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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한 가지 사물을 관찰할 때 배경지식이 많다면 남들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것까지도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른 각도로 풀이해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음으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자의 의미가 정보의 양에 관한 부분이라면 후자의 의미는 정보의 차이에 따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손호철 교수의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가 꼭 그러했다. 그간 라틴아메리카를 소개하는 책도 종종 보았고, 라틴아메리카를 다녀와 무용담처럼 그들의 여행기를 쏟아내는 것을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라틴아메리카의 여행기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손호철 교수는 애초에 책으로 쓸 목적으로 여행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여행과 세미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라틴아메리카를 드나들며 다년간에 걸쳐 느낀 바를 이 책을 통해 여행기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쿠바,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멕시코, 과테말라.

 

어떻게 보면 그가 다닌 여정은 군부독재와 신자유유주의의 폐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길이었으며, 혁명세력들이 어떻게 정권을 창출했고, 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라틴아메리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두 발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책과 논문을 통해 쌓은 이론적 지식에 더해 그 모습들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과정이자 두 눈으로 확인하며 가슴에 새기는 일이었고, 사람들과의 부딪침 속에서 체화시키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머문 자리를 생각하며 때론 숙연해졌고 안타까웠으며, 기쁨의 감격에 차기도 했고 희망찬 미래가 그려지기도 했다. 서구의 침입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인디오들은 차치하고라도 독재의 탄압에 쓰러져간 많은 이들, 쿠바의 체 게바라,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 아르헨티나 실종자, 정치범 어머니들의 모임인 5월 어머니회는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아픈 상처다. 그리고 민중들의 민주화 열망을 등에 업고 탄생한 좌파 세력들의  우경화, 미국의 경제 제재,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극빈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민중들의 모습은 아픈 현실임과 동시에 여전히 이들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우리에게는 경제적으로 몰락한 곳으로도 많이 인식되어져 있는 곳이지만, 이는 독재와 신자유주의의 무모한 추종에 따른 폐해일 뿐이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낙후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주권을 지키려는 신념이 강하고, 교육과 의료제도 등에서는 선진국만큼이나 앞선 곳도 있다.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삶의 방식과 ‘중요한 것은 공장을 짓고 도로를 닦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것’(61면)이라는 삶의 가치가 성장 일변도로 내달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손호철 교수 또한 이러한 현상들을 몸으로 직접 느껴보길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안 가겠다던 혼자만의 다짐을 여러 번 깨뜨리며 라틴아메리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이론 속에서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얻었을지 궁금했지만, 적어도 그는 한 가지만은 확실히 가슴에 새긴 듯하다. 나 또한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도 그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이론서가 아닌 여행기가 되지 않았을까.

 

“가난해도 즐겁게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배울 중요한 교훈입니다. 비바, 라틴아메리카!” (271면, 에필로그)

 

by 꽃다지, 2007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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