 터득하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궁금해서. 나는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직접 몸으로 겪어낸 이의 생각과 깨달음이 궁금해서 말이다.
'기술직'이란 말 그대로 몸으로 터득한 기술을 바탕으로한 직업이기에 기술만 완전하게 연마했다면 여타 직업보다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긴 시간 익혀왔기 때문에 하루 이틀의 인수인계만으로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47쪽)
아이 방에 전등이 나가서 새 것을 갈아끼워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데 이상이 생긴 건데 아는 게 없으니 결국 기술자를 불러야 했다. 내가 아는 기술이라면 직접 해도 될 일이고, 잘하면 돈도 벌 수 있는. 직장인으로 살면서 가끔 꿈꾸는 다른 길일 수 있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가진 기술로 먹고 사는 일. 비록 그런 일이 도배사란 직업과 마찬 가지로 나름대로 겪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내가 가진 기술, 내게서 사라지지 않는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면에서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없는 무기하나는 장착하는 일일 것이다.
앞으로 계속 도배사로 살아간다면 몸은 내 영원한 재산이자 무기이겠지만 반면 한순간에 일을 그만두게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나의 몸이기에 더 많이 돌보고 아끼려 한다.(106쪽)
살아있는 동안 내가 집중하고 관리해야 하는 몸. 내 몸이 바뀌면 일상이 바뀐다. 운동으로 단련해서 활기찬 일상을 만드는 일, 내 몸으로 익힌 기술로 나만의 일을 하며 사는 일, 모두 몸을 바꾸면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가끔 내 몸이 전부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몸이 생생한 동안 나는 살아있는 느낌으로 살테니까. 쌩쌩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오래 갖고 싶어 매일 남산을 오른다. 그때 흘린 땀이 몸과 일상을 바꿔놓는다. 덕분에 몸에 새긴 것은 오래 남아 내게 영향을 줄 것이란 믿음으로 살게 된다. 거기에 뭘 더하며 알차게 살아갈지 고민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현재 내가 도배를 하며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다.(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